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덕의 정보통신부 그시작과 끝]<33>신규사업자 수정공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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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부처건 장관이 바뀌면 정책변화가 있게 마련이다.

 장관마다 정책을 보는 시각과 판단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정책은 항상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 숙명을 타고났다. 따라서 새 장관이 기존정책을 변경한다고 그 자체를 뭐라고 탓할 일은 아니다.

 1996년 새해를 맞은 정보통신부도 정책변경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황금알을 낳은 거위로 표현하는 신규통신사업권 획득에 뛰어든 사업자들은 연초부터 이석채 장관(현 KT회장)의 말 한마디와 표정 하나에 주목했다. 사업자 선정기준 변경에 정보안테나를 총동원했다.

 

 잠시 보름 전으로 되돌아가보자.

 1995년 12월 14일.

 정통부는 신규통신사업자 허가신청요령을 발표했다. 사실상 최종안이었다. 그로부터 며칠 후 경상현 장관(현 KAIST 겸직교수)이 경질됐다. 정통부가 공개리에 각계 전문가 의견을 수렴하고 내부 의견을 종합해 결정한 최종 허가신청요령이 사달이 났고 장관이 바뀐 것이다.

 경질 이유는 출연금이 같으면 추첨한다는 선정기준에 대해 김영삼 대통령이 격노했기 때문이다.

 정통부는 내심 할 말이 적지 않았다.

 정통부는 발표 전 청와대와 사전에 충분히 협의해 선정기준을 확정했다. 한이헌 청와대 경제수석(15대 국회의원, 기술신용보증기금 이사장 역임, 현 한국디지털미디어고 교장)도 정통부 안을 지지했다. 그 기준이 적절하지 않았다면 청와대는 사전에 ‘그것은 안 된다’고 브레이크를 걸어야 했다.

 김 대통령이 크게 노한 시점도 시차가 있다.

 김 대통령은 정통부가 허가신청 요령을 발표한 지 4일이 지난 12월 18일 월요일 아침 한 조간신문의 사설을 거론하며 “통신사업자를 또뽑기로 결정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한 경제수석을 불러 호통을 쳤다.

 한 수석은 사전에 선정기준을 대통령실에 서류로 보고했고 김 대통령은 그 서류에 서명까지 해서 내려 보냈다고 한다. 그래놓고 김 대통령은 12월 20일 개각에서 경 장관을 교체했다.

 이 과정에 김 대통령의 아들 현철(현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씨가 개입했다는 것이 주변의 설명이다. 현철씨는 매주 일요일 가족예배를 위해 청와대에 들어가 김 대통령과 만났다고 한다. 경제 정책과 관련해 청와대 경제수석을 건너뛰어 대통령에게 직보(直報)할만한 인물이 당시에 현철씨를 제외하고는 없었다. 한 경제수석은 그 무렵 청와대에서 자타가 인정하는 실세로 통했다.

 청와대 비서관출신 A씨의 말.

 “청와대 내 조직이나 보고체계를 볼 때 경제문제에 관해 수석을 제치고 대통령에게 몰래 직보하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가족모임에서 나온 이야기는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현철씨가 ‘사업자를 추첨제로 선정하면 나중에 큰일난다’고 말했을 것입니다. 당시 현철씨의 영향력은 대단했어요. 오죽하면 소통령이란 소리를 들었겠습니까?”

 정통부는 기술력 평가의 1차 심사와 2차 출연금 심사를 통해 신규사업자를 결정키로 방침을 정했다. 그리고 1차 심사에서 적격 판정을 받은 2개 이상의 업체가 같은 출연금을 제시했을 경우 추첨방식으로 사업자를 선정하는 3단계 방식을 확정했다.

 이런 방침은 청와대가 이석채 장관에게 절대 추첨방식을 안 된다는 지시를 내리면서 기준 변경은 예고된 사안이었다. 통신사업자들이 새해 들어 이 장관의 동선(動線)에 촉각을 곤두세운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다.

 이 장관은 1996년 1월 5일 김 대통령이 주재한 확대경제장관회의에서 “출연금이 같을 경우 추첨하기로 한 당초 신규사업자선정방식을 철회하겠다”고 보고했다. 이 장관은 “공정한 심사기준을 마련해 최대한 엄격하게 심사해 추첨에 의해 사업자가 선정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정통부는 1월 8일 새해업무계획에서 1996년 상반기 내 국제전화 등 7개 분야 사업자를 신규허가한다고 밝혔다. 선정은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로 능력 있는 사업자를 선정하며 대기업 중복신청제한으로 다수 기업의 참여를 유도하고 지역사업에는 중소기업 및 중견기업만 참여토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정통부의 사업자 선정기준 변경에 대해 업계 입장은 두 갈래로 갈렸다.

 먼저 긍정론이다. 정책부서로서 정통부가 제 역할을 한 것이라는 평가였다. 정부가 통신사업자를 ‘또뽑기’로 선정하려는 것은 뒷일이 무서워 ‘면피행정’을 한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이는 곧 정부이기를 포기한 것이라는 청와대 시각과 같았다.

 이 장관의 증언.

