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현수막이 가로등이라고?

서울 강남역 7번 출구를 나와 2분을 걸으면 대형 LCD 화면과 함께 보행자가 직접 사진도 찍고 현란한 광고 영상도 볼 수 있는 `미디어 폴`이 있다. 미디어 폴은 일종의 광고탑이지만 `옥외광고물등관리법`에는 규정돼 있지 않아 불법 광고물이다. 강남구청은 미디어 폴을 공공시설물인 가로등으로 등록하는 편법으로 법망을 피했다.

LCD · LED 등을 활용한 첨단 디지털정보디스플레이(DID)가 가로등으로 분류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컨버전스산업이 빠르게 발전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법과 제도가 마련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13일 공공기관과 업계에 따르면 `미디어 폴`처럼 통신 · 미디어 · LED 등을 융합한 대표적 컨버전스산업인 `디지털 옥외광고`가 관련법이 없어 이를 설치하면 불법이 돼 공공시설물 등 다른 이름으로 편법 등록돼 사용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현행 옥외광고물 등 관리법 시행령에는 디지털 옥외광고의 용어 규정이 없고 지주이용간판의 전기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LCD · LED 등 전기를 사용하는 디지털 광고물은 모두 불법인 셈이다.

다만 옥외광고와 관련해 구청 등 기초 지자체가 자체 조례를 통해 옥외광고 규정을 완화하고 인허가권를 갖도록 했다. 이 때문에 지자체들은 자체 조례를 만들어 특정지역 설치를 허용하거나 공공시설물로 둔갑시키는 편법으로 허용하고 있다.

미디어 폴과 유사한 `디지털뷰` 서비스도 마찬가지다. 다음커뮤니케이션 등이 지하철 역사에 설치해 운영 중인 이 서비스 역시 디지털 옥외광고에 해당하지만, 시설물에 인터넷전화 기능을 탑재해 공공시설물(공중전화)로 허가를 얻었다.

전국 지자체들은 기존 천 현수막이 흉물로 방치되는 것을 고려해 전자현수막 등 디지털 옥외광고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하지만 행정안전부 · 지자체들은 무분별한 전자광고물 도입으로 도시 미관을 해칠 수 있다는 이유로 디지털 옥외광고 규제 완화를 반대하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구청장 단위로 무분별하게 디지털 옥외광고가 설치되면 구별로 형평에도 맞지 않고 모두 규격이 달라 조화롭게 운영할 수 없다”고 말했다.

디지털 옥외광고물 도입에 대한 공공기관간 이견으로 수출 비즈니스가 좌절되는 등 관련 산업에도 악재로 작용한다. 야후는 올해 국내 한 IT서비스업체와 협의해 인도지역에 디지털 옥외광고 300기를 설치하는 사업을 검토한 바 있다. 이에 대한 시범사업을 국내에서 진행하려 했으나, 디지털 옥외광고가 불법으로 규정돼 인도정부에 보일 레퍼런스(실적)를 확보할 수 없다는 이유로 포기했다.

IT서비스업체 한 관계자는 “프랑스 · 미국 등 해외기업들은 옥외광고와 통신 · 미디어를 결합한 융합형 비즈니스 모델을 속속 내놓고 있다”면서 “디지털 옥외광고를 세계에서 가장 먼저 상용화했음에도 정부 규제로 이 같은 경쟁에서 도태될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정진욱기자 coolj@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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