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과학사]1743년 8월 26일

1743년 8월 26일, `근대화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프랑스의 화학자 앙투안 로랑 라부아지에(Antoine Laurent Lavoisier)가 파리에서 태어났다.

뉴턴이 근대 물리학의 초석을 마련했다면, 화학 분야에서는 라부아지에가 그 역할을 했다.

그는 18세기까지 화학계를 지배하던 신비주의적 플로지스톤설을 부정했다. 플로지스톤은 연금술의 이론적 바탕이 되는 물질이었다.

그는 정량적 화학실험 방법을 최초로 도입한 학자이기도 했다. 물질은 생성되거나 파괴되지 않고 단지 형태가 바뀔 뿐이라는 `질량 보존의 법칙`을 정립한 것은 그의 주요 업적이다.

반응 물질의 질량과 생성 물질의 질량 전체가 같다는 유명한 질량 보존의 법칙을 발견한 것이다. 그는 물이 산소와 수소의 결합물이라는 상식을 프랑스 과학아카데미에서 공표했다. `산소(oxygene)`와 `수소`(hydrogene)라는 이름도 라부아지에가 만들어냈다.

후학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라부아지에가 개척한 화학적 명명법이다. 라부아지에는 이전까지 혼란스러웠던 물질의 이름을 통일해 그리스어 혹은 라틴어로 33개 원소명으로 정리했다.

사실 과학사에서는 라부아지에가 태어난 날보다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1974년 5월이 더 널리 회자됐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법학을 공부했고 자연과학에도 관심을 가졌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기 직전인 1788년, 라부아지에는 한 은행의 이사가 됐다. 혁명 이후 라부아지에는 구체제의 세금 징수원으로 고발돼 사형 선고를 받고 단두대에서 목이 잘렸다.

당시 수학자 조제프 루이 라그랑주는 “그의 머리를 자르는 데는 한 순간이면 충분하지만, 같은 머리를 다시 만들려면 한 세기로도 모자랄 것”이라고 그를 애도했다.

프랑스 대혁명의 혼돈 속에서 세상을 등진 빼어난 두뇌 중 그가 가장 빨리 사라진 아까운 두뇌라는 사실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는 듯하다.

김유경기자 yukyu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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