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덕의 정보통신부 그 시작과 끝]<38>사업자 1차 자격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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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4월 15일, 정보통신부에서 PCS와 국제전화 등 7개 분야 신규통신사업자 선정을 위한 허가신청서를 접수 받고 있다.

 ‘1차 탈락이냐. 통과냐’

 중간지대는 없었다. 화살은 이미 당락(當落)이라는 과녁을 향해 활시위를 떠난 뒤였다. 이번 신규통신사업자 당락의 열쇠를 쥔 주심은 정보통신부였다.

 정통부는 신규통신사업자 신청서류 접수가 끝나자 극도의 긴장감에 휩싸였다. 서류를 제출한 사업자를 대상으로 한 점 의혹 없이 가장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심사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만의 하나 사업자 선정과정에서 물의가 생기면 정통부는 여론의 도마에 올라 집중포화를 맞을 게 불을 보듯 환했다. 자칫 미래부서로 힘차게 출범한 정통부가 오명을 뒤집어 쓸 수 있었다. 그것은 최악의 상황이었다.

 무결점 심사를 하는 것이 기본 책무지만 바늘귀만큼이라도 오류가 발생하면 그것은 곧 재앙이나 다를 바 없었다.

 1992년의 제2 이동통신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정통부는 공정성에 역점을 두었다.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이 없는 심사, 의혹의 앙금이 남지 않도록 하는 게 상지상책(上之上策)이었다.

 정통부는 극도로 몸을 사렸다. 통신사업자 선정의 실무를 담당한 정통부 통신기획과의 당시 일상(日常)을 살펴보자. 기획과 직원은 15명이었다.

 이규태 과장(정통부 감사관, 서울체신청장 역임, 현 한국IT비즈니스진흥협회 부회장)은 혹시 직원들이 비리나 구설에 연루될까봐 각별히 조심했다. 그는 아예 단체로 퇴근을 했다. 직원 중 일이 늦는 사람이 있으면 그 일이 끝날 때까지 전 직원이 새벽 1시건 2시건 기다렸다가 같이 퇴근했다.

 이 과장의 말.

 “여직원까지 같이 행동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직원들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습니다. 사업자 선정작업이 끝날 때까지 그렇게 단체 생활을 했습니다. 잡음의 소지를 처음부터 없앴습니다. 덕분에 뒤탈이 없었어요.”

 정통부는 PCS와 TRS 등 7개 분야 신규통신사업 허가 신청법인에 대해 3단계로 나눠 심사를 진행했다.

 1단계는 4월 26일부터 5월 21일까지 허가신청서류 자격심사를 했다. 2단계는 5월 23일부터 6월 1일까지 10일간 사업계획서 계량·비계량평가를 했다. 이때는 심사위원들을 외부와 격리해 합숙을 하며 심사를 진행했다. 철저한 보안을 유지했다. 3단계는 6월 3일부터 2일간 청문평가를 실시했다.

 심사기준이라는 저울대 위에 올라선 신규통신사업자들도 애간장이 타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정통부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사태 흐름을 예의주시했다.

 1996년 4월 19일.

 이날 오후 정통부 청사 22층 중회의실에서 19차 통신위원회가 열렸다. 윤승영 위원장(현 변호사)은 지난 3월 6일 발표한 신규통신사업자 허가신청 수정 공고안의 일부 내용을 수정한 세부심사기준을 심의, 확정했다.

 이날 확정한 세부 심사기준에 따르면 허가신청법인에 대한 평가는 △자격심사 △사업계획서 평가 △청문 등의 절차를 밟기로 했다.

 사업계획서평가는 7개 서비스 분야별로 마련된 세부 심사항목에 따라 단순히 수치로 평가할 수 있는 부채비율 등 재무구조 분야에 대한 계량평가와 주관적인 판단이 요구되는 부문에 대한 비계량 평가로 나누기로 했다.

 또 중소기업 육성·지원계획의 실천방안 등 비계량 평가방식을 보완하고 관련 심사항목 간의 일관성을 확인하기 위해 청문이 필요한 항목에 대해 허가신청법인의 임원을 대상으로 청문회를 실시키로 했다.

 아울러 6개 심사사항별 관련 심사항목 간 모순점이나 미비점이 발견될 경우, 심사사항별로 정해진 배점의 10% 범위에서 감점할 수 있게 했다. 사업계획서상의 비계량 평가와 청문의 경우, 최고점과 최저점을 제외한 심사위원들 간의 평균 점수를 산출, 평가하기로 했다.

 청문회에는 허가신청법인의 대표와 보조자 1명이 참석하도록 했다. 이와 관련해 일부에서 회의록 조작설이 나돌았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이 과장의 설명.

 “그건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일에 조작이란 것이 가능하겠습니까. 어림도 없어요. 회의록에 관인을 찍는데 하나가 누락돼 그것을 가서 찍어 온 것입니다.”

 이성해 정통부 정보통신지원국장(정통부 기획관리실장, KT인포텍 사장 역임, 현 큐앤에드 회장)은 17일 언론을 통해 이런 내용을 밝혔다.

 이 국장은 “청문회는 심사위원들이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같은 조건에서 각 업체에 대해 사전에 청문사항을 만들어 청문회를 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청문회는 심사위원장이 발의하며 잘못 작성한 사업계획서에 대해 감점할 수 있고 추가자료를 요청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통부는 이 같은 심사기준에 따라 4월 26일부터 ‘허가신청법인의 지분제한 위반 등 현행 전기통신사업법상의 결격사항’ ‘중복신청 여부’ 등 허가신청 제한사항 등을 조사하기 위한 자격심사에 착수했다.

