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TV 요금 日의 7분의1…고품질 콘텐츠 꿈도 못꿔

◆ 미디어 빅뱅 / 제2부 유료방송 키워야 미디어가 산다 ◆

요즘 전국 아파트는 두 가지 전쟁을 치르고 있다. 하나는 아파트 가격 하락에 따른 전쟁, 또 다른 하나는 케이블TV 요금 인상 반대 전쟁이다. 사회문제로까지 확산된 아파트 가격 하락 못지않게 최근 케이블TV 요금을 둘러싼 `민원`도 만만치 않다.

케이블TV사업자(SO)들이 디지털 전환 또는 재계약을 이유로 아파트 내 공급되는 케이블TV 수신료를 인상하려 하자 주민들이 일제히 반발하고 나선 아파트 단지가 적지 않다.

방송통신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1~4월 신문고와 방통위 콜센터 등을 상대로 제기된 케이블TV방송에 관한 민원건수는 총 67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44건) 대비 50% 정도 늘었다.

민원의 대부분은 △케이블TV 월 시청료가 3000원인데 이를 8000원으로 올렸다 △1만5000원대 고가 상품에 가입하지 않으면 스포츠 채널ㆍ지상파 계열 채널이 안 나온다 △디지털 시청을 위해서는 디지털 상품에 가입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케이블TV 사업자들의 과장 영업 또는 일방적인 요금 인상은 문제다. 하지만 이들의 고충도 만만찮다.

케이블TV 사업자 A대표는 "요금을 올리려다 실패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케이블TV 30개 채널 한 달 요금이 4000원인데 자장면 값보다 못하면서 어떻게 산업 발전이 있을 수 있겠는가"라면서 "정부가 유료방송 시장의 저가 문제를 획기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아무리 좋은 종합편성 채널이 나와도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재 한국 유료방송 시장의 `가격 문제`는 심각하다.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이 낮은 수준이 2000년 이후 무려 10년간 지속되고 있다.

유료방송 사업자와 신문방송학자들은 정부가 추진하는 종합편성 및 보도전문 채널 신규 선정에 대해 `콘텐츠 시장 활성화`란 측면에서 찬성하지만 성공 여부에는 회의적인 입장이다. 가장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저가로 고착된 수신료의 현실 때문이다.

실제로 70여 개 채널에 이르는 서비스에 대한 월평균 요금은 가입 가구당 약 8달러로 이는 해외 주요국의 유사 서비스 대비 최대 8~9배까지 낮다. 최근 들어 일부 지역에선 5달러까지 떨어졌다. 호주 73달러, 일본 58달러, 싱가포르 35달러, 필리핀도 13달러에 달한다. 가구당 월평균 13만원 이상인 한국의 통신요금 지출과도 극명하게 대비된다.

2008년부터 본격적으로 IPTV 서비스가 도입되면서 `제값 내고 TV를 본다`는 유료방송 시장 정상화를 기대했지만 이마저도 수포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KT는 스카이라이프와의 결합상품(쿡TV-스카이라이프)을 내놓으면서 `저가` 논쟁을 부추겼다. 이 결합상품 중 위성방송 요금을 애초 2000원으로 책정했다가 최근 6000원으로 올렸지만 이마저도 아날로그 케이블TV 상품 수준에 불과하다.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도 최근 방송통신 결합상품을 내놓으면서 IPTV는 공짜로 공급하는 상품을 잇달아 선보였다. 또 다른 뉴미디어인 지상파DMB는 이미 무료고 유료로 서비스하던 위성DMB도 현재 사실상 공짜로 서비스하는 중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방송=공짜`라는 인식을 고착화할 가능성이 있어 유료방송 업계의 주름살을 깊게 만들고 있다.

케이블TV협회는 "KT와 SK텔레콤이 유료방송을 자사 통선서비스 가입자 지키기 수단으로 전락시키고 있다"며 "IPTV 도입 논의 당시 통신사업자들은 과감한 콘텐츠 투자 등을 통해 유료방송의 건전한 경쟁을 이끌어 미디어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 공언해 왔으며, 정부도 이 같은 약속을 믿고 IPTV를 적극적으로 지원해 온 것"이라고 지적했다.

저가를 넘어 공짜로 전락할 위기에 처한 유료방송은 케이블TV 산업 전반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 방송콘텐츠 경쟁력 악화가 불 보듯 뻔하다. 방송 콘텐츠 제작사에 돌아갈 케이블TV 수신료가 없기 때문이다.

송종길 경기대 교수는 "가입자가 포화 상태에 이른 유료방송 시장에서 마케팅 경쟁을 통해 서로 고객 빼앗기 경쟁을 하는 것은 산업 성장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과도한 마케팅 경쟁의 여파는 유료방송사업자는 물론 이들에 방송 콘텐츠를 제공하는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에도 고스란히 전이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PP 수신료 배분은 PP가 양질의 프로그램을 다시 만들어 방송을 내보내는 선순환으로 이어져야 하지만 워낙 수신료가 낮다보니 100여 개 SO와 200여 개 PP에 제대로 수익이 돌아가 재투자를 유도하기가 어렵다. 실제로 PP는 이러한 현실 때문에 광고에만 집중하지만 TV광고 시장은 이미 성장 한계에 달해 더 이상 좋은 방송을 내놓기가 힘든 상황이다.

■ 재탕ㆍ삼탕 방송 막을 정부 지원책 서둘러야

공짜로 전락할 위기에 처한 유료방송을 되살릴 방법은 없을까.

전문가들은 오는 2012년 12월 31일로 예정된 `디지털방송 전환`을 분기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또 방송통신 융합 서비스 등장이 유료방송 시장 붕괴로 이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에서 가이드라인을 제정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디지털 방송으로 전환하면 고화질(HD) 방송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주문형 비디오(VoD) 시청, 노래방, 양방향 쇼핑, 데이터 방송 등 부가 서비스가 가능해진다. 고화질 방송에 따라 수신료를 정상화할 수 있는 가능성도 높아져 광고나 협찬 이외에도 `수신료`로 시장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실제로 아날로그 케이블TV의 가입자당 매출은 평균 6000~7000원에 불과하지만 디지털 케이블TV 가입자의 1인당 평균 매출은 1만1000~1만3000원 수준으로 최대 2배 정도 높은 상황이다. 때문에 케이블TV 사업자들은 현재 평균 20%에도 못미치는 디지털 전환율을 하루빨리 끌어올리고 정부는 이를 위해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방송통신 융합 서비스로 인한 저가 경쟁을 막기 위해 정부가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도준호 숙명여대 교수는 "제 살 깎기식 저가 경쟁은 경쟁 사업자의 가격 인하를 유인하며 콘텐츠시장 붕괴로 이어진다"면서 "유료방송 시장 정상화라는 큰 틀에서 정책 대원칙을 세워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통신사업자가 유료 방송에 대해 저가 또는 공짜 수준의 요금을 승인(인가) 받으러 올 때 방송통신위원회가 이를 분명히 거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다.

[매일경제 특별취재팀=윤상환 팀장 / 황인혁 기자 / 손재권 기자 / 이승훈 기자 / 한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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