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연기 국가정보화전략위원회 위원/ 한국정보통신윤리학회 회장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가다듬는 소회는 여러 모로 다음 해를 알차게 채워가기 위한 자산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지난 시간을 되짚어 꼽아보는 일은 또 다른 출발을 위한 ‘신발 끈 조이기’로, 가뿐한 이륙을 위한 ‘터럭 털어내기’로, 혹은 다가올 시간의 설계를 위한 ‘옥석구분’으로 귀중한 가치를 제공한다.
우리는 지난 한 해를 다양한 모양으로 채색했다. 명도 높은 색깔의 앞자리에는 스포츠가 이끌었다. 새해 첫머리 밴쿠버에서 열린 동계 올림픽에서는 역대 최고 성적을 일구며 온 국민이 환호했고, 세밑을 향하던 때 이웃 중국 광저우에서 열린 아시안게임에서는 연일 쏟아지는 금메달 소식에 행복했다. 폭염이 쏟아지던 때 남아공 월드컵에서 이룬 16강 진출은 다시 한번 ‘대한민국~’을 유인했고, 여자축구 대표의 이어지는 낭보는 청량의 웃음을 선사했다.
G20 서울 정상회의는 온 국민이 하나 되어 채색한 굵직한 그림이었다. 우리는 세계가 함께 고민해야 하는 숙제를 정리하고 해답을 모색하기 위한 자리의 주인이었다. 지구촌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국가로서의 위상을 세운 것은 물론이고, 글로벌 리딩국가로서의 이미지를 세계인들에게 각인시켰다. 대의를 위해 작은 불편을 감내하는 가운데 응원하고 격려한 국민적 성원이 있어 가능했다.
잿빛 어두운 색깔도 있었다. 천안함과 연평도 피폭은 우리의 근현대사 속에 새겨진 분단의 고통이 지난 역사가 아닌 당면한 현재라는 사실을 깊이 각인시켰다.
한 해를 채색한 색깔이 무엇이든, 우리에게는 기회였다. 환호와 기쁨 속에서 국민은 하나였고, 슬픔과 고통 속에서 국민은 의지를 모았다. 하나된 국민과 모인 의지는 ‘공감’이라는 자산으로 우리를 북돋웠다.
문제는 ‘공감’ 이후였다. 목표에 동의하고 목적에 수긍하면서 출발선에 함께 설 수는 있지만, 먼저 내디딜 발과 신발의 종류 등을 놓고 갈등하고 고민하다 제자리로 돌아간다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지난 한 해 공감에 기반을 둔 대한민국의 화두는 ‘공정(公正)’이었다. 반칙이 없는, 노력한 대가가 결과로 다가오는, 투명한 언행의 가치가 인정받는, 그래서 위선과 거짓이 배격되고 진정과 진실이 존중받는 사회를 향한 화두였다. 대통령이 주창했고, 기업의 CEO를 비롯한 무게 있는 국가 구성원들을 독려해 사회 제반 곳곳에 공정 환경을 구현하기 위해 힘썼다.
아쉽게도 그 다음이 뿌옇다. 대기업과 하청업체 간 공정거래 관행을 정착시킨다는 내용의 선포와 선언을 중심으로 잠시 공정을 향한 공감확산 분위기가 있는가 싶더니 이내 주춤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국민적 공감대는 IT를 통해 배가됐다. 유무선 네트워크·서비스의 통합을 기반으로 창출한 스마트IT 시대는 무한통신의 가능성을 제시하면서 공감의 속도와 질을 높였다. 진정과 진실이 담긴 콘텐츠는 국가 역량으로 진화한다는 것도 확인했다.
우리는 지난해 대한민국 안에 충분한 ‘공감역량’이 갖췄다는 점을 배웠다. IT의 힘과 역할도 확인했다. 이제 막 문을 열 2011년, 이를 토대로 의미 있는 ‘공감 성과’를 거두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