 정통부는 자격심사에 들어가기 전 광화문 청사 21층 대회의실에 보관 중이던 허가신청 서류를 원본과 사본으로 분류해 25일 오후 7시께 심사장소인 서울 성동구 자양동 정보통신부 전산관리소로 옮겼다.

 이 과장의 기억.

 “서류가 너무 많아 분량이 대형 트럭으로 몇 대분이었습니다. 접수한 서류를 잘못 다뤄 심사에 차질이 있을까봐 극도로 조심하면서 신청서류를 옮겼습니다.”

 정통부는 24명으로 8개 자격심사반을 구성했다. 반장은 석호익 부이사관(정통부 정책홍보관리실장, 정보통신정책연구원장 역임, 현 KT 부회장, 한국지능통신기업협회장)이 맡았다. 석 반장은 1992년 제2 이동통신사업추진전담반장으로 사업자 선정 작업을 담당한 경험이 있었다. 그는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실 행정관을 거쳐 승진해 정통부로 복귀했으나 인사 동결로 정보통신연구관리단에 파견 중이었다.

 석 반장의 기억.

 “당시 파견 중이었으나 정통부에서 각종 현안업무를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자격심사반장을 맡아 부적격 업체를 가려내기 위한 심사작업을 했습니다. 불필요한 잡음이 나오지 않도록 업무처리에 만전을 기했어요. 보안을 유지하면서 관련 자료를 세심하게 검토했습니다.”

 심사반 24명은 사무관 등 정통부 공무원들로 자격심사반과 계량평가반. 비계량평가반 등 8개반으로 구성했다.

 이들은 52개 법인들이 제출한 서류에 대해 허가신청법인의 지분제한 위반 등 현행 전기통신사업법상의 결격사항과 중복신청 여부 등의 자격심사를 했다.

 심사반의 업무를 돕기 위해 변호사, 공인회계사 등 외부 전문가들로 지원조를 구성했다. 회계사는 5~6명이 참여했다. 변호사는 2명이 전기통신사업법과 관련해 자문을 했다.

 심사반은 합숙을 하지 않고 출퇴근을 했다.

 석 반장의 회고.

 “심사반은 서류심사를 통해 부적격 사업계획서를 가려냈지만 특별히 문제있는 컨소시엄은 나오지 않은 것으로 기억합니다. 신규통신사업자들이 제안서 작성에 만전을 기한 결과였다고 생각합니다.”

 심사반은 6개 사항 21개 항목을 심사했다. 이 중 가장 배점이 높은 것은 기술개발실적 및 기술개발계획의 우수성으로 30점이었다. 다음은 각각 20점인 허가신청법인의 적정성, 기술계획 및 기술능력의 우수성이었다.

 석 반장은 단 하나의 오류라도 발생하지 않도록 심사결과를 서로 바꿔가며 3번씩 점검했다고 말했다.

 “교차점검을 해야 미처 잡지 못한 잘못을 찾아낼 수 있잖아요. 점수합계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혹시 합계를 한 점수가 외부로 새 나갈 수 있을까 염려해서였습니다. 아무도 항목별 전체 점수를 알지 못했습니다.”

 장내(場內)에서 심사가 진행되는 가운데 장외(場外)에서는 신규통신사업과 관련해 컨소시엄 간에 상대적 우위를 놓고 공방이 격화됐다.

 정통부 심사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한 언론홍보전과 상대방에 대한 비방전이 격렬하게 전개됐던 것이다.

 정통부는 이를 그대로 두고 볼 수가 없었다. 특히 PCS분야에서 대기업 간 상호 비방전이 위험수위를 넘고 있었다. 대기업들은 기술과 도덕성 등에서 자신이 우위에 있다고 언론을 통해 홍보했다. 그것은 불필요한 소모전이었다.

 정통부는 5월 6일 삼성-현대컨소시엄과 LG컨소시엄 등 대그룹이 참여하는 업체 대표들을 불러 최근의 과열경쟁을 자제해 달라고 당부했다.

 정통부 관계자 A씨의 기억.

 “정통부에서 대기업 참여 업체 관계자들을 불러 그런 의사를 전했습니다. 당시 언론을 통해 대기업 간 장외 공방이 치열했습니다. 그대로 놔둘 수가 없었어요. 심사기준이 있는데 그런 장외 공방전이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다분히 심사에 영향을 끼치려는 의도가 있다고 본 것입니다.”

 이 같은 대기업 간 장외 공방은 정통부가 추가한 심사 기준이 발단이었다. 이석채 장관(현 K 회장)은 3월 6일 기존 공고안을 수정하면서 “경제력 집중과 도덕성 등을 심사항목에 추가 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발표 이후 공교롭게도 3월 13일 한솔제지 K대표가 공정거래위원회 독점국장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구속됐다. LG그룹 계열사가 몰려 있는 여천공단의 환경오염 문제가 언론에 크게 보도됐다.

 가뜩이나 팽팽한 경쟁구도에서 상대 기업의 악재(惡材)는 더 없는 공격의 호재(好材)였다. 상대 약점은 반대로 자신의 강점이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원하는 이권을 쟁취하려는 기업들의 다툼은 멈추지 않았다.

 이현덕기자 hd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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