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무한혁신의 핵심은 기술의 창조성에 있다. 과거에는 창조성이 기술을 설계하는 설계자들의 독점물이었다. 설계자들이 한 제품, 한 제품에 자신들의 정성과 영감을 담아 완성품을 만들어 내면 그 기술의 완성도에 따라 제품의 성패가 결정되곤 했다. 디지털 기술이 이노베이션의 핵심으로 등장한 오늘날에는 더 이상 한 제품의 완성도만으로는 지속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기 힘들다. 물론 아주 탁월한 완성도를 가진 제품을 디자인함으로써 잠시 시장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유할 수는 있다.
그러나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디지털 기술의 속성상, 그와 같은 완성도 중심의 이노베이션 전략으로는 지속적인 경쟁력을 유지할 수가 없다.
제품이 아닌 플랫폼으로 경쟁력이 결정되는 디지털 혁신의 시대에서 완성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제품의 창조성이다. 창조성은 한 제품이 본래 설계자의 의도와 관계없는 새로운 방향의 파생상품이나 서비스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내재능력을 말한다. 따라서 창조성을 지닌 제품은 플랫폼으로 탁월한 기능을 발휘해서 많은 외부 개발자들이 각종 기발한 신제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한다.
창조성을 가진 대표적인 기술로는 인터넷을 들 수 있다. 40년전 당시 옛 소련과의 핵전쟁이 일어날 경우에 대비해 분산형 통신네트워크로 만들어진 인터넷은 오늘날 수많은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 내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와 같은 창조성 플랫폼으로 발전했다. 이것은 단순한 역사 속의 우연이 아니라, 인터넷 디자인의 핵심에 창조성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기술적으로 인터넷상에서 하드웨어·네트워크·소프트웨어, 그리고 콘텐츠의 분리를 보장해 주는 각종 표준이 이와 같은 창조성의 핵심이다. 또 다른 창조성 디자인의 핵심은 인터넷이 가지고 있는 분산구조다. 인터넷은 기본적으로 중앙통제가 불가능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따라서 하드웨어·네트워크·소프트웨어·콘텐츠의 분리를 가능케 하는 기술 표준과 중앙통제에 의존하지 않는 분산구조가 인터넷의 창조성을 가능케 하는 핵심 디자인 요소다. 요즘 인기가 있는 아이폰·트위터·구글 등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와 같은 창조성 중심의 디자인을 추구하고 있다.
따라서 지속적인 디지털 혁신을 추진하고, 이것을 경쟁우위의 핵심역량으로 삼기 위해서는 창조성을 가진 기술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이해와 접근이 필요하다. 애플 아이폰의 성공은 스티브 잡스 개인의 창조성이 이룬 것이 절대로 아니다. 창조성과 완성도를 적절하게 가지고 태어난 아이폰 운용체계 디자인이 아이폰 성공의 핵심이다. 제품의 디자인과 창조성이 중요시되던 과거에는 개인 디자이너의 창조성이 중요했다. 그러나, 오늘날 디지털 혁신시대에는 단순히 개인의 창조성만을 강조해서는 안 된다. 한국에서 스티브 잡스와 같은 디지털 시대의 인재를 만들기 위해서 인문학과 기술의 융합을 추구하는 특수 교육프로그램을 만든다고 한다. 그러나, 그와 같은 인재들이 완성도가 높은 제품만을 추구한다면, 우리 기업들은 결코 디지털 시대에서 지속적인 경쟁력을 차지할 수 없을 것이다. 디지털 시대에 창조성을 가진 기술을 디자인하는 그런 디자이너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유영진 템플대 경영대 교수 yxy23yo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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