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가 금값이다. 1000~2000원이던 배추 한 포기 가격이 1만원을 훌쩍 넘었다. 김치도 `금치`가 됐다. 한동안 상추가 비싸 고깃집 사장님들이 울상이더니 이제 전 음식점에 비상이 걸렸다. 반찬 인정은 옛날이야기다. 김치를 더 달라고 하다가는 영락없이 종업원의 눈치를 봐야 한다. 어떤 음식점은 김치 추가에 2000원을 받는다. 아예 메뉴판에서 김치찌개를 지워버린 식당도 생겼다.
원인을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일부는 유난히 비가 많았던 날씨를 탓하고, 어떤 이는 유통체계의 문제점을 비판한다. 원인이 어떻든 올해와 같은 채소 품귀 사태가 이번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에는 모두가 동의한다. 지속되는 기상 이변과 농경지 축소는 언제든 농작물 부족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빌딩농장과 같은 시설이 주목받고 있다. 가장 기본적인 먹을거리를 안정적으로 수급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도심 속 먹을거리의 보고 `빌딩농장`=1999년 미국 컬럼비아대 환경학과 딕슨 데스포미어 교수는 빌딩농장이란 개념을 처음 고안했다. 그는 “30층 규모의 빌딩농장으로 5만명이 먹을 농작물을 생산할 수 있다”며 앞으로 닥칠 식량 부족 문제에 대비하려면 빌딩농장 건설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데스포미어 교수가 고안한 빌딩농장이란 도심에서 기후 변화에 영향을 받지 않고 일상적으로 다양한 작물을 재배할 수 있는 수십 층의 빌딩에 마련된 공간을 일컫는다. 식물공장, 수직농장(vertical farm) 등은 빌딩농장이 변형되거나 발전된 형태다.
몇몇 국가는 일찍이 도심에 텃밭을 일구는 도시 농장 조성에 몰두해왔다. 쿠바의 오르가노포니코, 독일의 클라인가르텐, 영국의 얼랏먼트 등이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특히 옛 소련의 지원이 끊긴 후 한동안 식량 부족에 허덕였던 쿠바는 도시 농장에서 유기농업을 시행하며 식량 자급률을 95%까지 끌어올렸다. 하지만 이들은 주로 도심에 버려진 공터를 텃밭으로 조성했다는 점에서 빌딩농장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게다가 빌딩농장은 단순히 농지를 늘리는 수준을 넘어선다. 각종 혁신적인 기술을 적용시켜 안정적인 농작물 재배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빌딩농장의 가장 큰 변별점이다.
농작물 재배에 필수 요소인 태양. 빌딩농장은 햇빛 대용으로 발광다이오드(LED)를 활용한다. LED는 식물이 광합성을 하는 데 필요한 빛을 공급하며 성장 속도를 촉진시키는 역할도 한다. 따라서 태양빛이 직접 미치지 않는 건물 내에서도 충분히 태양을 대체할 수 있다.
또 빌딩농장 내에서는 온도, 수분, 양분 등도 적절히 공급할 수 있다. 자동조절장치로 재배시기를 조절하는 일도 가능하다. 물론 조류, 어류도 사육할 수 있다.
빌딩농장이 제대로 관리되기 위해서는 각종 첨단 장비가 필요하므로 IT, BT 등 관련 산업과의 융합도 필수적이다. 효율이 높은 LED의 개발, 온도 · 습도 조절 등 원격 환경 제어를 위한 시스템 구축, 농작물에 피해를 주지 않는 구조물 건축 등이 그것이다.
