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상속 뒤엔 SI 업체가…왜?

검찰이 태광그룹 비자금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가운데 태광그룹 이호진 회장(48)이 조카 원준 씨(32)가 아닌 아들 현준 군(16)에게 후계 구도를 만들려는 과정에서 IT서비스 자회사가 동원된 것으로 확인돼 IT서비스 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현재 국내 IT서비스(SI) 산업이 그룹 내 IT 물량(수요) 몰아주기식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종합 소프트웨어(SW) 산업으로 변신을 시도하려는 과정에서 `악습`이 재연됐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IT서비스 산업이 대기업의 경영권 상속 수단으로 활용된다면 전체 SW산업 발전에도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서울 서부지검의 수사는 이호진 회장의 IT계열사 동원을 통한 `편법상속`에 맞춰져 있다. 이 과정에서 비자금을 만들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호진 회장은 2006년 그룹 IT서비스 전문업체 티시스(당시 태광시스템즈)에 대규모 유상증자를 단행했다. 이 회사 주식 수를 두 배 가까이 늘리며 발행 주식 전량을 이 회장 아들 현준 군에게 배정했다. 현준 군은 이 회사 지분 48.98%를 보유해 이 회장(51.02%)에 이어 단숨에 2대 주주가 됐다.

하지만 당시 신주 발행가격(1만8955원)이 적정 기업가치에 비해 턱없이 낮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 회사 자산규모와 당기순익을 고려하면 주당 20만원의 가치가 있지만 10분의 1 가격으로 주식을 싸게 발행해 넘겼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그룹사 소속 IT서비스 업체를 이용해 부(富)를 편법 상속하는 전형적인 수법에 해당한다고 분석했다. 설립과 운영이 쉬운 IT서비스의 특성을 활용해 상속세 등을 피해 지분과 재산을 후계자에게 넘겨주고 있다는 지적이다.

IT서비스 전문업체의 한 사장은 "국내 대다수 대기업 계열 IT서비스 업체들은 이번 태광 사태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며 "일부 대기업 그룹은 SI업체 자체 역량을 끌어올리기보다는 총수 비자금을 조성하고 재산을 편법 상속하는 수단으로 기업을 활용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이같이 대기업이 경영권 상속과 비자금 확보에 IT서비스 기업이 동원되는 이유는 계열사 전산 업무와 시스템 관리를 총괄하는 것을 주 업무로 삼기 때문에 업무 특성상 매출 중 절대 규모가 계열사와의 거래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매출과 수익을 그룹 내부에서 조정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계열사 용역 서비스 단가를 올리고 서비스 범위를 넓히는 것으로도 매출이 급격히 늘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룹이 성장하고 계열사가 늘어날수록 IT서비스 사업 매출도 늘어나게 된다.

실제로 태광그룹의 티시스는 설립 첫해 32억원에 불과했던 매출이 2005년 289억원, 2006년 325억원, 2007년 528억원, 2008년 907억원으로 수직상승했다. 급기야 작년에는 매출 1052억원을 기록하며 매출 1000억원대 벽을 넘었다.

검찰은 태광그룹이 싼 가격에 지분을 넘긴 이후 매출과 수익성을 높여 보유 지분 가치를 극대화했다고 보고 있다.

이렇게 되면 세금 부담을 최대한 줄이며 재산을 상속할 수 있게 된다. 또 그룹 내부 간 자금 거래가 빈번해 비자금 조성이 쉽고 적은 자본금으로도 설립할 수 있다. 기업 가치 극대화 이후 상장 작업을 거쳐 후계자가 그룹을 승계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도록 측면 지원할 수도 있다.

지주회사 전문 증권사 한 애널리스트는 "국내 대기업 SI업체 상당수에서 총수 일가가 대량으로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말했다.

국내 대기업 후계자들이 IT서비스 업체 지분을 보유한 사례는 적지 않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이 삼성SDS 지분 8.81%를 보유하고 있으며 현대차그룹 SI업체인 오토에버시스템즈의 경우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 지분 20.1%를 소유하고 있다.

한화그룹의 경우 한화S&C 지분 전부를 김승연 회장의 3명 아들이 나눠서 보유하고 있다. 최근 상장한 SK C&C는 SK그룹 지배구조 최정점에 위치하며 최태원 회장이 1대 주주(44.5%)에 올라 있다.

이 밖에도 신동빈 롯데그룹 부회장은 롯데정보통신 지분 7.5%를 보유하고 있으며 현대그룹 정지이 현대U&I 전무도 이 회사 지분 9.1%를 가지고 있다.

업계 고위 관계자는 "일부 IT서비스 업체는 그룹 지원을 업고 저가에 대외 사업을 수주하며 그룹 내 서비스 단가를 조절해 전체 수익성을 맞추는 등 시장 질서를 무너뜨리고 있다"며 "이를 막기 위해 그룹 내 사업과 대외 사업을 회계적으로 분리하는 등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매일경제 손재권 기자/홍장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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