 “청와대의 지시에 의해서가 아니라 저도 추점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점수제로 바꾼 것입니다. 추점제를 할 경우 동점이 나올 확률이 높았어요. 재벌들이 독식할 가능성이 아주 높았습니다. 더욱이 사업자를 요행으로 선정한다면 무능력업체가 뽑힐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런 식이라면 정부가 왜 필요합니까?”

 반론도 없지 않았다.

 정부가 수차례의 공청회와 외국의 사례, 각계 전문가, 그리고 통신사업자 등의 의견을 수렴해 최종 결정한 것을 마치 손바닥 뒤집듯이 변경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사전에 청와대와 협의해 발표까지 한 정책을 대통령 말 한마디로 뒤집는 것은 정부의 신뢰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이었다.

 역사의 도도한 물결은 언제나 의외의 결과를 낳았다. 신규사업자 선정기준 변경은 훗날 이 장관이나 정통부에 부메랑으로 작용해 결국은 피딱지로 남았다.

 1996년 3월 6일, 정통부 기자실.

 정통부는 지난해 12월 15일 공고한 ‘기간통신사업자 허가신청요령’ 수정안을 확정해 3월 8일 공고한다고 이날 밝혔다.

 이석채 장관은 “PCS사업권을 장비 제조업체와 비제조업체로 분리 허가한다”며 신규통신사업자 허가신청요령을 일부 수정 발표했다. 하지만 일부수정이란 정통부 발표와는 달리 내용상으로는 대폭 수정이었다.

 이 발표는 삼성과 현대, LG, 대우 등 이른바 ‘빅4’ 주도로 흘러가던 당시 사업권경쟁구도에 지형변화를 불러왔다.

 이 장관은 “지난해 공고한 허가신청요령으로 사업자를 선정하면 추첨이라는 요행으로 사업자가 결정되고 PCS사업의 경우 삼성, LG등 4대 통신장비제조업체 가운데 선정될 가능성이 높다는 등의 문제점이 제기돼 일부 공고 내용을 수정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 장관은 PCS사업의 경우 선정사업자를 4대 통신장비 제조업체에 대한 경제력 집중을 막기 위해 4대 장비제조업체 및 이들 4대 장비제조업체가 아닌 기업이 각각 주도하는 유형으로 구분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 장관은 민간의 참여폭을 넓히기 위해 한국통신이 자회사를 설립, 경영을 주도하는 유형 등 모두 3개로 나눠 1개씩 사업자를 선정키로 했다고 밝혔다.

 이 장관의 회고.

 “사업자를 유형별로 구분한 것은 국가경제 전체를 보고 판단한 것입니다. 미래는 ICT시대입니다. 그렇다면 국내 제조업과 관련기기산업을 육성해 구매력을 키우고 서비스를 향상시켜야 합니다. 당연히 제조업 육성이 관건이었습니다. 여기에 많은 기업들을 참여시켜 제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판단에서 유형별로 구분키로 한 것입니다. 대기업의 경제적 집중완화도 고려 사항이었습니다.”

 정통부는 이에 따라 6월 선정할 신규통신사업자 가운데 PCS의 경우 한국통신, 통신장비제조업체, 비(非)장비제조업체가 주도하는 3개로 사업자 유형을 구분, 각각 1개씩 선정키로 했다. 사업자 수는 3개로 변함이 없었으나 한국통신을 제외한 나머지 대기업들로서는 의외의 복병을 만난 셈이었다.

 정통부 고위관계자 B씨의 증언.

 “이 장관은 공정하게 능력위주로 사업자를 선정하되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을 막으려고 했습니다. 당시 재벌기업들은 ‘설마 2등은 못하랴’라며 다소 느긋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사업자를 유형별로 나눈다며 기준을 변경했으니 비상이 걸렸지요.”

 실무를 담당했던 이규태 통신기획과장(서울체신청장 역임, 현 한국IT비즈니스진흥협회 부회장)의 말.

 “당시 이 장관의 주장에 공감했습니다. 이 장관은 국가경제 전체를 보면서 통신정책을 결정했습니다. 실무진과는 접근방식이 달랐습니다. 이 장관이 우리에게 ‘당신들이 통신정책은 잘할지 몰라도 경제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어요. 앞만 보지 말고 멀리 크게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정통부는 심사과정에서 정보통신 관련 중소부품업체등 중소기기제조업 육성계획과 기업의 자금조달방식 및 사회적 책임 등도 함께 평가하겠다고 말했다.

 수정공고안에 따르면 2차 출연금 심사 시 같은 액수의 출연금을 적어냈을 경우 1차 심사 점수순으로 선정키로 했다. 또 PCS사업의 경우 지배주주가 아닌 참여기업도 사업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단일회사, 단일기술, 단일표준하에 지역(권역)별로 영업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기로 했다.

 1차심사 강화를 위해 컨소시엄 주주 구성 내용, 정보통신 관련 중소기기제조업 및 소프트웨어 산업 육성지원계획, 참여 업종 수 및 최근 5년간 기존 기업인수와 신규업종진출 유무, 자금조달방식에 관련된 자료를 별도로 제출토록 하고 기업 경영의 도덕성도 함께 평가하기로 했다.

 정부의 사업자 선정 수정공고에 따라 재계의 사업권 확보를 위한 샅바싸움은 더욱 치열해졌고 전략적 제휴도 뒤를 이었다.

이현덕기자 hd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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