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사동 스캔들’에선 일반인들이 쉽게 구분하지 못하는 치밀한 미술품 복원과 복제의 과정이 소개된다. ‘신의 손’을 가진 복원 전문가로 등장하는 이강준(김래원)은 400년전 사라졌던 400억원 가치의 명화 ‘벽안도’의 복원을 맡는다. 복원 과정에서는 미술품의 미적 요소와는 상관없는 과학적 기법이 숨어 있다. 영화는 돈을 노린 등장인물들의 치열한 갈등과 음모로 이어진다.
미술품 보존 복원 연구소 아트C&R의 김주삼 소장(전 삼성미술관 보존연구실장)은 “일반인들이 하는 미적 관점이 아닌 물질에 대한 관찰로 미술품을 대면하기 시작한다”고 말했다. “의사들이 아무리 외모가 뛰어난 환자가 들어와도 그보다 환자의 몸 상태를 먼저 살피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가장 먼저 분석하는 대상은 물감이다. 복원전문가들에게 물감은 ‘화학 물질의 조합’이다. 공장에서 대량으로 물감을 찍어내는 요즘과는 달리, 근대 이전에는 천연 안료에 기름을 섞어 유화를 그릴 때 사용했다. 사람의 피부색을 그릴 때 주로 쓰는 안료는 산화납이다. 또 나무 등에 쓰인 녹색 안료는 구리화합물, 붉은 색을 낼 때는 산화철 등이 쓰였다.
물감 성분의 분석은 비파괴 성분 분석기인 XRF 분석을 통해 알아낸다. 강한 X선을 이용한 충격을 줘, 원소에서 최외곽전자가 돌출되는 형태에 따라 수백년 전에 그려진 그림의 물감 원료도 알아낼 수 있다.
이러한 성분 검증은 미술사(史) 적으로 중요한 자료가 될 뿐 아니라 탄소연대측정 기법과 함께 위작 여부를 가려내는 데 결정적 증거로 작용할 수도 있다. 해당 시기에 쓰이지 않던 성분이 물감에서 나오면 진품이 아니라고 의심할 만한 증거가 되는 것이다.
작품 손상 정도를 확인할 때는 각종 광선을 이용한 과학적 분석이 사용된다. 그림이 그려져 있는 나무의 결의 상태나 벌레 먹은 구멍 등을 확인할 수 있다. 물감의 성분마다 광선의 투과율이나 흡수율이 현저히 차이나기 때문이다. 또 자외선을 이용하면 작품의 복원 여부를 분석할 수 있다. 새로 덧칠한 부분이 강력한 자외선에 의해 기존 부분과 다른 반응을 나타낸다.
이와 함께 각종 광선을 이용한 과학적 분석을 통해 미술품에 숨어있는 재미있는 현상들도 발견이 가능하다. 적외선이 검정색에 잘 흡수된다는 점과 성분에 따라 투과율이 다른 X선을 이용하면 유화 물감 뒤에 숨어 있는 초기 데생이나 지워진 흔적을 살펴볼 수 있다. 램브란트의 걸작 ‘젊은이의 초상’을 X선 장비로 비춰보면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면사포를 쓴 해골 형상을 한 인물이 나타난다.
또 르 쉬르의 작품인 ‘요정 우라니아’를 X선으로 비추면 측면의 또 다른 얼굴이 보인다. 너무나 유명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걸작 모나리자도 X선으로 비추면 전혀 아름답지 않은 형상이 나타난다. 얀 반 에이크의 ‘아르놀피니의 결혼식’을 적외선으로 비추면 실제 그림보다 훨씬 ‘못난’ 사람 얼굴을 볼 수 있다.
김 소장은 “작가가 지우고 다시 그린 단순한 덮어 쓰기 흔적일 수도 있고, 작가의 심리 상태를 보여주는 자료가 될 수도 있다”며 “작품을 새롭게 이해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렇듯 미술품 복원 및 분석의 과학적 기법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미술 전문가가 아닌 화학이나 보존과학을 전공한 전문가의 손에 맡겨진다. 병원에서 각 진료 분야가 나눠지듯이 이들도 고미술품이라는 ‘환자’에 대해 금속, 지류, 석재 등 재질별이나 유화, 조각, 판화 등 장르별로 나눠 전문적인 치료를 한다.
단, 복원은 시각적으로는 완전하지만 원래 쓰인 물질과는 철저히 다르게, 또 언제든지 복원 부위가 제거 가능하도록 이뤄진다. 김 소장은 “고미술품 분석과 복원은 ‘원작에 대한 존중’에서 시작한다”고 강조했다.
황태호기자 thhw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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