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97년 독일인 칼 브라운은 세계 최초의 음극선관 브라운관(CRT)을 발명했다. 이후 전면에 완만한 곡선을 그리는 CRT TV는 100여년이 흐르는 동안 그 기본 형태를 유지한 채 TV 시장을 지배해왔다.
TV에 일대 혁명이 예고된 건 1980년대 STN LCD를 채택한 소형 LCD TV가 나오면서부터다. 물론 이때까지만 해도 LCD 쓰임처의 한계로 브라운관은 여전히 막강한 위력을 떨쳤다. 그러나 실제로 브라운관 TV를 대체할 LCD TV가 등장한 2000년대 중반 이후 브라운관은 급속하게 쇠퇴의 길을 걷게 된다.
1990년대 중반 TFT LCD의 성공적인 시장진입에 따라 LCD 디스플레이의 핵심 소재로 평평한 유리기판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코닝 · 아사히글라스 · 쇼트 등 100년 이상 유리사업을 이어온 소수의 해외 유리 업체들이 특허를 선점하고 있었기 때문에 국내 기업이 독자 개발로 기술을 따라잡기는 어려웠다.
삼성은 지난 1995년 유리기술을 보유한 코닝과의 합작사인 삼성코닝정밀소재(옛 삼성코닝정밀유리)를 설립하고 유리기판 사업에 전격 진출했다. 그리고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확보해 국내 LCD 사업 성공신화의 조연으로 활동해왔다. 차세대 유리기판을 무리 없이 공급받은 덕분에 국내 디스플레이 업체들이 세대를 바꿔가며 LCD 면적을 키우고 양산 능력을 기를 수 있었다.
지난 2008년 금융 위기 때 감산의 여파로 유리증설이 이루어지지 않아 올해 초 유리기판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한 대만, 지난해와 올해 일본과 대만에 발생한 지진 여파로 고생한 일본 등과 달리 우리나라 디스플레이 업체가 확실한 세계 1 · 2위를 다질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 역시 안정적인 유리기판을 공급받은 점이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디스플레이서치 자료에 따르면 지난 2분기 삼성전자는 78.2%를, LG디스플레이는 43%를,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는 67.4%를 삼성코닝정밀소재로부터 공급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유리기판 소재의 특성=평판 디스플레이용 LCD 기판유리는 반도체 제조 공정의 웨이퍼에 비교되는 핵심소재다. 박막트랜지스터(TFT)와 컬러필터를 부착한 두 장의 유리기판 사이에 액정 물질을 넣고 백라이트 유닛에서 빛을 쏘아주면 액정이 일정하게 움직이면서 영상을 표현하는 하나의 디스플레이가 된다.
일반적으로 알칼리 성분이 함유된 일반유리에 비해 LCD용 유리기판은 무(無)알칼리 특성을 갖는다. 유리 내부에 알칼리 성분이 있으면 230℃ 이상의 고온 공정에서 안정성을 담보할 수 없다. 기판의 면적이 커짐에 따라 표면의 균일도나 두께 편차가 적은 `치수 안정성`도 좋아야 하고, 전기적 특성을 부여하기 위해 증착하는 각종 화학물질의 내구성도 갖춰야 한다. 또 생산성에 따라 경쟁의 승패가 갈리는 LCD 업계의 특성상 유리기판은 점점 대면적화, 박막화되고 있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큰 유리기판은 10세대(2850×3050㎜)다.
디스플레이서치에 따르면 올해 전 세계 LCD 유리기판 수요는 역대 최고인 2억7800㎡에 달한다. 지난 2분기 전 세계 유리기판 업체의 시장 점유율은 삼성코닝정밀소재가 29.6%로 선두다. 일본 아사히글라스화인테크노(AGC)가 25.8%로 그 뒤를 쫓고 있다. 일본 닛폰일렉트릭글라스(NEG)와 미국 코닝이 각각 20.1%, 19.5%로 3 · 4위권이다.
