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무지 `케이블TV` 개척 15년만에 1520만가구가 본다

◆ 미디어 빅뱅제2부 유료방송 키워야 미디어가 산다 ◆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과대 포장된 탓에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특혜 시비가 불거졌다. 일부 신청 업체들은 유력 인사를 등에 업고 사활을 건 맹렬한 로비 활동을 벌였다. 영화ㆍ오락ㆍ스포츠 채널 선정에 삼성ㆍ현대ㆍ대우ㆍ진로ㆍ동아 등 대기업이 앞다투어 뛰어들었다. 반면 보도채널은 수익성이 없다는 이유로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PP 분야 허가 심사위원장(보도ㆍ오락ㆍ어린이 분야)이었던 한 전 부위원장은 "워낙 경쟁이 치열했고, 특혜 시비도 있어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형평성 있게 참여하도록 기준을 정했다"며 "그러나 보도채널은 초기엔 사업 전망이 불투명해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만 해도 종이신문의 영향력이 컸고, 경영도 잘될 때여서 주요 신문사들이 방송 진출에 관심이 전혀 없었다"며 "YTN은 현소환 사장의 적극적인 의지로, MBN은 경제뉴스 시대를 예견하고 엄청난 리스크를 감수하며 뛰어들었다"고 밝혔다.

케이블TV는 1995년 3월 1일 `뉴미디어의 총아`라는 기대를 받으며 48개 SO가 9만여 가구를 대상으로 24개의 채널로 방송을 시작했다. 그러나 방송 시작 얼마 후 부푼 전망과 달리 볼 만한 프로그램이 없다는 비판이 쏟아졌고, 전송망 설치를 둘러싼 기술적 장애로 시청자 불만이 끊이지 않았다.

적지 않은 PP는 초기의 막대한 투자비용과 누적되는 적자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에서 `애물단지`로 전락해 갔다. 이어 1996년 말 제일방송(JBS)이 홈쇼핑채널인 삼구쇼핑으로 넘어갔다. 이는 PP에 대한 구조조정의 신호탄이었다. 외환위기 한파가 몰아치면서 부도 위기에 내몰린 곳이 속출했다. 진로그룹의 부실 경영으로 새그린TV가 29개 PP 가운데 처음 부도를 맞았다. 1998년 3월 다솜방송이 부도를 낸 데 이어 기독교TV도 부도를 맞았다. 동아그룹의 동아TV도 10월 방송을 일시 중단했다. 캐치원(삼성), 현대방송(현대), DCN(대우) 등 대기업도 줄줄이 시장을 떠났다.

미디어시장에도 본격적으로 시장경제원리가 도입된 것이다. 2001년 정부가 PP를 등록제로 전환하면서 복수방송채널사용사업자(MPP)도 등장했고, 현재 184개 PP가 있다.

수익성이 불투명했던 보도채널도 외환위기의 직격탄을 맞았다. YTN은 1995년 234억원의 적자를 기록한 후 적자가 해마다 쌓여 누적적자가 1997년 971억원, 1998년 1354억원에 달했다.

경영 위기를 견디다 못해 1997년 12월 최대주주가 연합통신에서 한국전력 자회사인 한전정보네트워크로 바뀌었다. 이어 1998년 한국담배인삼공사(현 KT&G), 한국마사회, 한빛은행(현 우리은행) 등의 공기업이 대거 참여한 가운데 1200억원의 증자가 이뤄졌고, 자본금을 1500억원으로 늘렸다. YTN은 사실상 공적자금 투입으로 회생한 것이다. 2004년 3월 주식액면분할과 감자를 거쳐 정상화에 이르렀다.

케이블TV 출범 당시 29개 채널 가운데 주인이 지금까지 바뀌지 않은 곳은 MBN이 유일하다. 대부분 채널의 최대주주가 바뀌었고 채널명과 장르가 바뀐 곳도 적지 않다.

서종환 당시 공보처 방송국장은 "YTN은 지상파 출신 방송인들이 방만한 경영으로 부도를 맞았다"며 "반면 MBN은 경영을 잘했기 때문에 살아남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매일경제 특별취재팀=윤상환(문화부) 팀장 / 황인혁 기자 / 손재권 기자 / 이승훈(이상 산업부) 기자 / 한정훈(MBN)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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