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부, 그 시작과 끝] <2> `총성 없는 전쟁` 부처 업무 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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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12월 30일 김영삼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정부조직개편 이 후 처음으로 확대경제장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1994년 12월 6일.

 달랑 한 장 남은 달력 속으로 아쉽고 그리운 사연들이 하나 둘 몸을 숨기는 연말이다. 김영삼(YS) 대통령은 이날 오후 청와대에서 한국에 온 빌 게이츠 미국 마이크로소트트사 회장을 접견했다. 정보통신부 확대 개편을 비롯한 조각 수준의 대폭 정부조직개편안을 발표한 후여서 김 대통령의 표정은 홀가분하고 밝았다.

 김 대통령은 접견실에서 환한 웃음을 띠며 빌 게이츠 회장과 반갑게 악수를 했다.

 “반갑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두 사람은 한국의 세계화 정책과 정보통신산업의 미래에 관해 의견을 나누었다.

 김 대통령은 “청와대도 세계적인 컴퓨터 통신망인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다”며 “최근 체신부를 정보통신부로 개편키로 했다”고 말했다. 이어 “세계가 급변하는 상황에서 조금만 경쟁에 뒤지면 영원히 낙오할 수 밖에 없다고 판단해 컴퓨터와 정보통신, 그리고 변화와 개혁에 정부는 적극 나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빌 게이츠 회장은 김 대통령의 말에 공감을 표시했다. 그는 “한국이 정보통신 산업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시의적절하고 세계적이 추세에 부합하는 것”이라며 “신속한 정보의 배분과 협력과 경쟁의 세계질서 속에서 한국이 엄청난 변화를 주도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날 빌게이츠 회장의 청와대 예방에 이상희 국가과학기술자문위원회 위원장(전 국회의원·과기처장관 역임·현 국립과천과학관장)과 이용태 한국정보산업연합회 회장(전 삼보켬퓨터 회장·퇴계학연구원 이사장·숙명학원 이사장) 이찬진 한글과컴퓨터 대표(드림위드 대표), 유승삼 한국마이크로소프트 사장 등이 배석했다.

 김 대통령의 이날 발언과 정보산업에 대한 관심 표명은 정보통신부로 확대 개편하는 체신부에게 큰 힘이 됐다. 예나 지금이나 대통령의 말 한마디가 해당 부처의 사기를 높이기도 하고, 떨어뜨리기도 하는 법이다.

 김 대통령은 퇴임후 2001년 펴낸 ‘김영삼 대통령 회고록’에서 정보통신부 개편에 관해 다음과 같이 의미를 부여했다. “체신부의 정보통신부로의 확대 개편은 세계회 구상을 살천하기 위한 매우 중요한 기초 작업이었다. 한국 경제의 새로운 활로는 세계적 조류인 정보화 혁명에 얼마나 부응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었다. 나는 초고속 정보통신망 구축을 국책사업으로 서두르려 했고, 이를 위해 구식 미디어에 급급해 온 체신부가 정보화사회로의 진입을 위한 선도 부처로 탈바꿈하는 것이 시급했다.”

 전격 단행한 정부 조직개편안에 대해 국민은 세계화에 맞춰 행정의 틀을 재정비했다며 환영을 나타냈다. 미디어리서치와 조선일보가 5일 실시한 여론조사결과 75%가 정부조직개편을 ‘잘한 것’으로 평가했다. 조직개편 시기에 대해서도 74.3%가 ‘적절했다’고 답했다. 김 대통령으로서는 흡족한 개편안이었다.

 체신부는 정보통신부로 확대 개편하면서 정보화 선도 부처답게 변화의 폭이 가장 컸다.

 정보통신부는 정보통신정책과 우편사업, 전파방송관리, 체신금용, 정보통신 지원 및 협력에 관한 업무 등을 관장하는 것을 업무로 규정했다.

 정부조직개편으로 상공자원부에서 정보통신기기와 방송기기 관련산업, 멀티미디어, 컴퓨터 및 주변기기 산업에 관한 육성기능을, 과학기술처로부터 시스템과 정보통신기술개발업무와 컴프터프로그램 기술개발업무, 공보처에서 유선방송과 관련한 업무와 종합유선 방송 허가 업무를 이관받기로 했다.

