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덕의 정보통신부 그시작과 끝]<56>신세기통신 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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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기통신은 1996년 4월 1일 오후 서울 신라호텔에서 이수성 국무총리와 이석채 정통부장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CDMA 개통 기념 리셉션을 가졌다.

 신세기통신의 제2 이동통신사업자 선정은 재계 자율로 단일 컨소시엄을 구성한 특이한 방식이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은 전원 합의제로 제2 이동통신사업자를 선정했다. 이런 방식에 반발한 기업은 단 한 곳도 없었다. 말로 먹고 산다는 정치권도 입을 열지 않았다.

 사업자 선정은 선수들이 심판과 감독 역할까지 한 민간 최초의 정책 대행이었다. 5일간의 비공개 심사와 6차례의 재계 회장단 모임을 통해 그랜드 컨소시엄을 구성하기까지 전경련은 급박하게 돌아갔다.

 시계추를 그 당시로 되돌려보자.

 한 해를 마감하는 1993년 12월 30일.

 체신부은 이날 오전 전경련에 제2 이동통신사업자 선정 컨소시엄 구성을 의뢰하는 공문을 보냈다. 이인표 체신부 통신정책심의관(SKT 감사 역임)이 서울 여의도 전경련을 방문, 조규하 상근부회장(전남도지사 역임)에게 공문을 전달했다.

 체신부는 공문에서 컨소시엄 구성 시 고려해야 할 9개항의 정부 측 지침을 밝혔다.

 우선 컨소시엄 구성 기간은 1994년 2월 28일까지로 하고 데이콤과 한국통신(현 KT) 등 기간통신사업자의 대주주는 컨소시엄 참여에서 배제하도록 했다. 또 컨소시엄 구성 지분 중 20% 정도를 외국기업에 배정하고 제2 이동통신사업자는 국내에서 개발 중인 CDMA 방식을 적용하도록 했다.

 윤동윤 체신부 장관(현 한국IT리더스포럼 회장)의 회고.

 “제2 이동통신사업자 선정 관련 공문을 결재하려고 보니 CDMA 방식으로 한다는 단서 조항이 빠져 있었어요. 차관 결재까지 난 서류를 되돌려 보내 그 조항을 넣도록 했어요. 그게 나중에 CDMA와 TDMA 간 논란이 됐을 때 미국의 압력을 막는 방패가 됐습니다.”

 전경련에 국민의 시선이 쏠렸다. 이날부터 전경련은 강행군을 이어갔다.

 새해를 맞은 1994년 1월 3일. 전경련은 사무국에 조규하 부회장을 반장으로 하는 이동통신대책반을 설치했다. 선정 원칙도 정했다. 모든 사항은 회장단 회의에서 만장일치로 결정키로 했다.

 전경련은 1월 15일 삼성그룹 영빈관인 승지원에서 비공식 첫 회장단 회의를 열어 지배주주와 지분배분, 외국업체 선정방법 등을 논의했다. 이날 회의에서 선경그룹(현 SK그룹)과 쌍용그룹은 제2 이동통신 단일 컨소시엄에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 선경그룹은 대신 공개입찰을 통해 추진되는 한국이동통신 주식 매각에 참여, 한국이동통신의 지배주주가 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에 회장단은 선경그룹의 이통주식 매입을 적극 지원키로 했다.

 전경련 회장단은 1월 24일 지배주주를 선정하기 위해 기업들로부터 신청서를 받기로 했다. 신청서에는 컨소시엄 구성 내역을 비롯해 영업·기술계획서, 특정지역 통신망 건설계획서, 전기통신 발전을 위한 계획서 등을 첨부하도록 했다.

 전경련이 2월 4일 서류를 마감한 결과, 포철(현 포스코)과 코오롱·금호 3개사가 지배주주 참여를 신청했다. 전경련은 2월 7일과 8일 서류 검토를 하고 2월 14일부터 18일까지 5일간 비공개로 면접과 합동심사를 실시했다.

