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2년까지 416개 목표…예산·전문성 문제에 주민 반발까지
“소설 <토지>의 무대인 경남 하동군 악양면은 가장 가까운 소방관서인 ‘화개119지역대’에서 출동할 경우 약 20분(15㎞)쯤 걸려 화재가 발생한 경우 전부 소실되는 사례가 많았다. 그러나 악양면에 전담의용소방대가 설치된 뒤 의용소방대원 스스로가 소방차를 몰고 출동해 화재현장에 대처한 결과 소방력 투입시간이 대폭 향상돼 전소되는 사례가 연 4~5건에서 1건 정도로 70% 이상 감소했다.”
소방방재청(청장 박연수)이 8월31일 ‘전담의용소방대’ 제도 확대 계획을 발표하면서 소개한 사례다.
이날 오전 소방방재청은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관(소방관서) 중심 대응체제를 선진국과 같은 ‘민간참여형’ 자율안전체제로 전환하기 위해 주민들로 구성된 ‘의용소방대’가 초기 소방활동을 전담하는 전담의용소방대 제도를 확대 시행한다고 밝혔다.
8월말 현재 전국에 45개가 설치돼 운영중인 전담의용소방대를 2012년까지 416개로 늘리겠다는 것이다.
소방방재청은 전담의용소방대 확대 이유로 정규 소방력 배치가 어려운 농어촌 면 지역 등 소방 사각지대 해소와 소방공무원 3교대 추진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들었다.
이날 브리핑에서 오대희 소방방재청 방호과장은 “현재 전국 1416개 읍면 중 119안전센터나 119지역대가 없는 511개(36%) 지역에선 화재나 구조구급상황에 신속히 대응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1416개 읍면 중)약 7.8%에 달하는 111개 읍면은 소방관 1명만이 근무하는 지역으로서 이들 지역은 인력 충원이 어려운 상태에서 소방공무원 3교대를 시행해야 하는 현실적 어려움이 병존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서 오 과장은 “전담의용소방대는 선진국형 의용소방대 운영 모델로써, 소방차와 주요장비를 별도로 갖추지 못한 기존 의용소방대와 달리 소방차와 소방활동 장비 등을 갖추고 화재발생 등 긴급 상황에서 소방관이 하는 역할을 전담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오 과장 설명에 따르면, 우리와 가까운 일본을 비롯해 미국, 독일 등이 소방차와 주요장비를 갖춘 의용소방대를 운영하며 민간참여형 소방운영체제가 정착시켰다. 소방방재청은 현지조사와 자료조사를 통해 이 3개국의 의용소방대 운영 현황을 연구한 뒤 국내 전담의용소방대 확대 대책을 마련했다.
일본의 경우 각 시·정·촌별로 청사와 소방차, 기타 주요장비를 갖춘 소방단을 운영중이다. 독일은 기초자치단체인 게마인데(읍면)별로 시설과 장비를 갖춘 의용소방대를 운영한다. 미국도 카운티, 타운, 빌리지 등 자치단체별 재정여건에 맞춰 의용소방대를 운영하며 각종 재난에 대비하고 있다.
소방방재청의 전담의용소방대 확대 계획을 보면, 도입·확산기인 내년까지 소방 환경과 수요 등 우선순위를 고려해 188개를 설칟운영하게 된다. 소방관이 근무하다가 최근 인근 지역대나 안전센터로 전환 배치되면서 청사만 남아있는 곳과 소방관 1인만 근무하는 지역대(169개), 인구 1000명 이상 거주 섬지역(19개)이 우선 설치대상이다.
정착기인 내년부터는 현장도착시간이 8분 이상 소요되는 228개 읍·면까지 확대해 모두 416개소에 전담의용소방대를 설치한다는 목표다. 이런 계획대로 라면, 전국 읍·면 지역에 대한 소방력 배치는 85.5%에 이른다고 오 과장은 설명했다.
하지만, 소방방재청이 추진하는 전담의용소방대 확대 계획의 앞날은 그리 밝아 보이지 않는다. 소방대 설치와 소방차·소방장비 구입 및 유지 보수, 의용소방대원들의 전문성 문제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한 상태로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전담의용소방대 설칟운영 예산을 확보하는 게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와 관련해 오 과장은 “현재 시도에서 부담하는 전담의용소방대 지원을 시군과 나눌 수 있도록 할 방침”이라며, “이미 전국 자치단체에 관련 조례를 바꿀 것을 시달했다”고 밝혔다.
국비 지원 없이 전국 시도와 시군의 자체 예산으로 전담의용소방대를 설치하고 운영해야 한다는 뜻이다. 전담의용소방대 설치 대상이 대부분 재정상황이 열악한 농어촌 지역임을 감안하면, 해당 자치단체의 힘만으로 가능할지 의문이 생긴다.
의용소방대원들의 전문성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과연 그들이 전문훈련을 받고 소방기술 등을 갈고 닦아온 직업소방관 수준의 소방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까?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대해 소방방재청 쪽은 “전담의용소방대는 화재 발생했을 때 초기 대응만을 맡고, 핵심 소방활동은 출동한 소방관서에서 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이미 소방공무원 1~2명이 상주하는 119지역대가 있던 지역 주민들이 ‘전문의용소방대 체제’로 바뀌는 데 대해 심하게 반발하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
예컨대, 지난 8월27일 <대전일보> 보도에 따르면, 충남 서천군 판교면 주민들은 “전담의용소방대 설치계획은 목숨과 직결되는 현안을 소방관을 빼고 전문성이 없는 민간에만 맡겨 운영한다는 것”이라고 반발하며 ‘판교119센터유치비상대책위원회’까지 꾸린 상황이다.
<대전일보>는 “판교면 남녀의용소방대원 50여명은 지난 8월26일 ‘판교 119지역대는 목숨처럼 지켜야 할 현안’이라며 의용소방대장에게 전국 최초로 사직서를 일괄 제출한 상태”라고 전했다.
이처럼 전담의용소방대 설치대상 지역 주민들이 집단 반발하는 까닭은, 소방방재청이 역점사업으로 추진하는 ‘소방관 3교대 근무’와 전담의용소방대 확대 계획이 맞물린 탓이다. 전담의용소방대 확대 계획은 내년까지 소방관 1인만 근무하는 169개 지역대 등을 전담의용소방대 체제로 바꾸면서, 기존 소방관을 소방관 3교대 근무를 위해 119센터로 전환 배치한다는 것이다.
재난포커스 (http://www.di-focus.com) - 이주현 기자(yijh@di-focu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