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인덕 도시바코리아 사장(54)은 요즘 인문학에 푹 빠져 있다. 그가 요새 곱씹으며 읽는 책이 손자병법이다. 내용 하나하나가 가슴에 와 닿지만 차 사장은 특히 ‘도천지장법’이라는 문구를 금과옥조로 여긴다.
“주어진 운명이 있지만 의지가 강하면 바꿀 수 있다는 게 시사점입니다. 손자가 말한 ‘도(道)’는 인간 의지의 중요성을 말합니다. 천(天)과 지(地)는 자연적으로 주어진 운명, 장(將)은 훈련된 기술 즉 지혜를 뜻하고 법(法)은 시스템입니다. 천지장법 모두 이미 사전에 갖추어져 크기가 정해져 있습니다. 이에 반해 의지를 뜻하는 도는 크기가 정해져 있지 않아 나머지를 뒤바꿀 수 있는 원동력입니다.”
차 사장은 “병법의 상수인 도는 결국 꿈과 비전”이라며 “경영도 비슷하다”고 강조했다. “조직은 성과를 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동기 부여가 필요합니다. 사람을 움직일 수 있는 원동력이 개인적으로는 꿈이고, 조직에서는 비전입니다.” 그는 이어 조직의 큰 꿈을 이루기 위해 먼저 자신의 미래, 가족 행복과 같은 작은 꿈을 실천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자신과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사람이 조직의 비전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데 적극적입니다. 꿈은 절대로 하루아침에 저절로 이뤄지는 법dl 없습니다. 탄탄한 기본기를 갖추고 꾸준히 작은 일부터 실천해 나갈 때 가능합니다.”
도시바코리아는 내년 국내에 진출한 지 10년을 맞는다. 차 사장은 2001년 사령탑을 맞아 9년 동안 도시바를 이끌었다. 재임 기간만 보면 글로벌 기업 CEO 가운데 가장 길다. 최장수 CEO였던 최준근 HP 사장이 퇴임하면서 본의 아니게 글로벌 기업 ‘간판 CEO’로 이미지를 굳혔다. 10여년 동안 도시바를 이끌면서 늘 강조한 것도 바로 꿈이었다.
차 사장은 국내에서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았던 ‘도시바’ 브랜드를 널리 알린 일등공신이다. 당시 정보기술(IT) 업계에서 드물게 톱 모델을 활용한 파격적인 마케팅으로 주목을 받았다. 도시바 광고 이후 ‘빅 모델’ 기용은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덕분에 도시바는 삼성전자·LG전자 다음으로 점유율을 끌어 올리며 노트북 시장에 적지 않은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취임 초기 3년 안에 3위에 들겠다는 게 비전이었습니다. ‘Within3, Top3’라는 약속을 목표로 2002년 1% 미만에 불과하던 점유율을 2004년 3위까지 올려놓았습니다.”
도시바는 노트북 역사와 같은 업체다. 1985년 세계에서 처음으로 상용 노트북 컴퓨터를 선보였다. 개발 제품은 많았지만 실제로 소비자가 사용할 수 있는 노트북은 처음이었다. 이후 1992년 발표한 세계 첫 컬러 디스플레이 노트북 ‘T440SXC’와 같이 대부분 신제품에 ‘세계 최초’라는 수식어가 유난히 많이 붙는다.
“도시바가 노트북 시장에서 변치 않은 사랑을 받는 것도 비전 때문입니다. 혁신적 기술과 창의성을 바탕으로 인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것이 도시바의 비전입니다. 비전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인지도가 올라갔습니다.”
도시바는 노트북 사업을 시작한 지 올해로 25주년을 맞는다. 차 사장은 올해 초 신년 시무식에서 직원들에게 ‘기본으로 돌아가자(Back to the Basic)’고 주문했다.
“경영은 선택과 집중이 중요합니다. 공격적으로 나설 때와 조용히 기다릴 때를 가려야 합니다. 지금 도시바는 공격보다는 수성이 필요할 때입니다. 보다 큰 꿈을 이루기 위해 준비하고 때를 기다리는 것이 도시바코리아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차 사장은 “지속 성장을 위한 원동력으로 조직 비전을 공유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재차 강조했다.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