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공정, 정부와 기업 미온적 대처

스마트폰, 스마트패드(태블릿PC) 부문에 대한 이른바 중국 `한글공정` 발생원인은 우리 정부의 미온적 대처, 기업들의 자사 표준에 대한 고집 때문인 것으로 드러났다. 기업들은 정부의 표준화 작업이 시작된 이후 15년째 자사 입장만을 주장, 표준안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12일 정부와 학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1995년 정보통신부 주도로 휴대폰 자판 통일 등을 추진해왔으나 기업들의 이해관계 조정에 번번이 실패해 이 같은 `한글공정` 사태를 촉발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정부는 중국이 2000년대 초반 중국조선어정보학회를 통해 조선어 입력표준화를 추진한다는 사실을 안 뒤에도 적극 대응하지 않았다. 중국조선어정보학회는 중국 정부로부터 과제를 수주한 2000년대 초반 우리 정부에 조선어 입력 표준에 대한 협력 및 자료를 요구한 바 있다.

중국조선어정보학회 관계자는 “조선어를 가장 많이 쓰는 한국과 북한의 의견을 우선 반영하려 했지만 한국 측은 이렇다 할 대응 방안을 내놓지 않았다”며 “정보통신부에서 지식경제부, 문화부 등 한국 측 관계 부처가 자주 바뀌고, 담당자도 잇따라 변경돼 이를 제대로 조율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삼성전자, LG전자, 팬택 등 휴대폰 제조사는 문자 입력방식이 `제품 고유특성`이라는 논리에 끌려 다니며 15년간 표준화를 이루지 못했다. 삼성전자는 `천지인`, LG전자는 `나랏글`, 팬택은 `스카이`라는 각각 다른 문자입력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표준화가 이뤄지지 않자 새로운 입력 방식에 대한 특허출원도 늘어 이와 관련한 특허건수도 400여건에 달할 정도다.

지경부는 소비자 혼란과 불만이 가중되자 지난해 10월부터 휴대폰 한글입력 표준화를 다시 추진 중이나 제조사의 견해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지경부 기술표준원 송양회 과장은 “휴대폰 자판 표준화는 통신사나 휴대폰 제조사의 규제권을 가진 정보통신부 시절에도 결론을 내지 못할 만큼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문제”라며 “기술표준원이 지난해부터 추진 중인 표준화 작업도 난항을 겪고 있지만 향후 (표준화 작업에) 소비자단체 등의 참여를 확대해 이른 시일 내 대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한글 세계화 전략을 총체적으로 점검해야 한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정원수 충남대 교수는 “중국이 조선어 입력 표준화를 추진한다는 사실은 한글이 국내용이 아니라 해외에서 세계 문자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측면도 있다”며 “그동안 우리의 한글 정책은 우리말로서 한글, 즉 국어라는 개념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세계 문자로 육성하려는 방안은 제대로 연구되지 못했다. 한글로 알파벳 발음기호보다 훨씬 소리를 잘 표현할 수 있는 강점을 살리는 등 한글 세계화 전략을 총체적으로 점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인순기자 insoo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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