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IBM이 한국에 법인을 설립한 게 지난 1967년. 우리나라 IT분야 다국적 기업의 역사다. 불혹이 넘은 나이지만, 국내에 진출한 IT 다국적 기업은 ‘질풍노도의 시기’를 살고 있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사태 이후 한국지사 입지는 더욱 줄었다. 직원 사기도 낮다. 국내 업체 대비 높은 급여와 넉넉한 휴가일수 및 복리후생, 양질의 해외 교육 프로그램 등은 이제 옛 얘기다.
본사 제품을 수입해 국내시장에 내다파는 비즈니스 특성상, 수출을 통해 국가 경제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도 아니다. 이들 기업의 마지막 자존심이던 ‘현지인력 고용창출’ 역시 더 이상 대의명분이 되지 못한다. 실제로 다국적 IT기업 중 국내 최다를 자랑하는 한국IBM의 임직원 수는 지난 2009년 2711명에서, 올해는 2375명으로 줄었다.
다국적 기업 지사장의 위상 격하는 심각하다. 자신이 직속 보스(상관)가 아니라는 이유로 부하직원의 리포트(보고) 라인에서 제외되기까지 한다. 외부 인사와의 단순 회동도 본사의 컨펌(확약)을 받아야 가능해, 아예 눈과 귀를 닫고 산다는 지사장도 있다. 지사장 수명이 파리 목숨이 된 것도 이젠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몇몇 장수 지사장들의 경영 노하우를 보면 뭔가 남다른 점이 보인다. 본사의 매출 압력과 국내 시장의 현실 사이에서 커뮤니케이션을 잘 한다. 쉽게 말해 ‘줄타기’다. 때로는 감각적으로, 또 한편으로는 철저히 계산적으로 움직인다. 본사나 국내 시장 어느 한 쪽에 치우지지 않는다는 얘기다. 최근 한국HP와 한국테라데이타 지사장이 잇따라 교체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무엇보다 어려운 환경 하에서도 모국 시장과의 동반성장에 힘쓰는 지사장은 본사의 존경까지 받는다.
“저도 결국 한국사람입니다. 대한민국 경제발전을 위해 기여하려 노력할 때, 저쪽도 우리를 다시 보더라고요. 물론 티나게 하지는 않습니다.”
최근 삼성전자를 본사 클라우드 신사업에 참여시킨 9년차 지사장이자, 본사 수석부사장까지 오른 김경진 한국EMC 사장의 말에는 울림이 있다.
정보산업부 차장
류경동기자 ninan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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