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게임은 ‘애들이나 하는 놀이’에 지나지 않았다. 이제는 수출로만 2조원 이상을 벌어들이는 효자산업으로 성장했다. 아직도 일부 기성세대들은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며 실효성 없는 규제를 남발하지만 게임은 이미 남녀노소 누구나 즐기는 문화 콘텐츠로 자리잡았다.
2011년 게임 업계의 선두주자는 넥슨이다. 2007년만 해도 3위를 달리던 넥슨은 3년도 채 지나지 않아 업계 1위를 차지했다. 아직 공식 발표되지 않았지만 넥슨의 2010년 매출은 1조원에 육발할 전망이다.
지난 2000년 넥슨의 매출이 268억원이니 10년 만에 40배 가까운 초고속 성장을 이뤄낸 셈이다. 우리나라를 넘어 세계 최고의 게임 업체로 도약하려는 넥슨의 성공 요인은 여러 가지지만 ‘인수합병’과 ‘부분유료화’, 그리고 ‘해외 유통망’이라는 세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미운 오리 새끼, ‘미다스의 손’과 만나다
넥슨의 오늘을 만든 가장 큰 힘은 ‘인수합병’이다. 넥슨이 인수합병으로 얻은 게임들은 중요한 순간마다 성장의 지렛대가 됐다. ‘메이플스토리’와 ‘던전앤파이터’가 대표적 사례다.
넥슨은 2000년대 이후 끊임없는 개발사 인수를 통해 새로운 피를 수혈했다. 새로운 게임의 확보는 다양해진 시장의 요구와 변화를 빠르게 흡수하는 수단이 됐다. 넥슨은 각각 메이플스토리와 텐비를 개발한 위젯스튜디오와 시메트릭스페이스를 합쳤고, 권준모 대표가 창업했던 모바일게임사 인텔리전트를 사들였다. 던전앤파이터를 개발한 네오플을 인수한 뒤에는 웹보드게임 개발사인 코퍼슨스와 플래시게임 포털 운영사인 휴먼웍스도 인수했다.
넥슨의 인수는 반전의 역사다. ‘초딩게임’으로 취급받던 메이플스토리는 인수 후에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하며 해외 진출 및 저연령층 게임의 교과서가 됐다. 2006년에는 실패한 게임으로 취급받은 두빅엔터테인먼트의 컴뱃암즈를 인수해 북미 시장 론칭에 성공했다.
가능성이 있다면 과감한 투자도 아끼지 않았다. 3800억원이 투자된 네오플의 인수는 파격적 인수 금액만큼이나 기록적 결과물을 내놨다. 넥슨은 게임의 가치를 높이 평가했고 QQ메신저라는 중국 최대 플랫폼을 가진 텐센트와 연결했다. 던전앤파이터는 중국 진출 이후 매년 최대 이용자수 기록을 갈아치우며 연간 순이익 1000억원 이상을 벌어들였다.
넥슨은 상장을 앞두고 인수에도 ‘강수’를 뒀다. 게임업계 최대 빅딜 사례로 떠오른 엔도어즈와 게임하이를 인수했다. 넥슨은 유명 개발자 김태곤 상무의 신작 2종과 1인칭슈팅(FPS)게임 최고 흥행작 ‘서든어택’과 후속작의 판권을 확보했다. 반대로 내부 스튜디오의 독립성 확보와 역량 강화를 위해 넥스토릭과 넥슨노바 등을 자회사로 분사시켰다.
넥슨은 물리적인 합병에 그치지 않고 사업역량과 해외서비스 노하우를 결합시켰다. 메이플스토리·컴뱃암즈·던전앤파이터는 넥슨의 글로벌 플랫폼을 타고 국내뿐 아니라 중국·북미·유럽 등 해외 시장에서 더욱 선전하는 사례가 됐다.
#부분유료화, 게임시장의 문턱을 낮추다
국내 온라인게임 시장은 초창기 5년간 온라인롤플레잉게임(MMORPG) 외에 새로운 장르가 자리잡지 못했다. 문제는 비즈니스 모델이었다. 1995년 바람의 나라·리니지로 출발한 한국 온라인 게임의 유료화는 정액제가 전부였다. 정액제는 특정기간 동안 일정 금액을 지불하고 제한 없이 게임에 접속하는 방식으로 장시간 플레이를 요구하는 MMORPG 외에는 적용하기 어려웠다. 사용자도 성인 남성으로만 한정됐다.
