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1년 5월 28일, 스위스 출신 화학자이자 항공공학자인 오귀스트 피카르(Auguste Piccard)는 밀폐된 기구를 이용해 1만5781m의 높이까지 도달했다. 인류 최초의 성층권 방문이었다.
오귀스트 피카르는 1884년 장 피카르와 함께 일란성 쌍둥이로 태어났다. 스위스 바젤대학교 화학과 교수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쌍둥이는 어릴 때부터 과학과 모험에 푹 빠졌다.
1922년 브뤼셀대학 물리학과 교수가 된 오귀스트 피카르는 당시로선 미지의 세계였던 성층권에 가보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1931년, 마침내 낮은 기압과 공기량에서도 버틸 수 있도록 밀폐된 공간이 달린 기구 FNRS 1호를 제작한 그는 조수 콜 키퍼와 함께 그 기구를 타고 고도 1만5000m를 넘겼다. 이듬해 두번째 비행에서는 1만6940m의 신기록을 세웠다. 총 27번의 비행을 감행해 최고 2만3000m 상공까지 올라간 그는 ‘가장 높이 올라간 인간’이 됐다.
‘가장 높이 올라간 인간’의 시선은 그 후 아래를 향했다. 피카르는 성층권까지 오른 기구에서 힌트를 얻어 심해 잠수정 설계에 돌입했다. 공기보다 가벼운 헬륨이나 수소를 채우는 기구와 유사한 원리로 물보다 가벼운 가솔린을 채웠다.
1953년, 69세의 피카르는 아들 자크 피카르와 함께 자신이 설계한 잠수정 ‘트리에스테’를 타고 당시 누구도 가보지 못했던 4049m까지 잠수하는데 성공하며 다시금 세계를 놀라게 했다. 하지만 이듬해 다른 도전자가 그의 기록을 깨며 도전장을 내밀었다. 피가 끓은 피카르는 세계에서 가장 깊은 바다에 잠수할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1960년 1월이었다. 76세의 피카르가 설계한 트리에스테 2호에는 연로한 그 대신 아들 자크와 미 해군의 도널드 월시 대위가 탔다. 괌 섬 주변 마리아나 해구 챌린저 해연에서 1만916m를 잠수했다. 아직도 깨지지 않는 심해 잠수기록이다. 트리에스테 2호는 자체 동력으로 이동하는 현대식이 아니라 모선에 예인돼 단순한 부력 조절로 움직이는 잠수정이었지만 심해의 엄청난 수압을 이겨낼 수 있는 최첨단이었다.
바닥을 보고 돌아온 자크는 “납작하게 생긴 물고기와 이전에 본 적 없는 새우가 있었다”고 설계자인 아버지에게 전했다. ‘가장 높이올라가고 가장 깊이 내려갔던 인간’ 피카르는 1962년 숨졌다. 향년 78세였다.
그의 가족과 자손 역시 모험가 기질을 가지고 있었다. 결혼으로 피카르 가문의 일원이 된 지넷은 1934년 여성 최초로 기구비행 자격증을 따내고 1만7550m 상공까지 올라 성층권에 이른 첫 번째 여성이 됐다. 피카르의 손자인 베르트랑 피카르는 1999년 3월 기구를 이용한 무착륙 세계일주 비행에 성공했으며 2004년부터 태양동력 글라이더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조카 도널드 피카르는 최초로 열기구를 이용해 영국 해협을 넘은 비행자다.
황태호기자 thhw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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