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 국제유가 `2008년 악몽` 재현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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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바이유 국제 현물가격이 지난 21일 30개월 만에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선 이후 상승세가 이어졌다.

 23일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22일(현지시각) 뉴욕상품거래소(NYMEX)의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선물유가는 전일대비 배럴당 7.37달러 상승한 93.57달러를 기록, 2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런던석유거래소(ICE)의 북해산브렌트 선물유가도 전일대비 배럴당 0.04달러 오른 105.78달러에 거래가 마감됐다.

 이집트 사태로 촉발된 국제유가 상승세는 리비아의 민주화 시위사태로 석유업체들이 현지에서 철수하는 등 수급불안에 대한 우려가 현실화되면서 꺾일 줄 모르고 탄력을 받고 있다.

 민간 부문에서는 2008년 초고유가 시대가 재현되는 것 아니나며 불안해하고 있으며, 정부도 유가 상승에 따른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고유가로 경제성장 둔화 우려=고유가로 인해 당장 정부의 물가 안정 대책에 비상이 걸렸다. 정부는 올해 물가를 3% 이내로 묶겠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쉽지 않을 전망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유가가 10% 오르면 물가상승률은 0.12%P 올라가고 국내총생산(GDP)은 0.21%P 내려간다고 한다. 이달석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고유가는 물가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며 “물가가 오르면 소비가 위축되고 기업의 투자가 줄어드는 등 경제성장이 둔화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속으로 웃는 정유업계=통상 국제유가가 지속적으로 오르면 원재료 비중이 커서 가격 전가력이 높은 석유화학·정유업종에 긍정적 모멘텀으로 작용한다.

 정유업계 입장에서 고유가는 표정관리가 필요한 상황이다. 원유 값이 오르면 석유제품 수요의 심리적인 불안감이 고조돼 국제 현물시장 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한다. 정유업계는 정제한 물량의 절반가량을 해외에 수출한다. 수출 채산성이 좋아진다. 국제 유가가 높았던 2008년 상반기와 지난해 4분기 실적이 좋았던 이유다. 실제로 SK에너지는 지난해 사상 최대의 수출 실적을 올렸다.

 이에 따라 정유업계 CEO들의 움직임도 바쁘다. 국제유가 급등에 따라 대응 전략 마련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석유협회 관계자는 “두바이유가 100달러를 넘어서자, CEO들이 지난 22일로 예정돼 있던 정기총회 일정을 취소했다”고 설명했다.

 ◇정부, 국제유가 예의주시=정부에서도 최근 리비아 사태 등 중동 정세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식경제부는 유가 위기 대응 매뉴얼에 따라 지난해 12월 30일 관심 경보를 발령하고 김정관 지경부 에너지자원실장을 반장으로 하는 ‘에너지 비상대책반’을 구성, 운영해오고 있다.

 매뉴얼을 보면 정부의 대응 수준은 관심-주의-경계-심각 순이다. 유가 수준이 단계별로 5일 이상 지속돼야 한다.

 우선 유가가 두바이유 기준으로 90∼100달러면 수급불안을 이유로 파란색 ‘관심’ 경보를 낸다. 100∼130달러대로 오르면 고유가로 인한 무역수지 적자를 우려해 ‘주의’로 격상한다. 지난 2008년처럼 130∼150달러대까지 가격이 상승할 경우 ‘경계’ 수준이며, 150달러를 넘어서면 오일쇼크를 우려, ‘심각’ 경보를 발령한다.

 정부는 26일까지 국제유가가 100달러를 넘을 경우 자체 위기평가회의를 거쳐 위기 대응 수준을 현재 관심 단계에서 주의 단계로 격상하고 관련 대책을 공개할 방침이다.

 ◇국제유가, 당분간 지속 전망=리비아를 비롯한 중동 및 아프리카의 불안 요소가 제거될 때까지는 국제 유가 상승세가 지속될 전망이다.

 최근 국제유가 상승은 지정학적 요인에 의한 공급 불안이 주요 원인이다. 경기활황에 따른 수요 급증이 원인이었던 2008년과는 상황이 다르다. 2008년이 수요 측 문제라면 이번은 공급 불안에 따른 심리적 영향이 크다.

 물론 리비아의 원유 수급 불안이 국내에 미치는 단기적 영향은 작은 편이다. 지난해 리비아에서 들여온 원유 수입액은 3728만달러로 전체 원유 수입액의 0.05%에 불과하며 국내 4대 정유사업체들은 수입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리비아 사태가 25일 대규모 시위가 예정된 이라크나 이란으로 확산되면 당장 원유 공급에 차질을 빚게 된다. 이란과 이라크에서 수입하는 원유량은 각각 연간 7300만 배럴(8.3%)과 6000만 배럴(6.8%)에 달한다. 특히 이란산 원유는 국내 정유 업체들이 쓰는 두바이유 가격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이달석 에경연 선임연구위원은 “국제유가는 당분간 리비아 및 중동 지역 정세에 영향을 받아 상승할 것”이라며 “실제로 공급 차질이 빚어지면 추가 상승 여력도 있다”고 내다봤다.

  유창선기자 yuda@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