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일본에게 한국은…

2007년초 이건희 삼성 회장이 `샌드위치론`으로 한국 경제에 긴장감을 환기시킨 일화는 지금도 유명하다. 일본에는 품질과 기술에서 뒤처지고, 중국에는 가격 경쟁력으로 쫓기는 처지가 점점 심화된다는 위기감이었다.

불과 3년여만에 격세지감인가. 요즘엔 일본 기업들이 난리다. 한때 세계 시장을 호령했던 전자산업에서 언젠가부터 한국 기업들을 추격해야 하는 신세다. 중국은 대만과 양안 협력을 통한 거대 중화권 경제의 위세로 압박하고 있다. 가뜩이나 한국과 중국의 틈새에 끼인 처지에, 근래에는 천정부지로 비유되는 엔고 현상이 일본 기업들을 더 짓누르고 있다.

상황이 이쯤되니 일본 기업들 사이에선 자성의 목소리와 더불어 약간의 반한 감정마저 나올 법도 하다. 얼마전 총무성은 장기 침체의 늪에 빠졌던 지난 1995년부터 10년간 일본이 IT 투자를 게을리 한 것이 산업 전반의 경쟁력 약화를 초래했다고 했다. 잃어버린 10년이다. 반도체 · 디스플레이 등 주력 업종에선 기술을 선점해놓고도 한국 기업들에게 주도권을 빼앗긴지 오래다. 일본 기업들이 꼽는 한국의 독특한 저력은 가치가 충분하다. 인적 자원 확보에 핵심 역량을 쏟아 붓는 것이나, 해외 시장에서 오랜 기간 적극적인 수출 현지화 전략을 추진했던 일은 지금까지 보수적인 일본 기업들에겐 드물었다. 이대로 머문다면 일본은 현재 주력 산업은 물론 차세대 전기차용 배터리 등 미래 신성장 분야에서도 패권을 상실할 수 있다는 게 현지의 시각이다.

그러나 한국 기업들의 승승장구를 견제하는 일본의 시각 이면에는 정반대의 현실도 있는 게 사실이다. 올 들어 일본의 주요 전자 소재 · 부품 업체들이 한국 반도체 · LCD 산업 덕분에 큰 수혜를 누린 것이 단적인 예다. 지난 상반기 전자 부품 · 소재 업종에서 한국의 대일 무역수지 적자는 무려 120억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30% 가까이 급증했다. 한국의 대일 부품 · 소재 의존도는 갈수록 심화되는 추세다. 최근 일한경제협회 이지마 히데타네 명예회장은 한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생산 기술과 일본의 부품 · 소재가 협력한다면 큰 시너지가 나올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보다 발전적인 협력을 위해서는 적어도 부품 · 소재 분야에서 한국 기업들의 극일이 우선일 듯 싶다.

서한기자 hse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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