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실적이 좋아지면 대기업에 납품하는 중소기업들의 실적도 좋아져야 하는 게 상식이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금융위기를 전후해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물론 1차 협력업체와 2ㆍ3차 협력업체 간 양극화가 오히려 심화됐다."
경제계의 핫이슈인 대ㆍ중소기업 상생에 대해 중소기업중앙회가 제기하는 문제의식이다.
중앙회 주장이 아니라도 우리나라 대ㆍ중소기업 간 경영성과 격차는 주요 선진국 사례와 비교하면 극명하게 드러난다.
김승일 중소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전략경영연구실장)에 따르면 주요 국가의 대ㆍ중소기업 간 영업이익률 격차는 크지 않다.
프랑스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모두 평균 8%대로 비슷하고 미국은 대기업 9%, 중소기업 7%대, 독일은 오히려 대기업 5%, 중소기업 7%대로 중소기업이 더 높다.
김 연구위원은 "한국에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교섭력 격차가 크다 보니 중소기업들이 대기업들에 울며 겨자 먹기로 당하는 부분이 많다"며 "특히 매출액의 상당 부분을 대기업에 의존하는 업체들은 대기업 요구가 부당하더라도 이를 쉽게 거절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대기업들은 이 같은 주장에 대해 기술개발과 내부 원가절감 등 글로벌 경쟁력 강화 노력이 높은 영업이익률로 이어진 것이라고 반박한다.
박종서 삼성전자 상생협력센터장은 "대기업이 높은 영업이익률을 내는 것은 앞선 투자나 신제품 개발을 통해 제값을 받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TV를 예로 들면 LCD TV는 매년 20~30%씩 소비자 판매가격이 떨어지는데 발광다이오드(LED) TV와 3D TV 등 경쟁사에 앞서 신제품을 출시해 이익 구조를 맞춘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중소기업들 주장은 다르다. 대기업의 실적 호조는 납품단가 인하 등 중소기업 희생을 담보로 이뤄진 것이라는 지적이다.
반도체 칩을 담는 용기인 IC트레이를 생산하는 A사 사장은 "올 1분기 대기업에 납품하는 IC트레이 가격을 개당 1020원에서 978원으로 42원 깎였다"면서 "대기업이 한 업체 제품을 쓰다 불량이 생기면 안 된다는 명분으로 여러 업체에 물량을 분배해 수주 경쟁을 시키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공동 개발한 제품도 6개월 정도 공급하고 나면 다른 업체에 제품을 주며 만들 수 있는지 본 뒤 물량을 배정한다"면서 "다른 업체가 비슷한 수준으로 제품 품질을 끌어올린 뒤 우리보다 단가를 낮춰 들어오면 우리도 단가를 따라 낮출 수밖에 없다"고 반박했다.
이 회사는 2006년 120억원이 넘었던 영업이익이 작년 5억원으로 줄었다. 지난해는 비용 절감을 위해 종업원을 30명 넘게 줄였다.
중소기업들은 범용 부품을 생산하는 영세업체일수록 수익을 내기 힘들다고 주장한다.
경기도 반월공단에 있는 B사 사장은 "납품에 성공하려면 중국 등 개발도상국 업체들과 최저입찰 경쟁을 펼쳐야 한다"고 반박했다.
그는 "특히 범용 제품을 만드는 부품 업체들은 20%나 부품값이 낮은 중국 업체들과 경쟁하기 때문에 사실상 매년 단가 인하를 강요당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글로벌화를 양극화 심화 원인으로 꼽는다.
박원재 대우증권 연구위원은 "대기업들은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고자 생산기지를 외국으로 옮기지만 하도급 업체들은 이를 따라하기 힘들기 때문에 영업이익률 격차가 발생한다"면서 "양극화는 갈수록 심해질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불공정 거래 관행이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에서뿐만 아니라 1차 협력업체(덩치는 대기업)와 2차 협력업체 간에 만연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1차 협력업체들은 대기업에 납품대금을 현금으로 받으면서 2차 협력업체들에는 어음을 끊어주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삼성전자가 최근 자체 조사한 결과에서도 2ㆍ3차 협력업체들이 60일 이내에 현금화할 수 없는 조건으로 대금을 지급하는 1차 협력업체 비율이 30%나 됐다.
서병문 중소기업중앙회 부회장은 "원자재 가격이 올라 납품단가 인상을 요구했더니 단가를 올려주기는커녕 수억 원에 달하는 납품대금을 몇 달째 미루는 사례도 있다"며 "이같은 사례를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해도 시정이 되지 않는 게 현실"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중소기업은 주로 대기업 1차 협력업체와 논의하는데 1차 협력업체들이 중소업체의 납품단가 인상 요구를 제대로 받아주지 않고, 대금 지급도 늦추고 있어 애로가 많다"고 말했다.
[매일경제 노현 기자 / 이상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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