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미국 대형 인터넷서비스업체 컴캐스트가 P2P를 차단한다. 낙후된 인터넷 망으로는 급증하는 트래픽을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콘텐츠제공자들은 반발했다. 이 사건은 미국 내 망 중립성 논의를 본격적으로 불붙이는 계기가 됐다.
미국 초고속인터넷 보급률은 63% 정도로 한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개발이 덜 됐다. 망에 관한 미국의 정책이 대부분 ‘개방적 환경 조성’에 초점이 맞추어진 것은 이 때문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미국 내 모든 가정에 초고속인터넷을 공급하는 ‘국가 광대역통신망 계획’을 실시하는 등 망에 대한 공평한 접근을 중시한다. 인터넷 보급률 및 설비 고도화 측면에서 우리나라보다 발전 단계가 낮아 보급 촉진과 소비자 접근 용이성이 강조되는 형편이다.
특히 미국에는 구글, 스카이프 등 글로벌 인터넷업체들이 있고 이들 업체는 개별 국가 통신망을 이용해 사업을 영위 중이다. 통신사업자의 인터넷 트래픽 제어는 이들의 사업 기반과 직결된 문제다. 현재 집권당인 민주당은 전통적으로 실리콘밸리의 지지를 받고 있다. 망 중립성이 왜 오바마 대통령의 대선공약으로 채택됐는지는 이 같은 배경을 알면 이해하기 쉽다.
미국 정부의 망 중립성에 대한 이 같은 개방적 입장은 종종 콘텐츠사업자들 주장의 논거로 쓰인다. 하지만 국내 망 제공 사업자들은 미국 사례를 그대로 국내에 적용하기는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우선 미국은 네트워크사업자가 독점에 가까운 비경쟁 체제로 성장 중이다.
연방통신위원회(FCC)에 따르면 미국은 유선사업자 수가 1개인 지역이 60%, 2개 지역은 21%로 소비자 선택권이 매우 제한적이다.
미국식 망 중립성을 그대로 한국에 대입할 경우 애플, 구글 등 글로벌사업자의 이익 기반이 강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통신 시장의 가치사슬이 플랫폼에 종속돼 글로벌 콘텐츠, 플랫폼사업자의 지배력이 강화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최근 이슈가 됐던 모바일인터넷전화(mVoIP) 역시 미국과 국내 환경은 차이가 있다. 미국은 최저 음성요금이 39.99달러로 mVoIP를 허용해도 이동통신사들에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영국 40유로(약 7만1000원) 한국 5만5000원, 미국 69.98달러(약 7만7000원) 정도의 요금이 mVoIP를 사용하기에 무리 없는 수준으로 보고 있다. mVoIP 전면 허용은 기본료가 높은 미국식 요금제를 유발해 국내 다수 이용자의 편익을 오히려 저해한다는 주장이다.
개방성을 중시하는 미국 내에서도 최근 시장 변화에 따라 망 중립성 규제에 회의적 시각이 나오고 있다.
미 하원은 지난 4월 FCC의 망중립성 폐지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공화당 중심의 미 하원이 인터넷 시장 활성화 장애물로 정부 규제를 꼽아 결의안을 채택한 것이다. 공화당은 망 중립성 규제는 권력 남용이며 불필요한 규제는 신규 투자를 저해한다는 입장이다.
이런 변화에도 불구하고 망 중립성 규제가 계속되자 미국 내 인터넷제공사업자(ISP)들은 트래픽 차단 대신 이용자요금 개편 시행을 카드로 꺼냈다.
AT&T는 2010년 6월 데이터 무제한요금제를 폐지한데 이어 올해 5월부터 데이터 이용 상한제를 도입해 유선망 트래픽 제어를 추진 중이다. 돌파구를 찾지 못한 망 비용 문제가 소비자에게 직접 전가된 것이다.
미국 주요 ISP 요금제 개편 사례 출처:각사
김시소기자 sis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