 전경련은 최종현 전경련 회장(작고)을 위원장으로 회장단 9명과 학계·연구소 전문가 9명 등 18명으로 심사위원회를 구성했다. 외부 심사위원은 △김성기 서울대 교수 △이남주 서강대 교수 △서성무 중앙대 교수 △김영우 과학기술정책관리연구소장 △강민호 한국통신연구개발단 품질보증단장 △홍대형 서강대 교수 △홍진표 한국전자통신연구소 정보통신표준연구센터 소장 △임명섭 한국전자통신연구소 계통연구실 실장 △이영희 한국전자통신연구소 통신망기술연구실장 등이었다.

 심사는 영업과 기술, 경영 등으로 나눠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진행했다. 심사장에는 지배주주 신청기업 회장을 비롯해 권혁조 신세기이동통신 사장(현 광운대 교수·한국IT리더스포럼 감사)과 송대평 제2 이동통신 사장(코오롱그룹 부회장 역임), 윤양중 금호텔레콤 사장(현 일민문화재단 이사장) 등과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무선접속과 시스템 설계 등을 심사했던 임명섭 실장(현 전북대 전자정보공학부 교수)의 말.

 “포철과 코오롱이 각축을 벌였습니다. 최종현 회장도 참석한 가운데 심사를 진행했는데 역시 기업 CEO들은 관록이나 식견, 순발력 등이 뛰어 났습니다. 심사위원들의 질문에 답변하는 태도나 내용에 관록이 묻어 나오더군요.”

 심사평가에서 포철의 신세기이동통신이 1위, 코오롱의 한국이동통신이 2위를 차지했다.

 권 사장은 교환기 업체 사장을 역임한데다 미국 퀄컴과 팩텔 등을 주주사로 영입해 이 분야에 관한 지식이 해박했다.

 전경련 회장단은 1월 22일과 23일 연쇄 비공개 모임을 승지원에서 열고 지배주주 문제를 논의했다. 전경련은 이를 토대로 주주 구성과 지분 배정안을 마련해 포철과 코오롱 등에 협력 경영을 요구했다. 정명식 포철 회장(현 한국산악회 고문)과 이동찬 코오롱그룹 회장(현 명예회장), 권혁조 사장과 송대평 사장 등이 롯데호텔에서 지배주주 문제를 협의를 했으나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권혁조 사장의 증언.

 “저는 그렇게 할 수 없다고 강력히 반대했습니다. 포철은 공기업으로 국제 경쟁력이나 생산 능력 등에서 세계적인 기업인데 당연히 포철이 지배주주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끝까지 이런 소신을 굽히지 않았고 결국 이를 관철시켰습니다.”

 전경련 회장단은 합의시한을 25일로 늦췄다. 만약 합의가 안 되면 지배주주를 회장단이 결정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운명의 날인 2월 28일.

 전경련은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회장단 회의를 열고 포철의 신세기이동통신을 주도사업자(지배주주)로 최정 선정했다.

 최종현 회장은 이날 정명식 포철 회장과 이동찬 코오롱그룹 회장이 배석한 가운데 가진 기자회견에서 “포철의 신세기이동통신을 제2 이동통신 단일 컨소시엄의 주도 사업자로 만장일치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전경련은 신세기이동통신 1대주주인 포철에 15%, 2대주주인 코오롱에 14%의 지분율을 배정했다. 대표이사는 포철에서, 부사장은 코오롱이 맡기로 합의했다.

 신세기이동통신은 5월 2일 정식 출범했다. 신세기이동통신은 이날 포철과 코오롱이 각각 30억원과 28억원의 자본금을 납입하고 서울지방법원에 법인등록을 했다. 대표이사 사장에는 포철의 권혁조씨, 대표이사 부사장에는 코오롱의 강신종씨가 각각 선임됐다.