 정보통신부 조직에도 변화가 있었다. 정보통신협력관과 전파관리국을 정보통신협력국과 전파방송관리국으로 각각 확대 개편하고 정보통신진흥국은 정보통신지원국으로 개칭했다. 이에 따라 과(課)도 늘어났다. 부처 간 주도권 다툼과 관련해 “전쟁을 해서 빼앗아 오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이 다른 부처의 업무 이관”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다른 부처의 업무를 가지 오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청와대에서 박관용 비서실장 주재로 해당 부처 장관들이 회의를 열어 원칙에 합의하고 세부사항은 각 부처 실,국장 회의에 넘겨 하나 씩 이관 업무를 정리해 나갔다. 정부가 큰 틀의 조직개편안을 확정했지만 시행령과 업무분장을 놓고 부처 간 치열한 줄다리가 벌어졌다. 부처마다 무슨 핑계나 논리를 만들어 기존 업무와 인력을 다른 부처로 넘겨 주지 않으려 무진 애를 썼다. 자고 나면 업무 이관이 뒤집히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박관용 청와대 비서실장의 회고.

 “부처 간 영역다툼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부처 간 쟁점이 발생하면 그것을 조정할 곳은 청와대 밖에 없어요. 장관들이 서로 다투는데 누가 그것을 조정하겠어요. 긍극적으로 대통령을 대신해 비서실장이 나서서 조정해야 뒷말이 없습니다. 쟁점 사항에 대해 해당 수석들의 의견을 들어 그런 식으로 처리했습니다.”

 업무 이관과 관련해 청와대로 뛰어다녔던 당시 경상현 차관의 말.

 “시행령을 놓고 마지막 순간까지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습니다. 업무와 관련해 윤동윤 장관 지시로 밤중에 박관용 비서실장을 찾아가서 체신부 입장을 설명했던 일도 있었지요. 박관용 실장이나 한이헌 경제수석도 국가정보화는 정통부에서 담당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세상일이 다 그렇듯이 정보통신부가 넘겨 받기로 한 업무가 막판 대통령 재가 과정에서 빠지는 의외의 사태도 발생했다. 공보처에서 넘겨 받기로 한 지상파 방송업무가 그랬다. 이 부분에 대한 윤동윤 전 장관의 회고. “공보처가 처음에는 지상파 방송까지 정보통신부로 넘겨 주기로 했어요. 그런데 대통령 최종 재가과정에서 그게 쑥 빠졌어요. 깜짝 놀랐지요.”

 윤 장관이 황급히 그 내막을 알아보니 당시 오인환 공보처 장관이 이원종 정무수석을 움직였고 이 수석이 김 대통령에게 건의해 막판에 뒤집혀졌던 것이다.

 김 대통령이 이미 재가한 뒤여서 체신부로서도 손쓸 방안이 없었다.

 오 장관은 김 대통령이 대선 후보시절 정무특보였다. 한국일보 편집국장과 주필을 거친 언론인 출신이다. 그는 문민정부 최장수 장관이자 헌정사상 대통령과 임기를 함께한 최초의 장관이란 기록을 남겼다. 김 대통령과 임기를 같이 한 유일한 장관이다. 그는 이 정무수석과 각별한 사이였다. 이 수석은 YS 공보비서를 거쳐 오 공보처 장관 아래서 차관으로 일했다. 정권을 탄생시킨 참모들이니 김 대통령과의 관계도 돈독했던 게 사실이었다. 이 수석은 직전 공보처 차관으로 일한 인연을 내세워 친정 쪽 편을 들었다. 이로 인해 막판 대통령 재가과정에 개입해 일을 뒤집었던 것이다.

 역사에 가정법을 말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하지만 1994년 12월 업무 이관시 지상파 방송 업무가 정보통신부로 넘어 왔다면 방송과 통신을 놓고 훗날 부처 간 주도권 다툼을 벌이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방송과 통신 간 영역 갈등도 내부에서 무난하게 해결했을 것이다. 우리가 외국에 비해 앞섰던 IPTV 상용화도 지금보다 크게 앞당겨졌을 것이다. 2012년부터 시행할 디지털 방송은 이미 시작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다소 비약을 하자면 부처 간 이기주의가 통신과 방송의 융합을 더디게 하는 걸림돌이 됐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것이 바로 역사의 아이러니일지도 모른다. 윤동윤 전 장관은 “지금 생각해도 아쉽고 안타까운 일”이라고 회고했다.

