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자동차 시장을 공략하는 기업들은 제품의 품질뿐 아니라 모델명에도 심혈을 기울인다. 판매 지역 소비자에게 친근하고 호감이 가는 이름이 시장을 파고드는데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기아자동차는 최근 국내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중형 세단 K5의 유럽 지역 수출명을 놓고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미국 시장 수출 이름은 이미 ’옵티마’로 결정됐지만 내년 4월께로 예정된 유럽 수출에는 ’옵티마’와 ’마젠티스’를 놓고 고민 중이다. 현재까지는 옵티마로 통일하는 방안이 유력하지만, K5의 전 모델인 로체를 유럽에서는 마젠티스로 불러왔기 때문에 통일성이냐 인지도냐를 놓고 저울질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자동차 업계에서 차 이름에 기존 브랜드의 가치를 계승하려는 시도는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현대차의 베르나가 전 모델명인 엑센트를, 아반떼XD가 엘란트라를, K5가 미국에서 옵티마를 차명으로 유지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내수용 차명이 해외에서는 나쁜 의미이거나 현지인들의 선호도를 고려해 새 이름을 찾은 경우도 많다. 무엇보다 부정적인 의미를 떠올리는 단어는 피해야 한다. 카니발은 인육을 먹는 풍습을 뜻하는 영어단어 ’카니발리즘(Cannibalism)’과 발음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인해 미국 애리조나의 고급 휴양도시인 ’세도나’로 개명했다. 지금은 단종됐지만 현대차 ’투스카니’도 남미에서는 현지의 욕설과 비슷한 발음이어서 ’쿠페’라는 이름을 사용했었다.
미국 시장에서 그랜저는 미국인들이 발음하기 편한 ’아제라’라는 수출명을 사용했다. 모닝은 유럽시장에서 영어 대신 불어 ’피칸’(야무지고 즐겁다)과 라틴어 ’칸토’(노래)를 결합한 ’피칸토’로 재탄생했다. 모델명에 차의 크기를 나타내는 숫자를 쓰는 유럽시장의 관행을 따르는 것도 이 지역 소비자를 의식한 결정이다. 투싼ix는 유럽에서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를 뜻하는 ’35’를 붙인 ’ix35’로 팔리고 있다. 외래어를 한자로 바꿔쓰는 것에 익숙한 중국인들은 영문 브랜드보다는 중문 브랜드를 훨씬 편하게 받아들이고, 긴 이름보다는 2∼4자의 짧은 이름을 선호한다.
현대.기아차는 중국에 진출하면서 국산차 모델명을 4자 이내의 중국어로 대폭 교체했다. 쏘나타는 링샹(領翔), 아반떼는 위에둥(說動), 카니발은 지아화(嘉華)가 됐다. 링샹(쏘나타)은 ’과학과 기술을 선도하고 자유롭게 비상하는 진취적인 인생’, 위에둥(아반떼)는 ’진취적이고 즐거운 인생’, 지아화(카니발)은 ’아름답고 화려함’을 뜻한다. 현대.기아차 관계자는 “자동차 업계의 큰 시장으로 떠오른 중국에서는 작명(作名)이 사업의 성패를 가를 정도로 중요하다”면서 “전 세계 시장에서 현지인들이 좋아할 수출명을 짓기 위해 늘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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