 권 사장은 서울생으로 서울대 문리대와 미국 워싱턴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하고 동양시스템산업 사장, 동양정밀공업 사장 및 부회장, 포항제철 이동통신사업추진본부장을 역임했다. 그는 이후 학계로 옮겨 광운대 정보통신대학원장을 거쳐 현재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전경련은 6월 4일 체신부에 신세기이동통신을 제2 이동통신 주도 사업자로 추천하는 공문을 보냈다. 신세기이동통신도 6월 7일 체신부에 이동전화 사업 신규허가 신청서를 제출했다.

 신세기이동통신은 6월 30일 서울 신라호텔 다이너스티홀에서 창립기념식을 갖고 회사 명칭을 ‘㈜신세기통신’으로 변경했다.

 이날 기념식에는 윤동윤 체신부 장관과 장경우 국회체신과학위원장(현 한국캠핑캐라비닝연맹 총재), 최종현 전경련 회장, 김만제 포철 회장(한나라당 정책위의장 역임), 이동찬 코오롱 회장, 신세기이동통신의 외국인 제1대주주인 ATC의 샘 짐 회장 등 관계자 1000여명이 참석했다.

 체신부는 7월 30일 신세기통신에 특정통신사업허가서를 교부했다. 허가 공문에 CDMA 방식으로 해야 한다는 내용을 포함시켰다.

 박성득 체신부 정보통신정책실장(정통부 차관 역임. 현 한국해킹보안협회장)의 회고.

 “국장이 가지고 온 결재서류에 제가 직접 그런 내용을 써 넣었어요.”

 허가서는 권혁조 사장이 체신부를 방문, 박 실장으로부터 직접 받았다.

 권 사장은 CDMA 방식의 이동통신서비스 장비 선정 과정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했다.

 그는 장비공급 업체들이 납품기한을 어길 경우 1000억원의 벌금을 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당시 신세기통신이 구매할 장비 총액이 1000억원이었다.

 권 사장의 말.

 “장비업체를 선정하는 데 여기저기서 엄청난 청탁과 압력이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직접 제안요청서(RFP)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단서조항에 만약 납품기일을 어겨 서비스에 실패할 경우 1000억원의 페널티를 납부해야 한다는 내용을 넣었습니다. 유례없는 내용이었어요. 장비업체들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권 사장은 이런 내용의 공문을 CDMA 시스템을 개발 중인 삼성전자와 LG정보통신·현대전자 등과 에릭슨·모토로라 등 국내외 업체에 보냈다. 하지만 업체들이 서로 눈치를 보며 제안서를 내지 않았다.

 권 사장은 김주용 현대전자 사장(현 한국공학한림원 회원)을 만나 제안서를 빨리 내라고 독촉했다. 현대가 가장 먼저 제안서를 내자 삼성과 LG정보통신 등도 뒤질세라 제안서를 제출했다. 신세기통신은 서울 성북동 포철 안가(安家)에서 2주에 걸쳐 장비업체들이 제출한 제안서를 꼼꼼하게 검토했다. 심사위원회를 구성해 기술의 신뢰성 등을 중점 분석했다. 그런 가운데 외국 주주사에 장비를 몰아주라는 압력도 거셌다. 권 사장은 이에 굽히지 않고 원칙에 충실했다.

 권 사장의 증언.

 “책임과 의무가 명확해야 하는데 그럴 수 없다고 딱 잘랐습니다.”

 그는 심사기간 동안 집에도 들어가지 않고 호텔에서 머물렀다. 외부 인사들과 만남이나 연락도 하지 않았다. 잘못 처신했다가 근거 없는 음해에 시달릴 수 있었다.

 제안서를 심사해 1995년 3월 30일 삼성전자와 첫 장비구매 계약을 체결했다. 이어 현대전자와도 계약을 맺었다. 제안서를 냈다가 탈락한 모토로라는 ‘세계적인 기업을 신세기가 탈락시켰다’며 불쾌함을 감추지 않았다.

 CDMA 방식을 놓고 시련도 겪었지만 신세기통신은 1996년 4월 1일 ‘디지털 017’ 개통식을 갖고 수도권과 대전권에서 CDMA 이동전화 상용서비스를 시작했다. 신세기통신의 등장은 이동전화의 경쟁시대 개막을 알리는 신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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