 다른 부처의 이관업무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체신부 박성득 정보통신정책실장의 당시 상황에 대한 기억.

 “상공부와 과기처 등에서 넘겨 받은 업무는 그동안 체신부가 해온 일들이었습니다. 반도체나 컴퓨터 개발 등은 업무는 다른 부처 소관이었지만 실제 일은 체신부에서 하고 있었습니다. 정부조직개편은 그동안 남의 일을 하던 것을 정보통신부로 합법화한 것이라고 볼 수 있지요.”

 당시 다른 부처에서 정보통신부로 넘어온 공무원은 소프트웨어산업 주무과인 과학기술처 정보산업기술과 이재홍 과장(현 전남체신청장)과 직원들이 유일했다. 그의 회고. “1995년 1월 저를 포함해 모두 12명이 정보통신부로 넘어 왔습니다. 당시 과기처에서 SW업무와 관련한 서류 박스만 70개가 넘었어요. 주민등록번호도 과기처에서 만들었습니다. 이관서류를 분류하다 보니 주민등록번호기안 문서도 있었습니다. 체신부에서 대형 차량 2대를 보냈더군요.”

 이 과장은 정보통신진흥과장으로 발령을 받아 소프트웨어산업 업무를 계속 맡았다.

 “당시 정보통신진흥국장은 이성해 국장이었고 정보통신정책실장은 정홍식 실장이었습니다. 부처 간 화합차원에서 인력을 분산배치를 한다고 하길래 정 실장에게 강력히 건의를 했지요. 소프트웨어산업업무를 정착시키기 위해 1년간 만 기존 인력을 같이 근무해 달라고 말씀드렸더니 정 실장이 이를 받아 주셨습니다.”

 그는 1년 반 동안 과장으로 근무한 후 IBM왓슨 연구소로 2년간 파견을 나갔다. 이어 초고속정보망과장, 주파수과장, 우정사업본부 지식정보센터장을 거쳐 지난해 10월부터 전남체신청장으로 근무한다.

 과기처로부터 프로그램심의조정위원회(전 컴퓨터프로그램보호위원회·현 한국저작권위원회)도 넘겨 받았다. 과기처는 이 위원회를 넘겨 주지 않으려 막판까지 버티었다. 하지만 소프트웨어산업 업무를 정보통신부가 담당하면서 컴퓨터 프로그램 저작권과 심의, 분쟁을 조정하는 위원회는 당연히 이관받아야 당위론에 과기처는 두손을 들고 말았다. 민간조직이지만 퇴직 고위직이 위원장으로 가는 자리였기에 부처 간 다툼이 치열했다.

 이런 가운데 정부 조직개편에 대해 공무원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고 조직도 동요하기 시작했다. 공직사회가 통폐합을 통해 일종의 구조조정을 해야 하니 조직 동요가 없을 수 없었다. 일부 행정업무가 마비되다시피 했다. 김 대통령은 이런 사태를 우려해 3일 고위당정회의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에 조직개편의 취지를 공직자들에게 설명을 잘 하라고 각별히 당부한 바 있다.

 정부는 12월 6일 원진식 총무처 차관주재로 조직개편에 포함된 18개 부처 기획관리실장회의를 열고 각 부처 직제령 개정방안에 대한 지침을 시달했다. 내부 혼란을 수습하는 것이 시급했다. 정부는 7일 직무 단속에 나서는 한편 전 부처에 복무 지침을 다시 내려 보냈다. 직원들과 대화를 통해 조직개편의 불가피성을 설명하고 미결 업무와 물품 등 업무 인계인수를 철저히 하며 민원인이 행정 불편을 겪지 않도록 하라는 내용이었다.

 이영덕 국무총리도 경제기획원과 재무부, 건설부와 교통부 등 통합부처를 20여분씩 차례로 방문해 진무작업을 벌였다.

