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의 콘텐츠 육성 정책이 ‘구두선’에만 머무르는 모양새다. 올해 3대 핵심 과제 중 첫 번째로 방송통신 콘텐츠 경쟁력 강화를 내걸었지만 실제로 예산 편성 등에서는 후순위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13일 방송통신위원회와 방송계 관계자 말을 종합하면 방송통신전파진흥원(KCA) 콘텐츠 조직이 4개 부서에서 3개 부서로 통합된다. 연구개발(R&D) 인력 일부도 정책 파트로 옮겨간다. 예산 할당을 예상하고 만들어 놓은 조직에 예산 지원을 할 수 없어서 조직을 원상태로 돌린다는 게 방통위의 설명이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이것을 방통위 콘텐츠 정책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지난해 감사원에서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콘텐츠진흥원과 중복 투자 문제 등을 지적했다. 일부 제작사가 양쪽 기관으로부터 지원금을 받았다는 것이다. 방통위는 꼬리를 내리는 반면에 문화부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콘텐츠 예산안을 짜고 있다는 점이 차이다.
방통위의 내년 콘텐츠 진흥 예산도 올해에 못 미치는 수준에서 편성될 것으로 보인다. 채널사용사업자(PP)에게 제공하는 제작 지원금도 추가 예산 할당액은 없다. 올해도 방송프로그램 제작지원 예산은 지난해 201억원에서 21억원 줄어든 180억원이었다.
지원 분야 역시 방송프로그램 제작 지원, 디지털 유료방송 콘텐츠 유통시스템 구축 등을 유지하는 수준이다. 반면에 문화부에서는 독립 제작사(프로덕션)에만 지원할 수 있었던 규정을 고쳐서 PP 지원책을 마련하는 등 공격적으로 콘텐츠 육성에 나서고 있다.
콘텐츠 R&D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 방통위 전체 예산 가운데 R&D 분야가 약 25%에 달하지만 대부분 신기술 개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방통위가 운영하는 민간 전문가 PM(Project Manager) 제도에도 콘텐츠 분과가 없다.
콘텐츠 유통에서는 개별 PP를 위한 ‘소스포털’을 디지털방송콘텐츠제작센터에 두기로 했지만 이것도 시스템구축(SI)에 초점을 맞췄다. 콘텐츠 저작권 문제나 콘텐츠 수급에 대해서는 뚜렷한 계획을 내놓지 않고 있다.
문화부와 중복된다고 지적되는 사항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역할을 하기보다 한 발 빼는 모양새다. 콘텐츠 육성이 전 국가적 과제로 떠오르고 있는 흐름과 역행한다는 지적이 따를 수밖에 없다.
산업 진흥을 위해서 방송위원회와 정보통신부 일부를 합쳐서 탄생한 방송통신위원회 존립 목적에도 역행한다. 방통위가 아닌 ‘방송위’이라고 지적받는 상황에서 콘텐츠마저 소홀히 한다는 지적이 방통위 안팎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방통위 관계자는 “방통위 전체 예산은 늘어나지만 디지털TV 전환 등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기 때문에 콘텐츠 진흥 예산을 올해 이상으로 따내기는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대부분 콘텐츠 진흥 예산이 경기도 고양에 짓고 있는 디지털방송콘텐츠제작센터 같은 하드웨어에 맞춰져 있을 뿐이다.
오은지기자 onz@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