넥슨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유료화 모델을 선보이며 정액제의 장벽을 부쉈다. 2001년 7월 넥슨의 퀴즈퀴즈는 국내 온라인 게임 최초로 아바타(온라인상 가상 캐릭터) 판매를 바탕으로 부분유료화 방식을 도입했다. 퀴즈퀴즈는 도입 한 달만에 월 매출 2억원의 성과를 올렸고 300만명의 가입자를 확보했다. 삼성전자 애니콜, 한솔, 필라 등 유명 브랜드의 게임 내 PPL 광고도 유치했다.
부분유료화 방식은 비엔비·카트라이더 같은 캐주얼 온라인 게임의 대중화를 열었다. 넥슨은 다양한 캐주얼 게임을 개발했고 문턱이 낮아지면서 여성, 학생, 저연령층이 대거 게임 사용자로 유입됐다. 게임 조작은 보다 쉽고 간단해졌고 소재나 캐릭터도 한결 친근해졌다. 넥슨의 게임포털은 남녀노소 모두 즐기는 게임 플랫폼이 됐다.
넥슨의 비즈니스 모델 연구는 부분유료화에서 그치지 않았다. 2003년 마비노기 비공개테스트에서 2시간 무료 플레이를 기반으로 한 프리미엄 서비스 정책을 발표했다. 다양한 사용자의 취향과 생활방식의 변화를 반영한 결과다.
넥슨은 2005년 오래된 게임에도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적용시켜 제 2의 전성기를 만들었다. 바람의나라·테일즈위버 등 서비스가 10년이 된 낡은 게임들을 일제히 부분유료화로 전환했다. 새로운 사용자들이 오래된 게임으로 모여 들었고 게임은 수명을 연장했다. 이로서 넥슨의 부분유료화 비즈니스는 온라인 엔터테인먼트 역사의 가장 성공적 사례가 됐다.
#해외 진출 성공의 키워드 ‘현지 유통망’ 확보
넥슨이 일찍이 바람의 나라를 북미 시장에 내놓았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해외에 게임을 서비스하는 것은 상품판매와 전혀 달랐다. 현지 시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고 지속적인 업데이트도 할 수 없었다.
넥슨은 해외 거점을 확보하며 본격적인 현지화에 나섰다. 넥슨은 2002년 넥슨 일본법인 설립을 시작으로 2005년 미국법인, 2007년 영국 런던에 유럽법인을 설립했다. 아시아·북미·유럽·신흥 지역을 무대로 한 글로벌 시장의 핵심 거점을 확보했다. 동시에 게임을 해외 시장에 정착시킬 온라인 비즈니스가 진행됐다.
넥슨은 규모가 아닌 아이디어로 제압했다. 전 세계 60개국 회원들의 민족·지역·국가별 문화와 취향에 맞춰 현지화 작업을 진행했다. 사용자의 마음을 사로잡기 전에 해당 문화를 게임 속 배경과 캐릭터, 아이템에 골고루 접목시켰다. 메이플스토리는 옥토버페스트·벚꽃축제·토마토축제 등 각 국가의 기념일에 맞는 이벤트를 진행했다. 테일즈위버에는 벚꽃과 온천이 등장했고 카트라이더에는 베이징의 자금성과 상하이의 동방명주가 만들어졌다.
대중화에 걸림돌이 됐던 결제방식도 오프라인 유통에서 해답을 얻었다. 넥슨의 부분유료화 방식은 업계 최초로 도입한 선불형 결제수단과 만나면서 해외 상용화의 물꼬를 텄다. 넥슨은 미국 내 최대 유통업체인 베스트바이와 퓨쳐샵 등을 통해 ‘선불결제 카드(Pre-Paid Card)’를 보급했다. 개인정보 제공에 대한 거부감이 높고, 신용카드 사기율이 높은 북미시장에서 최적의 소액 결제 수단으로 각광받았다.
