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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를 비롯해 전 세계가 녹색성장에 큰 희망을 거는 분위기다. 녹색성장은 기후변화로 대변되는 환경위기와 날로 심화되는 자원·에너지 위기, 그리고 기록적인 실업율과 저성장의 경제금융 위기라는 3중의 복합위기에서 나온 대안적인 경제 성장 패러다임이다. 과거의 한계를 극복하고 지속가능한 녹색 길을 추구하자는 미래 지향적 패러다임으로 전환을 예고하는 것이다. 이제 녹색성장은 단순히 환경보전과 경제발전, 그리고 사회통합이 조화되는 지속가능발전의 개념을 뛰어 넘어 환경보호가 신성장 동력임을 주창하고 있고 일자리 창출과 빈곤 퇴치 그리고 삶의 질 개선까지 포괄한다.
녹색성장이 종래의 지속가능발전과 차별화되는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녹색혁신을 강조하는 대목이다. 주지하듯이 녹색혁신은 주로 환경친화적 녹색기술의 발전을 지칭하지만 동시에 조직 및 제도 변화를 포함한 비기술적인 변화까지도 포함하는 개념이다. 실제 녹색성장은 녹색혁신 없이는 거의 불가능하다. 최근 유럽의 한 보고서에 따르면 민간의 자발적인 녹색혁신은 환경적 외부효과와 지식의 외부효과 때문에 어려움이 많아 정부의 개입에 의해 오염기술을 청정기술로 전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또 그 개입수단으로 탄소배출에 대한 가격부과와 청정기술에 대한 연구개발 보조금을 도입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이제 녹색성장을 가능케 하는 기반기술인 청정기술이 주목받고 있다. OECD 중간 보고서에 따르면, 신기술은 자원 집약적이고 오염적인 활동을 대체할 뿐 아니라 기존 활동의 환경적·경제적 효율성을 높임으로써 환경성과의 제고와 녹색성장 달성에 공헌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같은 녹색성장을 가능케 하는 대표적인 유망기술로 정보통신기술(ICTs), 바이오 기술과 더불어 나노기술이 거론된다. 지난해 7월 개최된 나노기술의 잠재적 환경편익에 관한 국제 콘퍼런스에는 나노기술이 수처리, 신재생에너지 생산·저장, 환경 센서, 청정 자동차, 토양정화, 친환경농업 등 수많은 분야에서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는 의견들이 나왔다. 그러나 다양한 효과에도 불구하고 분자 조작에 따른 유독성 문제와 인체세포의 침투성으로 인해 안전하게 관리되지 않을 경우 마치 지난 세기의 석면과 같이 환경 생태계에 커다란 악영향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노기술은 사회경제적 및 환경적으로 폭넓은 활용 가능성을 지닌 21세기 범용기술이기 때문에 잠재적인 위해성을 우려해 기술 개발을 포기할 수는 없다. 나노기술이 녹색성장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정책적 노력이 요구된다.
첫째, 나노기술은 녹색 나노기술로 발전해야 하는데, 이는 나노기술의 녹색화와 나노기술에 의한 녹색화로 구분할 수 있다. 전자가 생산과정에 초점을 맞추어 나노물질(제품)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녹색화학원칙을 준수하는 등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제조방법을 사용하는 것이라면, 후자는 나노물질에 초점을 맞추어 나노기술로 만들어진 물질이 환경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활용되는 것을 말한다. 둘째, 제조된 나노물질의 안전성 연구관리를 강화하고 환경친화적 이용을 확대하는 것이다. 나노물질의 제조와 사용에 있어서 가장 큰 걸림돌의 하나는 환경, 건강상의 안전성 여부에 관한 자료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이다. 따라서 지난 2007년 이후 OECD가 추진 중인 주요 나노물질에 대한 안전성 실험을 강화하는 한편, 나노물질의 수명주기 분석과 환경적 우선순위 등을 고려한 나노기술의 친환경적 활용을 확대해야 하겠다. 셋째, 나노기술 및 제조물질에 대한 국민인식 제고 및 참여를 확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지난 2006년도의 한 조사에서는 조사대상의 약 70%가 나노기술에 대하여 전혀 또는 거의 모르는 것으로 나타났고, 아울러 나노기술이 초래할 잠재적인 위해성에 대한 정부의 관리능력에 심각한 불신을 드러냈다. 따라서 나노기술에 대한 국민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교육 및 참여프로그램을 활성화하는 한편, 나노물질(제품)에 대한 공인 인증(labelling) 제도의 도입과 안전성 실험결과의 투명한 공개가 이루어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나노물질의 안전한 관리를 위해 효과적인 감독체계가 구축돼야 한다. 지난 2008년 이후 OECD는 각국의 나노물질 규제시스템을 연구하고 있는데, 1차 조사결과 응답 국가 중 어느 나라도 나노물질에만 특정된 규제법령은 없었고, 기존 법의 틀에서 나노물질을 규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노물질의 효과적인 관리감독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나노물질의 독특한 특성을 고려해 기존 법 체계의 정비가 필요하다. 아울러 기존 법에서 친환경적인 신 나노물질의 활용을 제한하는 규정이 있다면 이를 폐지하는 것도 함께 검토돼야 한다.
OECD는 내년 5월 녹색성장전략 종합보고서를 발간할 계획이다. 나노기술·나노물질이 녹색성장의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환경적 위해성과 사회경제적 편익의 비교분석을 시작으로 효과적인 규제 프레임워크의 개발과 나노물질 활용에 따른 경제사회적 이슈에 대한 해답을 찾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기후변화와 지구촌 경제위기가 대변하듯, 이제 세계는 급속히 가까워지고 있고 우리 혼자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공통의 난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그럼에도 아직 우리는 내부에서만 잘하면 된다는 폐쇄적 사고가 남아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환경 분야에서는 고도 압축성장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겪었던 환경 이슈들을 슬기롭게 헤쳐 온 소중한 경험과 노하우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선진국과 개도국의 틈새에서 모호한 입장을 취해왔던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제 새로운 녹색성장 시대를 맞아 나노기술 4위권의 국격에 걸맞게 선진국과 개도국의 가교 국가로서 양자를 한데 묶으면서 환경과 경제를 함께 살리는 `녹색성장을 향한 나노기술의 전략적 비전`을 주도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김법정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정책분석가 BeobJeong.KIM@oecd.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