유리기판 수요량의 절반가량인 47.7%가 전 세계 LCD 디스플레이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우리나라에 공급된다. 7세대(1870×2200㎟) 이상 대면적 유리기판만 보면 삼성코닝정밀소재가 1942만㎡를 생산해 1위를 차지하고 NEG가 1453만3000㎡로 2위다.
지난 2007년까지 삼성코닝정밀소재가 대면적 시장의 절반 이상의 점유율을 기록했던 것과 비교해 보면 일본 업체의 추격이 만만치 않다. 중국도 지난 2007년 이리코가 5세대 유리기판 생산을 시작해 분기당 105만㎡씩 출하하고 있으며 앞으로 1개 라인을 추가할 예정이다.
◇유리기판의 최강자 삼성코닝정밀소재=1989년 삼성과 미국 코닝이 TFT LCD의 유리기판 사업을 위해 손을 잡고 `코삼유리기술연구개발센터`를 설립했다. 1995년에는 삼성과 코닝이 50 대 50의 비율로 투자한 국내 최초의 LCD용 유리기판 생산업체 `삼성코닝정밀유리`가 구미에 문을 열었다.
코닝사가 자동차 유리, 안경 렌즈 등을 위해 개발한 `퓨전공법`을 LCD 디스플레이에 맞는 형태로 성능을 대폭 높인 유리기판이 생산되기 시작했다. 디스플레이서치에 따르면 이 회사는 현재 구미 5세대 용해로에서 분기당 172만4000㎡, 아산탕정 용해로에서 분기당 2399만7000㎡의 유리기판을 생산, 세계 최대의 유리기판 생산 회사가 됐다. 지난 5월에는 사명을 삼성코닝정밀소재로 바꾸고 `유리`의 한계를 뛰어넘은 무기소재 전문기업으로 도약하겠다고 밝혔다.
회사는 염소 · 불소 · 브로민 · 비소 · 바륨 등 중금속이나 할로겐 화합물이 전혀 섞이지 않은 친환경 제품을 생산해 각종 환경 규제에 대응하고 있다. 또 두께를 0.4㎜(5세대)까지 줄였다. 앞으로는 0.3㎜까지 두께를 줄여 5세대 이상 대형 크기의 유리기판을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최근에는 새 사업으로 저온폴리실리콘(LTPS)과 능동형(AM)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용 유리기판(모델명 Jade)을 출시했으며, 지난해 미국 코닝과 합작해 `코삼테크놀로지스`를 설립하고 태양전지용 유리기판 시장에도 발을 내디뎠다.
◇LG화학, 2012년부터 유리기판 생산=LG화학은 지난해 2월 유리 분야에서 특허를 보유한 독일 쇼트사에서 유리기판 제조 기술을 도입했다. 쇼트가 갖고 있는 기술인 `플로트` 공법은 유리기판을 연마할 때 성능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지적돼 왔지만 LG화학은 이를 해결해 양산에 들어가겠다는 복안이다.
파주 월롱산업단지의 `LG 파주 첨단소재단지`에 오는 2018년까지 3조원을 투자해 총 7개의 LCD용 유리기판 생산라인을 건설할 계획이다. 이 라인이 준공되면 연간 5000만㎡의 유리기판을 생산하게 된다. 일단 내년 4월께 1개 라인이 완공되면 생산을 시작해 늦어도 2012년 3월에는 본격적으로 양산할 예정이다.
올해 초 김반석 LG화학 부회장은 “유리기판 라인 증설을 앞당기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밝힌 바 있어 그 시기가 앞당겨질 가능성도 충분하다. LG화학이 유리기판을 공급하면 삼성코닝정밀소재와 파주전기초자 등에서 유리기판을 사오고 있는 LG디스플레이의 유리 공급원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오은지기자 onz@etnews.co.kr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 플렉시블 디스플레이 시장 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