2006년을 기점으로 넥슨의 해외 매출은 꾸준히 상승했다. 넥슨은 전세계에 30종의 게임을 서비스하며 약 3억5000만명의 회원을 확보했다. 2009년에는 넥슨그룹 전체 매출 중 67%에 이르는 약 4714억원이 해외에서 발생했다. 이는 전체 한국 온라인 게임업체가 2009년 한해 동안 해외에서 거둔 수익인 15억달러(약 1조7000억원)의 28%에 해당하는 수치다.
#게임 캐릭터의 변신, 1000만권 판매 신화
넥슨의 캐릭터는 온라인 게임에 머무르지 않고 다양한 변신을 해왔다. 저연령층, 여성들에게 사랑받으며 애니메이션·만화·학용품·인형 등으로 재탄생했다. 넥슨의 캐릭터를 이용한 라이선스 상품은 총 1000종에 이른다.
넥슨의 원소스멀티유즈(OSMU)에서 가장 뛰어난 궁합 사례를 보인 것은 만화와 애니메이션이다. 대표적인 아동만화로 손꼽히는 ‘메이플스토리 오프라인RPG’는 메이플스토리의 게임 캐릭터를 이용한 만화책으로 총 43권이 출시됐다. 2004년 아동만화로 발간된 이래 지금까지 300주 이상 베스트셀러 자리를 꾸준히 지키며 2009년에는 누적 판매 부수 1000만권을 돌파했다. 1000만권 이상 판매된 국내 아동 서적은 먼나라 이웃나라, 그리스 로마신화 등 6개에 불과하다.
비엔비, 카트라이더, 버블파이터로 이어지는 다오배찌의 캐릭터는 그 자체만으로 넥슨의 대표 얼굴이 됐다. 한국 최고의 게임 캐릭터로 선정된 ‘배찌’는 진학 전 아동들에게는 아이돌 못지 않은 인기를 누린다. 다오배찌를 주인공으로 한 첫 번째 애니메이션은 2007년 KBS2 TV를 통해 첫 전파를 타며 인기를 누렸다.
2008년에는 한국과 일본에서 고른 인기를 얻고 있는 메이플스토리를 일본 매드하우스와 공동 제작하여 SBSTV를 통해 방영했다. 일본 방영 당시에는 개구리중사 케로로를 누르고 전체 애니메이션 시청률 순위에서 8위를 차지했다. 던전앤파이터도 한일 공동 제작 애니메이션 ‘던전앤파이터, 슬랩업파티’로 만들어져서 한일 양국에서 방영됐다.
#전 세계 어디에서나 재미와 만난다
2010년부터 넥슨은 게임을 바탕으로 새로운 확장을 시도한다. 넥슨은 온라인 게임을 제외한 스마트폰 게임, 소셜게임, 웹게임의 개발 및 서비스를 넥슨모바일에 일임했다. 넥슨은 ‘어디서나 즐겁게(Fun Everywhere)’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우며 기존 온라인 게임과 모바일 게임을 새로운 기기와 플랫폼에 맞게 고쳤다. 이제 즐거움은 새로움보다 언제 어디서나 접근 가능할 수 있는 가벼움이 더 중요해졌다.
인기 게임이 손바닥만한 작은 스마트폰으로 속속 빨려 들어갔다. 넥슨이 2010년에 앱스토어로 출시한 메이플스토리 도적편은 상대적으로 고가인 4.99달러임에도 불구하고 인기를 모았다. 미국 앱스토어 롤플레잉게임 장르에서 일주일 이상 1위를 유지했으며, 싱가포르와 타이완에서는 전체 유료게임에서 1위를 차지했다.
국내 앱스토어의 게임 카테고리가 막혀 있는 상황에도 글로벌 마켓은 여전히 성장 중이다. 2011년 3월에 출시된 카트라이더 러쉬는 인기 온라인게임 ‘카트라이더’의 iOS용 버전으로 만들어진 게임이다. 아이패드HD, 안드로이드, 페이스북 버전도 개발 중이다. 메이플스토리도 페이스북 기반의 소셜게임으로 탈바꿈해 오는 하반기 출시를 앞두고 있다. 국경이나 언어의 장벽이 사라진 오픈마켓과 스마트미디어의 등장은 무한한 기회의 땅을 만들었다.
김명희기자 noprint@etnews.co.kr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 넥슨 그룹 연도별 매출 추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