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연간 10만톤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A기업과 B기업이 있다. 온실가스 1000톤을 감축하는데 A기업은 100만원, B기업은 300만원의 비용 투자를 해야한다. 현재 시장에서 거래되는 온실가스 배출권 가격은 1000톤에 200만원. 두 기업이 똑같이 9만5000톤의 배출 상한치를 부여받았을 때 가장 경제적인 온실가스 감축 방법은.
<정답> A기업이 비용투자를 통해 목표 감축량(5000톤)보다 더 많은 온실가스를 감축, 이를 시장에 판매하고 B기업은 비용투자가 아닌 거래시장에 나와있는 배출권을 구입하는 것이 가장 경제적이다.
◇온실가스 감축. 시장의 힘으로=배출권 거래제 실시를 위한 입법 준비가 한창이다. 정부는 2020년 배출전망치(BAU) 대비 온실가스 30% 감축이라는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과 더불어 배출권 거래제 도입으로 탄소 경제의 법적 기반을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법안 제정을 담당하는 녹색성장위원회는 올해 안으로 배출권 거래제도 법을 입법하겠다는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고 법안 제정에 주력하고 있다.
배출권 거래제는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기업이나 사업장에 탄소 배출량을 정해주고 남거나 부족한 배출권을 거래하는 제도로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 인정받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직접적으로 에너지효율향상과 온실가스 저감 장치 증설에 투자를 할 수도 있지만 막대한 비용이 투입될 수 있기 때문에 시장에 나와있는 배출권을 구입하는 것이 더욱 경제적일 수가 있다.
<문제>의 경우, B기업이 직접 투자를 통해 온실가스 감축 목표인 5000톤을 절감하려면 1500만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배출권을 구입해 목표를 달성하는 데는 1000만원이 소요된다. 배출권을 거래함으로써 500만원의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기업은 배출권 시세와 직접투자 비용을 비교해 가장 경제적인 온실가스 절감 방법을 택할 수 있다. 온실가스에 가격이 부여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거래가 가능해지고 거래를 위해서는 온실가스 발생을 줄여야 하는 사업장이 필요하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배출권 거래제를 활용할 경우 교토의정서의 감축목표를 달성하는데 29억∼37억유로가 필요하지만 직접적인 감축에 의존하면 68억 유로가 필요하다는 연구 결과를 밝힌 바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도 배출권 거래제를 통하면 직접규제에 비해 저감 비용을 60% 정도 줄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배출권 거래제는 또한 경제성 있는 온실가스 감축 기술을 개발하게 하는 동기를 부여하고 있다. 적은 비용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을 절감할 수 있는 기술은 곧 배출권을 판매할 때 높은 이윤을 남길 수 있기 때문에 기업들이 기술개발에 적극적으로 뛰어 들 수밖에 없다.
◇초기 디자인이 제도 성패 좌우=배출권 거래제 도입을 위해서는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총량제한거래 방식으로 배출권 거래제가 시행된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배출량의 할당이다. 총배출량의 설정에서부터 기업이나 사업장 등 세부적인 할당 작업이 진행돼야 한다.
올해부터 에너지·온실가스목표관리제가 시행되면서 제도의 대상이 되는 주요 기업과 사업장의 온실가스 배출량과 에너지사용량 등 다양한 정보가 구축되겠지만 배출권이 바로 돈과 같다는 점에서 할당작업에 많은 갈등과 어려움이 따른다는 것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배출 총량을 정하는 것과 관련해 배출권을 할당하는 방식도 고민해야 한다. 배출 총량을 설정하고 배출권 할당 방식을 심사 숙고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보다 먼저 제도를 시행한 유럽의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배출권을 할당하는 방식에는 기업이 배출권을 경매로 구입해야 하는 유상경매 방식과 정부가 무상으로 분배하는 방식이 있다.
유럽은 배출권 거래제도(EU-ETS) 1기에서 무상 분배 방식을 택했는데 이로 인해 엄청난 부작용을 겪었다. 바로 무상으로 배출권을 할당받은 기업들이 가만히 앉아서 돈을 벌게 된 ‘횡재이윤’ 현상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영국의 한 분석기관에 따르면 유럽의 배출권 거래제(EU-ETS) 1기에서 실제로 많은 기업들이 실제 배출하는 것보다 많은 배출량을 할당받았고 이를 통해 유럽의 10대 기업들이 2008년 초과할당분으로 6억8000만달러의 이익을 얻었다. 과다 할당의 주요 원인은 배출 총량을 산정한 자료의 신뢰성이 낮았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더 위험한 것은 과도한 배출권의 할당은 배출권 가격 하락을 불러 일으켜 배출권의 거래 자체를 무의미하게 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유럽은 EU-ETS 3단계부터 필요한 배출권을 국가로부터 구입해야 하는 유상 경매 방식을 주된 할당방식으로 지정했다.
유상 경매 방식이 여러 가지 부작용을 억제한다는 점에서 무상 경매 방식에 비해 우월한 방식으로 인정받고 있긴 하지만 유상 경매를 하게 되면 국외로 공장을 이전하는 이탈효과가 발생하는 부작용 따르기도 한다.
따라서 산업의 특성과 경쟁력 등을 고려한 세밀한 총량 설정과 업종에 맞는 할당방식 선택에 충분한 합의와 연구가 필요하다.
이와 함께 기업 입장에서는 지금까지 온실가스 절감을 위한 행한 투자, 즉 조기행동에 대한 보상 문제도 예민한 사안이다. 배출권 거래제 도입 이전에 행했던 노력과 투자에 대한 보상을 놓고 국가마다 다른 방식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 또한 어떤 방식을 택할지 고민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더욱이 호주와 영국은 조기감축 대상 및 인정범위를 정하고 그것을 검증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현실적인 어려움 등을 이유로 조기행동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조기행동을 검증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그만큼 막대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최호기자 snoop@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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