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3일 캐딜락에서 중형 세단 CTS의 고성능 모델인 CTS-V를 출시했다. 심상치 않은 `V`라는 글자를 붙인 CTS-V는 외형상 일반적인 세단 CTS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자세히 살펴보면, 보닛 위가 불룩하게 솟아올랐고, 범퍼 아래 공기 흡입구도 훨씬 크며, 휠의 모양과 크기도 다르다. 그러고 보니 조금 더 스포티해 보인다. 하지만, 이 차의 성능을 살펴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신형 V8 6.2리터 엔진에 슈퍼차저를 더해 최고출력이 무려 556마력에 이르고, 정지상태에서 시속 60마일까지 가속하는데 불과 3.9초가 걸릴 뿐이다. 스포츠카나 레이싱카가 아닌 세단이 말이다.
지난해에는 수많은 스포츠카 개발의 메카일 뿐 아니라 너도 나도 기록에 도전하는 서킷으로 유명한 독일의 뉘르부르크링 노르트슐라이페에서 7분 59초 32라는 놀라운 기록을 수립하기도 했었다. 양산형 V8 엔진을 장착한 4도어 세단으로서는 최고 기록이다. 이쯤 되면 비록 세단의 탈을 쓰고 있지만 슈퍼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CTS-V처럼 세단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 속에는 스포츠카의 야성을 품고 있는 슈퍼 세단들이 여럿 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모델은 BMW M5다. M5는 1984년 처음 등장하였으며, 2004년 등장한 4세대 M5는 E60 5시리즈를 바탕으로 V10 5리터 507마력 엔진과 3세대 SMG 변속기를 장착하고, 0-100㎞/h 가속 4.7초의 성능을 자랑했다.
당시로서는 슈퍼 세단의 정점에 이르는 강력한 성능이었던 만큼, 이 후 M5를 넘어서기 위해 더욱 강력한 성능으로 무장한 도전자들이 속속 등장했다. M5는 곧 새롭게 등장할 5세대 M5에 자리를 내주기 위해 얼마 전 단종됐다.
메르세데스-벤츠에는 거의 전 모델에 걸쳐 고성능 버전인 AMG 모델들이 자리하고 있는데, M5와 경쟁하는 모델로는 E63 AMG가 있다. V8 6.2리터 525마력 엔진을 얹고, 정지에서 시속 100㎞까지 가속하는데 4.5초가 걸린다. E63 AMG의 경우 강력한 성능을 품고 있긴 하지만, 속도 경쟁이나 기록 달성을 지향하기보다는 강력한 럭셔리 세단을 지향하고 있어, 고성능과 안락함을 동시에 구현하고 있다.
아우디는 A6를 기본으로 한두 가지의 고성능 모델을 포진시키고 있다. 고성능 모델 S6와 그보다 더 강력한 RS6가 그들이다. 세단뿐 아니라 왜건 모델까지 선보이고 있는 RS6는 직분사 방식의 V10 5리터 엔진에 트윈터보를 더해 무려 580마력의 파워를 뿜어내며, 아우디의 자랑인 4륜구동 시스템 콰트로로 무장했다. 0-100㎞/h 가속은 4.5초가 걸린다. 현 세대 RS6는 국내에 들어오지는 않았으며, 올해를 끝으로 단종될 예정이다.
스포츠카와 럭셔리카의 이미지를 함께 갖고 있는 재규어에는 XFR이 있다. 직분사 방식의 V8 5리터 엔진에 수퍼차저를 더해 최고출력이 510마력에 이르고 0-100㎞/h 가속에는 4.9초가 걸린다. 앞서 소개한 모델들에 비해 가속력이 조금 뒤지긴 하지만, XFR은 지난 해 1월 재규어 사상 최고 속도인 시속 363.188㎞의 기록을 달성했다. 이는 재규어의 전설적인 스포츠카 XJ220을 능가하는 속도일 뿐 아니라, 최고의 스포츠카인 엔초 페라리의 시속 350㎞나 람보르기니 무르시엘라고 LP640의 시속 340㎞보다 더 빠른 실력이다.
이처럼 처음 등장 당시엔 그저 고성능 세단 정도였던 이들이 이제는 정통 슈퍼카의 자리까지 넘보기에 이르렀다.
박기돈 기자 nodikar@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