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재권 폭풍이 몰려온다] <1>무방비 침해 中企 지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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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지식서비스산업이 발전하려면 지식재산권 보호에 대한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 과거 외국 제품을 카피(복제)하는 문화가 고착화되면서 개인뿐 아니라 기업도 지재권에 대한 인식이 매우 낮다. 지재권 문제는 최근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대·중소 상생 문제와도 연관이 깊다. 대기업들이 협력 중소벤처기업의 핵심 보유기술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고 빼앗는 사례가 적잖게 발생한다. 전자신문은 대·중소 상생 발전 문화 조성과 지재권 보호 인식 확산을 위해 지식재산서비스산업 현황 및 발전 방향을 총 5회에 걸쳐 점검해본다



1회 무방비 침해 中企 지재권

2회 외면받는 보호 시스템

3회 산업계에 부는 지재권 폭풍

4회 지금 세계는 지재권 전쟁 중

5회 지식재산 강국으로 가는 길



<1회> 무방비 침해 中企 지재권

#사례 1. 대기업에 휴대폰 부품을 납품해온 중소기업 A사. 수년의 노력 끝에 개발해 발주처를 찾았다는 기쁨도 잠시, 발주한 대기업이 예고 없이 거래 중단을 통보했다. 더 충격적인 것은 발주사였던 대기업이 계열사를 거쳐 동일한 제품을 조달받고 있었던 것. A사는 소송을 제기해 대기업 계열사의 특허침해 결정을 받아냈으나 회사는 이미 부도가 난 뒤였다.

#사례 2. 대기업 컨소시엄에 참여 중인 SW 벤처기업 B사는 대기업으로부터 보유한 특허 공유를 요청받았다. B사는 이에 부정적 견해를 피력했으나 대기업은 `거래 중단` 위협을 했고, 이에 대기업과의 거래 관계 유지를 위해 A사는 피치 못하게 특허를 공유할 수밖에 없었다.



대중소기업협력재단과 기업호민관실에 접수된 중소·벤처기업이 대기업으로부터 지재권을 침해당한 사례다. 고발장에 따르면 IT기업은 대기업과의 협력에서 `상생`보다는 지재권을 빼앗기는 일방적 피해를 보고 있다. 업계에서는 일부 특정 대기업과의 협력을 `참사` `괴담` `침탈` 등으로 표현하는 경우도 잦다. 이미 알려진 납품 단가 `후려치기`보다 더 심각한 지식재산권을 빼앗기는 사례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해 조사한 결과, 중소기업 22.1%가 대기업으로부터 기술을 탈취당한 경험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술협력과정에서 사업계획서와 각종 기술보고서를 제출하고서 아예 협력 계약조차 체결하지 않고 무시하는 경우는 이보다 많다. 대기업이라는 이유로, 납품업체·협력업체라는 이유만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갑을관계는 명확하다.

대기업은 중소기업의 지재권을 인정하지 않고, 무조건 가격(납품단가)을 낮춰 받는다. 결국 가격을 낮추기 위해서는 한 업체만이 아닌 다수의 경쟁을 유도하고 이 과정에서 계열사 또는 다른 협력사에 정보를 줘 기술개발을 하는 경우도 있다. 경쟁을 붙여 가격을 낮추겠다는 전술이다. 이 과정에서 필요에 따라 높은 단가를 요구하거나 또는 단가 인하에 나서지 않는 하도급업체는 `거래 중단`이라는 제재를 내림으로써 시장에서 도태시킨다. 엄연한 현실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일부 대기업들은 하도급업체 납품원가를 매년 5% 줄이도록 하고 있다”며 “이는 엄연히 법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매년 말 새로운 계약에 돌입하는 기간이면 하도급업체 사장들이 대기업과의 계약을 앞두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특히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면, 단가 인하 압력이 더욱 심해진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 5월 중소기업 208곳을 대상으로 원자재 가격 상승분을 납품가격에 일부라도 반영했는지를 조사한 결과, 전체의 44.2%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고 응답했다. 가격 상승분을 고스란히 중소기업이 떠안았다는 말이다. 충격적인 것은 이 비중이 오히려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같은 조사에서는 이 비중이 17.0%였는 데 비해 올해 두 배 이상 늘어났다. 생산 원가조차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중소기업의 지재권 보호는 딴 세상 얘기로 치부되기 십상이다.

지재권 침해 문제가 대기업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중소기업 간에도 지재권 분쟁이 갈수록 늘고 있다. C 중소기업은 1년 넘게 자사의 온라인 디지털콘텐츠를 무단 도용해 판매한 중소기업 때문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회사는 소송을 걸어 승소했음에도 상대 중소기업이 대표 명의를 바꾸고, 주소지를 지방으로 옮겨가며 항소해 피해가 늘었다. C 회사 관계자는 “중소기업이 법적으로 쫓아와야 언제까지 쫓아오겠느냐는 식의 반응”이라며 고충을 토로했다.

김세종 중소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기업 간 동반자 의식이 필요하다. 경제가 혁신구조로 가기 위해서는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외부 역량을 활용해야 한다”며 “정부와 기업 모두 인식 변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서병문 중소기업중앙회 대·중소기업 협력담당 부회장도 “중소기업도 대기업에 대단한 특혜나 지원, 일방적인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며 “중소협력기업의 지재권을 인정하고 동반자로 대우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문화를 요구한다”고 말했다.

김준배기자 joo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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