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저하게 `총수` 위주로 움직이는 대기업들의 경영 관행이 또다시 도마에 올랐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16일 청와대에서 열린 전국중소기업인대회에서 "대기업의 총수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하면서 이 문제가 또다시 수면 위로 부상했다.
총수문화는 `우리 기업을 최고로 만들어야 한다`란 총수들의 의중이 반영되면서 무리한 실적주의로 이어지고 있다. 인사와 조직관리는 물론 경영전반이 이 같은 기준에서 진행되고 실적에 매달리다 보니 마구잡이식 수익내기가 관행화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국내 굴지의 한 대기업에서 퇴직한 최 모 부사장은 "과거 경험으로 보면 오너가 가장 중시하는 실적이 기업 경영을 하는 데 핵심요인"이라면서 "당연히 다른 기업이나 중소기업의 영역과 상충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총수의 실적위주 문화가 남의 희생을 유발한다"고 지적한 것도 실적지상주의에 따른 중소기업 영역 침해 현상을 꼬집은 것으로 풀이된다.
예컨대 현대차그룹은 올해 들어 정가판매제를 시행하면서 전국 850개 대리점에 판촉용 무료 선팅 쿠폰을 일괄 배포했다. 당연히 그동안 납품하던 중소 선팅업자들을 자극했다.
쿠폰 물량을 받기 위해 반값 이하로 공임을 맞춰야 했기 때문이다.
대기업이 핵심사업에 더해 부수사업까지 장악하려는 사례는 또 있다. 최근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소모성 자재구매대행(MRO) 사업이 대표적이다. MRO 사업을 하고 있는 한 기업 대표는 "모기업에서 매우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실적지상주의는 협력업체에 대한 압박으로 확산되고 있다.
물류나 원재료 조달분야 등에서 해당 대기업의 계열사와의 거래를 선제조건으로 고집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2만개 부품을 조립해 생산하는 자동차 제조업 특성상 가장 많은 협력사를 보유한 현대차그룹은 최근 일부 협력업체들에 납품단가 인하를 요구하는 등 대대적인 `정책 CR(Cost Reduction)`를 추진해 원성을 빚기도 했다.
한 협력업체 관계자는 "정부가 상생을 강조하고 있지만 해당 기업의 실적중시 관행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며 "아무리 들여다봐도 적정 수준에 못 미치는 단가를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과 LG, SK 등 다른 대기업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지적이다.
총수문화가 대표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사례는 인사부분이다.
국내 대기업 내에서는 `오너 일가가 너무 한다`는 말이 곧잘 나온다.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막내딸 신유미 씨(28)는 지난해 호텔롯데에 고문으로 입사했다.
신 고문은 임원급 지위로 신씨는 매월 4000만원 이상의 급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사내에서는 그가 출근하는 모습을 봤다는 사람들이 없다.
회사가 총수 자녀라는 이유만으로 고문이란 타이틀과 과도한 급여를 지급하고 있지 않으냐는 비판이 사내에서 제기되고 있다는 후문이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신유미 씨에 대해선 우리도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경영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오너 3, 4세가 주요 포스트에 기용되는 것은 이미 당연시되고 있다.
특히 3ㆍ4세 그룹들의 성과경쟁이 치열한 게 문제다. 3ㆍ4세 그룹들의 실적지상주의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대기업 직원인 A씨는 "주요 계열사들엔 오너 패밀리들이 자리 잡고 있다"며 "이들이 경쟁적으로 실적지상주의의 경영성과를 보이겠다고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오너그룹에 충성을 다하는 라인그룹이 형성돼 있다. 줄서기식 인사구조가 이미 오랫동안 형성된 탓에 총수 의지에 반하는 `의사결정`이란 상상하기가 어렵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한국 대기업 총수 경영의 문제점으로 △오너 일가의 독단경영 △검증 안된 3ㆍ4세를 위한 승진인사 △실적에 매달려 중소기업 영역 침해하기 △편법증여와 지배구조 불투명성 등을 꼽는다.
재계 관계자는 "정부가 대기업을 너무 몰아붙이는 게 다소 과도한 측면이 있지만, 오너 일가 수십 명이 주요 자리를 독차지하는 식의 관행은 반드시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매일경제 김경도 기자 / 김규식 기자 / 김은정 기자 / 정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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