 황영하 전 장관의 회고.

 “힘센 경제부처의 반발이 대단했습니다. 경제부처 차관보로 있던 L씨가 제 방으로 찾아 왔더군요. 조직을 이렇게 만들면 ‘일을 못한다’고 해요. 그래서 내가 ‘그런 일은 민간에게 넘겨 주고 공무원은 다른 일하라고 부처를 통합한 것’이라고 말해 주었지요. 그 후 그는 승승장구해 장관과 도지사를 거쳐서 부총리까지 지냈어요.”

 야당인 민주당은 먼산 보듯 정부조직개편안 처리에 대해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 일분 일초가 급한 정부나 여당과 달리 느긋한 행보였다.

 민주당은 12월 8일 “심도있는 논의를 위해 이번 정기국회내 통과는 불가능하다. 내년 1월 임시국회를 열어 처리하자”고 오히려 한발 뒤로 빼는 모습을 보였다. 속이 탄 것은 정부와 여당이었다. 청와대와 정부는 하루라도 빨리 처리해 달라고 당에 거듭 요구했다.

 정기국회가 폐회하자 민자당은 12월 19일 5일간의 임시국회를 다시 열었다. 황영하 총무처 장관이 개정안 통과를 위해 여야를 가리지 않고 국회로 밤낮없이 뛰어다녔다. 야간 국회에도 참석해 조직개편안의 당위성을 설명하고 협조를 요청했다.

 황 전 장관의 말.

 “국회에 불러가 꽤 시달렸습니다. 경제부처만 조직개편을 하고 비경제부처는 왜 손을 안대느냐고 따지는 바람에 애를 먹었습니다. 특히 야당인 민주당 채영석 의원(작고)이 깐깐하게 내용을 따지고 개편의 문제점을 지적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도 14대 국회에서 행정경제위원회 소속이었습니다.”

 국회에 정보통신부 입장을 설명하러 뛰어 다녔던 경 차관의 회고.

 “야당인 민주당도 체신부를 정보통신부로 확대개편하는데는 별 이견이 없었습니다. 적극성을 보이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반대도 하지 않았습니다.”

 국회 일각에서 개편작업을 소수가 극비리에 추진해 광범위한 의견 수렴이 부족하지 않겠느냐는 지적이 나왔다.

 국회 행정경제위원회는 이런 지적에 따라 12월 20일 국회에서 조직법공청회를 열어 각계의 의견을 수렴했다. 당시 위원장이 민주당 김덕규 의원이다. 그는 5선으로 17대 후반기 국회부의장을 지냈다. 여야가 재협상을 벌었으나 쉽게 타결점을 찾지 못했다.

 협상이 제자리 걸음을 하자 보다 못한 황낙주 국회의장이 팔을 걷어 붙이고 직접 나섰다. 그는 21일과 22일 이틀 연속 의장실에서 여야 총무회담을 열고 합의를 종용했다. “국회가 뭐하는 겁니까. 나라가 잘 되도록 국회가 뒷받침을 해야 할 것 아닙니까.”

 이한동 민자당 총무와 신기하 민주당 총무는 임시국회 마지막인 23일 오전 10시 본회의를 열어 정부조직법개정안을 표결처리 하기로 합의했다. 23일 오전 10시. 본회의장. 홍낙주 국회의장을 본회의 개회를 선언한 후 정부가 제출한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대한 찬반토론을 했다. 그리고 곧장 표결에 들어갔다. 개정안은 재석의원 259명 중 찬성 171표, 반대 79표, 기권 9표로 통과됐다. 국회는 서둘러 정부조직개편안을 정부로 보냈다.

 김 대통령은 이날 오후 청와대에서 이홍구 국무총리와 황영하 총무처 장관, 이한동 민자당 원내총무 이세기 정책위의장. 청와대 박관용 비서실장. 이의근 행정 수석 등 10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국회를 통과한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한글로 ‘김영삼’이라고 서명했다.

 정부가 조직개편안을 발표한지 20일 만이었다. 정보통신부는 이날부터 ‘IT강국’을 향한 날개짓을 시작했다.

 hd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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