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지진 100일] 일본대지진 100일. 열도의 화두는 `절전`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 2010년 전력 사용량과 2011년 공급가능 전력량 비교

 올해 여름 일본 열도 최대의 화두는 절전이다. 후쿠시마 원전 가동 중단으로 전력 공급량은 줄었지만 전력 소모량의 정점을 찍는 계절적 특성에 대지진 피해를 당한 제조업 생산라인의 복구가 더해지면서 대규모 정전까지 우려된다.

 일본 정부는 물론이고 산업계도 절전 대책을 마련했다. 일본 정부는 15%라는 절전 가이드라인을 내놨고, 산업계는 이보다 더 강력한 25% 절전을 결의했다. 일본 재계를 대표하는 게이단렌 소속 543개 기업 중 80% 이상이 이에 동의했다.

 

 ◇대기전력과의 전쟁=최근 일본에선 절전을 기술적으로 이뤄내려는 시도가 속속 결실을 거두는 추세다. 국민의 자발적 노력에만 기대지 말고 첨단 기술을 이용해 전기 소모를 근본적으로 줄이겠다는 시도다.

 가장 뚜렷한 성과는 대기전력 절감 기술에서 나왔다. 전자제품은 전원을 꺼도 플러그를 뽑지 않으면 데이터 보존 등에 쓸 미량의 전기를 계속 소모한다. 통계에 따르면 대기전력은 가정 내 전력 소모량의 6∼7%를 차지한다.

 도시바는 디지털 가전의 대기 전력을 없애는 에코(Eco) 칩을 개발했다고 지난 15일 발표했다. 콘센트로 흘러오는 전기를 완전 차단하는 기능이다. 에코 칩 자체도 소비 전력을 90% 줄였다. 도시바는 LCD TV와 블루레이플레이어에 이 기술을 적용할 예정이다.

 같은 날 엘피다는 기존 제품에 비해 대기전력을 99% 줄일 수 있는 D램 기술을 공개했다. D램의 전원 스위치 역할을 담당하는 게이트 소재를 실리콘에서 하프늄과 타이타늄 합금으로 대체, 획기적인 대기전력 감소를 실현했다.

 이에 앞서 오노 히데오 도호쿠대학 교수는 NEC와 함께 전자 제품의 대기 전력을 없애는 반도체 기술을 개발했다고 13일 밝혔다. 오노 교수는 5년 후 상용화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지난달 말에는 절전 콘센트도 등장했다. 교토대학과 건설업체 다이와하우스공업을 중심으로 고베대학과 계측기 업체 에네게토 등이 함께 개발한 이 제품은 절전 목표치를 설정하면 그에 맞도록 알아서 불필요한 전기를 차단한다. 3년 내에 상용화할 예정이다.

 

 ◇소비 패턴은 절전 제품으로 변화=절전이 일본 조명 시장의 흐름을 바꿨다. 일본의 LED 전구 판매가 처음으로 백열 전구를 추월했다. 시장조사기관 GfK는 지난 5월 LED 전구의 시장 점유율이 42.3%로 39%의 백열 전구를 앞질렀다는 자료를 발표했다.

 5월 LED전구 판매 수량은 작년 같은 기간의 2.9배에 달했다. LED 전구는 대지진 직후부터 수요가 급증했다. LED 전구 시장 점유율은 2010년 8월 20%를 돌파한 후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했다. 3월 대지진을 기점으로 두 달 만에 2배나 상승, 40%를 훌쩍 넘었다. 7월께면 이 수치가 50%에 이를 전망이다.

 대지진 여파로 절전 의식이 강해지면서 가격은 비싸지만 전기 소모가 적고 수명이 긴 LED 전구를 소비자가 선택한 셈이다. LED 전구는 소비 전력이 백열전구의 7분의 1에 불과하다. 수명도 10배 이상 길다. 현재 일본의 LED 전구 가격은 개당 평균 2300엔 수준이다. 1년 전보다 20%가량 하락한 금액이다.

 PC 신제품에서도 절전 기능이 눈길을 끈다. 도시바와 후지쯔, NEC, 레노버재팬 등 대부분 PC 업체가 심야 전기 충전, 이른바 ‘피크 시프트(Peak Shift)’ 기능을 신제품에 도입했다. 전력 수요가 적은 야간에 PC 내장 배터리를 충전한 후 이를 주간에 사용하는 방식이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LCD 화면의 밝기를 낮추고 사용하지 않는 부품에 전기를 공급하지 않는 기능이나 이용자가 자리를 비우면 이를 인식, LCD 화면을 끄는 기능도 등장했다. 절전 의식 향상을 위해 전력 소비를 그래프로 보여주는 PC도 나왔다.

 선풍기 판매 급증도 이채롭다. 선풍기 전력 소모량은 에어컨의 5% 수준이다. 대표적 가전 양판점인 ‘야마다전기’의 4월 선풍기 판매 대수는 작년 동기 대비 460%나 늘어났다. 이 추세라면 1973년 이후 매년 하락세를 보이던 일본 선풍기 판매량이 처음으로 상승곡선을 그릴 전망이다.

 

 ◇기업은 여름휴가 전면 조정=지난 4월 초 도시바는 예정에 없던 노사협의를 개최, ‘휴일 전면 재조정’을 결의했다. 도시바 노사는 전력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파격적 대책을 만들었다. 상대적으로 전력 사용량이 적은 5월과 10월에는 토요일에 근무하고 그만큼 여름휴가 기간을 늘린다는 내용이다. 냉방 및 조명의 전력을 줄이기 위해 새벽과 심야 조업을 감수한다는 특단의 조치도 마련됐다.

 소니도 연말까지 모든 공휴일에 근무하는 대신 여름에 2주일가량의 휴가를 주기로 했다. 니콘은 이미 4월 말이나 5월 초에 휴일이 몰려 있는 골든위크를 반납했고 여름휴가를 늘리기로 했다.

 일본 경제산업성 자료에 따르면 작년 7월부터 9월까지 전력 사용량과 올해 같은 기간 공급 가능 전력량을 비교하면 최대 1500만㎾ 이상 부족하다. 경제산업성은 사회적 절전 분위기를 감안해도 여름 피크 타임에는 수요와 공급의 800만㎾ 격차가 불가피하다는 분석을 내렸다.

 만일 대규모 정전이 일어나면 그 피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다이이치생명 경제연구소 측은 “3일 정전은 실질 국내 총생산(GDP)을 1% 정도 떨어뜨린다”고 진단했다. 지나친 절전도 경제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우려도 있다. 닛코증권 측은 “전력을 15% 절감하면 7~9월 국내 산업 생산량이 2.8% 줄어든다”고 밝혔다.

장동준기자 djj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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