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 효과’란 브라질에 있는 나비의 날갯짓이 미국 텍사스에 토네이도를 발생시킬 수도 있다는 과학이론이다. 날씨 현상에만 국한되지 않고 작은 변화가 결과적으로 엄청난 변화를 초래할 수 있는 경우를 의미하는 데 자주 인용되는 표현이다.
미국에서 유럽까지 도미노 현상처럼 계속되고 있는 글로벌 금융 위기가 좀처럼 사그라질 것 같지 않다. 이는 자연스레 실물경제 악화로 이어지면서 기업들은 저마다 위기 극복을 위한 활로 찾기에 바쁘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 누구보다 ‘나비 효과’를 기대하는 이들이 바로 기업이 아닐까 싶다.
미국 제조업체에서 근무하던 존 스테그너는 회사의 구매 프로세스, 특히 비품 및 자재 조달에 낭비가 심하다는 점을 발견하고 공장에서 구입하는 다양한 종류의 장갑 비용을 조사했다. 그 결과 회사의 여러 공장에서 무려 424가지에 이르는 다양한 장갑을 구입하고 있으며, 공장마다 각기 다른 협력사와 가격 협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존의 회사는 표준화한 구매 프로세스를 갖추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장갑처럼 단순한 물품을 구매하는 데 엄청난 비용을 지출해 왔던 것이다. 그는 향후 5년 동안 10억달러가 넘는 비용 절감을 가능하게 하는 구매 혁신안을 제안했고 회사는 이를 받아들여 구매 프로세스에 변화를 주었다. 그 결과 상당히 많은 비용을 절감해 회사가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424켤레 장갑의 위력’으로 잘 알려진 위 사례에서처럼 구매 혁신은 비용 절감을 통해 경쟁력 향상을 꾀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업의 고민을 직접적으로 해결해 줄 효과적인 ‘나비의 날갯짓’이 될 수 있다. 환율 급등으로 원자재 가격이 올라 힘겨워하는 기업에는 직접적인 원가절감 효과를 제공하고, 소비 침체로 판매 부진에 시달리는 기업에는 수익과 직결되는 구매 부문의 비용 절감을 통해 위기 대응과 극복의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구매 혁신을 위해 최우선적으로 진행해야 하는 부분은 구매 및 연관 부서의 혁신이다. 구매 관련 부서를 단순히 1차적인 지원 부서로만 여겨 왔던 예전과 달리 기업에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제공할 전략 부서라고 보는 인식의 변화는 반드시 필요하다. 아울러 전문 인력을 충분히 배치하는 것도 꼭 필요하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조금 생소하게 들렸던 최고구매담당자(CPO)의 기업 내 위상이 날로 높아지고, 구매 전문가 영입에 성공했던 기업이 실제로 그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는 것을 보면 부서 혁신의 중요성은 이미 증명된 것이나 다름없다.
구매 최적화에서 무엇보다 효과적인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는 솔루션의 도입도 구매 혁신을 실현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기존의 구매 업무는 오프라인 관리를 통한 임시방편적 대응이 대부분이었다. 반면에 구매 최적화 솔루션을 도입하면 업무 효율성 향상뿐 아니라 그에 따른 눈에 보이지 않던 비용 절감까지 가능하게 하기 때문에 국내 기업의 솔루션 도입 결정이 부쩍 늘어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실제 대우조선해양은 리치인터넷애플리케이션(RIA) 기반의 최적화 솔루션을 도입해 세계 최초로 웹 기반의 통합 협업 시스템을 구축, 사용자 편의성 및 업무 생산성 향상이라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최대 2일이 소요되던 사급재 진행 현황과 7일 이상이 소요되던 설계 변경 인지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개선했다. 또 케이블 적기 보급률이 40.3%에서 98.6%로 향상되었으며, 230만미터에 이르던 재고량도 90만미터로 대폭 절감할 수 있게 됐다.
이밖에 구매 전문 인력 양성을 위한 기업 차원의 교육도 중요하다. 전문 인력 확보를 통한 개선도 중요하지만 구매 프로세스 효율화 및 투명성 제고, 원활한 재고 관리가 효과적으로 구현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구매부서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에 적극 투자해야 한다. 교육 인프라가 체계적으로 구축돼 있는 선진국에 비해 우리나라는 양질의 교육 과정을 찾기 어렵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러나 최근 업계를 중심으로 구매 혁신 사례 관련 세미나가 활성화하고, 구매 혁신 분야를 전문적으로 접할 수 있는 이러닝 사업이 기업을 중심으로 성황을 이루면서 보다 다양한 교육 기회가 생길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구매 혁신은 비용 절감을 실현하고 그를 기반으로 기업 경쟁력을 향상시켜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 받기에 충분하다. 기업이 원하는 변화의 바람, 그 ‘나비 효과’의 시작은 바로 구매 혁신이다.
송재민 엠로 대표 jsong@emro.co.kr
-
성현희 기자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