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부가 일본 후쿠시마 제1 원자력발전소의 기준치 대비 방사선량이 6000배에 달하는 것에 대해 위기경보 수준을 ‘심각’ 단계(레드)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응 매뉴얼상 경계경보를 발령해야 하지만 정부는 아직 국가위기경보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정부가 지난 2009년 관련 매뉴얼을 만들어 놓고도 정부 스스로 지키지 않고 있는 것이다.
17일 교육과학기술부가 제작, 활용 중인 ‘인접국가 원자력 사고 대응 매뉴얼’ 4단계 중 우리 정부는 현재 일본 후쿠시마 1원전 방사능 유출 상황을 최고단계인 4단계 ‘심각(레드)’ 수준으로 상정하고 있으나 실제 경보를 발령하지 않고 있다.
인접국 원자력 사고 대응 매뉴얼은 관심(블루)·주의(옐로)·경계(오렌지)·심각(레드) 총 4단계로 구분돼 있다.
매뉴얼에 따르면 인접국가 원자력 사고 상황을 인지한 해당 기관은 신속하게 교육과학기술부에 보고하고, 교과부는 자체 상황평가회의를 거쳐 위기경보를 발령하되, 3단계인 ‘경계’경보 이상부터는 대통령실 국가위기상황센터와 협의해 발동하도록 규정해 놨다.
‘심각(레드)’ 상황은 인접국가 방사능 누출에 대비해 정부 차원의 (비상)상황실을 운영하는 단계를 일컫는다. 원자력안전기술원(KINS)은 지난 19일부터 30여명으로 구성된 비상대책반을 가동하고 있다. 판단기준과 대응조치상으로 보면 현재 우리나라는 일본과 인접국가고, 원자력 사고 발생 및 방사성 물질 다량 누출이 공식 확인됐기 때문에 ‘심각’단계에 해당한다.
이 매뉴얼은 인접국가의 원자력 사고 등으로 인해 우리나라에 방사능 피해가 발생할 경우에 대비해 범정부 차원의 대응체계 및 제반 대응 활동과 조치절차, 각 기관의 임무 및 역할을 규정해 놨다. 국가 위기경보를 발령하고 그에 따른 기관과 임무역할, 국민 행동 요령 등을 알려 대비시켜야 한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일본 원자력 사고와 관련 상황분석회의를 개최해 심각 단계의 국가 위기경보를 발령하고 비상대응 태세에 돌입, 우리나라에 미칠 방사능 영향을 평가하는 등 비상대응 활동을 수행해야 한다. 실제 정부는 비상대응 활동은 수행 중이지만 국가 위기경보는 발령하지 않았다.
KINS 관계자는 “상황단계별 경보 발령 등을 하지 않고 있는 이유는 지금 우리는 여전히 방사능으로부터 안전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라며 “만약 방사능 영향이 있다거나 상황이 악화된다고 판단되면 위기경보를 내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심각(레드) 바로 전 단계는 경계단계로 인접국가에 원자력 사고 발생 및 방사성 물질 누출 징후가 포착됐을 경우 24시간 상황을 주시하는 체제를 유지하도록 정해놨다. 또 이 단계에서는 야간이나 휴일 1~2명이 비상근무를 하게 된다.
원자력안전기술원은 현재 주야간 구분 없이 30명의 비상대책반을 풀 가동 중이다. 그만큼 상황이 절박하다는 방증이다.
이 대응 매뉴얼에는 교육과학기술부를 주관기관으로 대통령실 국가위기상황센터와 국가정보원·국방부·통일부·외교통상부·행정안전부·보건복지부·농립수산식품부·국토해양부·경찰청·소방방재청·기상청·피해예상 지자체·해당지역 군부대 등이 대응기관으로 분류돼 있다. 또 실무기관으로는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한국원자력의학원·한국원자력연구원·한국해양연구원을 명시해놨다.
용어설명/‘인접국가 원자력 사고 대응 매뉴얼’
교육과학기술부가 지난 2009년 9월 만들어 놓은 ‘인접국가 원자력 사고 대응 매뉴얼’은 총 110쪽으로 인접국 원자력사고 등으로 인해 우리나라에 방사능 피해를 미칠 경우에 대비해 제작됐다.
적용 범위는 정부부처, 기관의 대응활동 전반이 포함돼 있다. 또 위기형태로 인접국 원자력발전소 등 원자력 관련시설에서 사고 등이 발생해 다량의 방사성 물질 누출로 우리나라에 방사선 피해를 초래하는 것을 규정해 놨다. 사전조치와 사후조치로 나눠 규정했다.
매뉴얼에는 기관별 책임과 역할, 또 이들의 세부활동 내역이 상세히 담겨 있다. 특히 핵심 관계자를 위한 케어(CARE)시스템(원전운전정보 및 시설물 등의 정보을 담아놓은 곳)과 관련한 등록 및 활용법, 영상회의 시스템 등의 활용법, 환경방사능감시 및 평가, 주민 보호 및 구호조치, 갑상선 방호약품 복용량 및 주의사항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또 이 매뉴얼의 보도자료 샘플을 보면, 국내 피해는 없을 것으로 예측되지만 심각단계의 국가위기경보를 발령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는 등 현재와 유사한 상황에 대한 대처법이 나타나 있다.
대전=박희범기자 hbpark@etnews.co.kr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 인접국가 원자력사고 대응 매뉴얼상의 위기경보 수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