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애플이 `아이폰`을 발표하기 3년 전인 지난 2004년 핀란드의 한 도시에서 노키아는 기업 고객들에게 인터넷이 가능하고 상대적으로 큰 터치스크린 디스플레이를 갖춘 휴대폰을 시연했다. 노키아는 “이 제품이 노키아가 제공할 수 있는 새로운 가치를 상징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노키아는 머지않아 이 제품 개발 계획을 접는다. 당시 노키아 시리즈60개발팀에서 마케팅 책임을 졌던 아리 하카라이넨 전 매니저는 “경영층은 그 제품이 가격적으로 실패할 수 있다고 우려해 계획을 철회했다”면서 “누구도 터치스크린의 잠재력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2 노키아는 지난 2002년 모바일 컴퓨팅 운용체계(OS)인 `심비안`에 3차원(D) 사용자인터페이스(UI) 기능 탑재를 검토했지만 기기당 2.05달러(약 2360원)의 제조비용이 추가된다는 이유로 취소했다. 2001년부터 2009년까지 심비안 UI디자인부문에서 일했던 주하니 리스쿠 전 매니저는 “`심비안`을 업그레이드해 새로운 기기에 대응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됐지만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었다”면서 “경직된 경영진 때문에 아이디어는 무시되기 일쑤였고, 비용이 든다거나 대수롭지 않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는 26일(현지시각) 노키아에서 근무했던 전 직원들을 인터뷰해 이 회사의 미국 휴대폰 시장 점유율이 30%대에서 8%로 떨어지는 등 스마트폰 시대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이유로 `관료주의`를 꼽았다.
전 직원들은 “노키아 경영진이 조직이 방대해지고 성공에 도취되면서 고객 요구나 실무 직원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 결과 터치스크린, 애플리케이션, 3D 인터페이스 등 중요한 영역에서 선도적인 지위를 잃었다는 것이다.
노키아는 온라인 애플리케이션장터나 `심비안` OS 업그레이드도 등한시했다. 경영진이 저가 모델의 대량 생산을 통한 시장점유율 유지에 안주하며 소비자 요구를 수용하지 못했다.
주하니 리스쿠 전 매니저는 “노키아는 `옛 소련 스타일의 관료주의`에 젖어 있다”면서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려 했다”고 말했다.
노키아 시장은 계속 줄고 있다.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에 따르면 지난 6월 노키아는 전 세계 휴대폰 시장의 40.3%를 점유했는데, 지난해(40.7%)보다 0.4%포인트 줄었다. 특히 미국에서는 애플, 리서치인모션(RIM), 삼성전자 등에 밀려 지난 2002년 35%에 달했던 시장점유율이 올 4월 8.1%까지 떨어졌다(컴스코어). 전반적인 시장점유율 하락폭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은 노키아가 미국에서 떨어진 점유율을 중국, 아시아 등지에서 상쇄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악재도 끊이지 않는다. 지난주 노키아는 소프트웨어 오류로 기대를 모은 스마트폰 `N8`의 출하를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핀란드 경제학자인 쥐르키 알리-이르코는 “노키아는 성공의 희생양”이라며 “그들은 너무 오랫동안 한자리에 머물러 있었다”고 평가했다.
1865년 목재회사로 설립된 노키아는 핀란드의 자랑이다. 12만9000명 직원을 고용한 노키아는 핀란드 국내총생산(GDP)의 1.6%, 수출의 10% 이상을 차지한다.
노키아는 `권토중래`를 노린다. 최근 처음으로 핀란드 출신이 아닌 최고경영자(CEO)를 선임했다. 관료주의와의 전쟁을 벌이는 셈이다. 지난 9월 21일 부임한 스티븐 엘롭 CEO는 세계 최대 휴대폰 제조사로서의 지위를 유지하면서 스마트폰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과제에 직면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 출신인 만큼 노키아의 OS 및 애플리케이션 부문에 힘을 실을 것이란 분석이다.
헨리 티지 노키아 장기연구부문장은 “한자 인지기술, 인도에서의 SNS 등 스마트폰 혁신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면서 “우리는 2004년 이래 문화를 바꾸고 변화하기 위해 진정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황지혜기자 gotit@et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