◇한발 앞선 외국의 `빌딩농장` 반면에 우리는=빌딩농장 건설에 가장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는 국가는 일본이다. 빌딩농장의 또 다른 형태인 식물공장 구축에도 대기업과 자치 단체가 뛰어들었다. 그 결과 지난해까지 일본은 50여개의 식물공장을 구축했다. 3년 내에 150개로 늘릴 예정이다. 일부 기업은 중동에 관련 시설을 수출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2020년이 되면 식물공장 시장이 417억엔(약 5616억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의 경우 뉴욕 맨해튼에서 실용화에 나서고 있다. 뉴욕타임tm에 따르면 맨해튼구는 2008년 `버티컬 팜`에 대한 타당성 검토를 마치고 구체적인 건설 작업에 나서기로 했다. 뉴저지주 뉴악시도 뉴저지기술연구소, 럿커스대 등과 협의해 빌딩농장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그 밖에 프랑스, 덴마크, 캐나다 등도 빌딩농장 건설을 적극 검토 중이거나 건설에 착수한 상태다.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 상용화된 빌딩농장은 없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현재까지 개발된 국내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과 비교해 50% 정도다. 관련 연구는 농촌진흥청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1996년 농촌진흥청 농업공학연구소는 식물공장 시스템 설계를 시작해 2005년 관련 시스템을 확립했다. 올해 초 남극 세종기지에는 컨테이너 형태의 식물공장을 설치하기도 했다. 극한지에서 채소를 재배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누적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최근 농촌진흥청은 도시농업 활성화를 위한 3단계 중장기 로드맵을 내놨다. 1단계(2011~2013년)는 텃밭을 늘리고 IT를 접목해 도시농업 기반을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도시농업육성법도 함께 시행될 예정이다. 2단계(2014~2016년)에는 집중과 다양화를 원칙으로 한 한국형 도시농업 모델을 만든다는 계획이다. 3단계(2017~2019년)는 빌딩농장 등이 상용화될 수 있도록 지원할 예정이다.
또 농촌진흥청은 이달 빌딩농장을 준공할 예정이다. 경기도 수원에 위치한 국립농업과학원에 지하 1층, 지상 3층으로 지어지는 빌딩농장은 연면적 396㎡ 규모의 철골조 콘크리트 구조다. 아울러 높이 10m, 연면적 50㎡ 규모의 지붕형 유리온실 모양을 띤 수직형 농장 모델도 함께 건설된다.
농장 안에는 에너지 공급을 위해 지열히트펌프시스템과 태양광발전시스템이 설치되고 양액 공급 및 원격환경제어 등의 재배기술이 접목된다. 태양을 대체하는 인공 광원으로는 LED와 고효율 형광등이 사용된다. 농촌진흥청은 이 모델을 바탕으로 향후 5년간 인공광의 농업적 이용기술, 이식 · 정식 · 수확 등 생산자동화기술, 인터넷 및 휴대전화를 이용한 원격환경제어기술 등의 연구를 지속할 예정이다.
지자체의 대응도 시작됐다. 전북 익산에서는 지난 8월 한약과 채소 등 LED 빛을 이용한 무농약 시험재배를 할 수 있는 752㎡ 규모의 식물공장을 착공했다. 전주시는 지난 3월 221㎡ 규모의 식물공장을 열었다. 이곳에서는 인삼 · 고추냉이 · 상추 등을 재배하고 있다. 경기 고양시도 최근 서울산업대와 식물공장 공동연구를 위한 업무 협약을 체결했다.
◇빌딩농장 성공 여부는=일부에서는 전통적인 농업에 반하고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일이라며 빌딩농장을 비판한다. 농장 구축에 필요한 재원 마련도 걸림돌이 되고 있다. 비싼 지가를 어떻게 감당할 것이며 대체 에너지 개발에 들어가는 비용 부담도 문제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데스포미어 교수는 비용의 경우 펀드로 조달하면 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좁은 땅을 지닌 국가가 안정적인 먹을거리 수급을 위해서는 향후 빌딩농장 건설이 필수적이라는 주장도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최근 벌어진 배추 수급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빌딩농장 건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정호 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식물공장의 동향과 전망` 보고서에서 “식물공장은 우리나라처럼 좁은 국토를 가진 국가에서는 농업 생산성을 비약적으로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농업의 새로운 성장 모델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박창규기자 kyu@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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