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칼럼]김형오 국회의장의 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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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똑같은 말이라도 쓰이는 곳에 따라 뜻이 달라진다. ‘검토’라는 용어가 그렇다. 일반인에겐 ‘정말 고려해보겠다’는 의미가 관료에겐 ‘그냥 참고만 하겠다’도 쓰인다. 관료가 정말 고려할 때엔 ‘검토’란 말 앞에 ‘적극’이란 말이 붙는다. 관료들은 이처럼 용어 선택에 신중하다. 행정이 국민의 권리와 의무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더 큰 이유는 돌아올 책임에 대한 걱정이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관료도 다를 바 없다. 아무리 법률조문을 꼼꼼히 살피고, 이해 당사자의 말을 충분히 듣고 정책을 결정해도 엉뚱한 실수를 할 수 있다.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게 문제이지 공익을 위해 적극적인 행정을 펼칠 때 나온 실수라면 용인해야 한다. 그래야 관료들이 소신대로 정책을 편다. 현실은 그렇지 않으니 민감한 정책의 입안과 결정을 늦추거나 회피한다. 잘못이 드러나면 시인하기보다 덮고 가려 한다. 종종 호미로 막을 일이 가래로도 막을 수 없는 일로 커지는 이유다. 군도 천안함에 대해 잦은 말 바꾸기로 불신을 증폭시키지 않았는가. 이 점에서 감사원이 적극적으로 일하는 공무원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도입한 ‘적극행정면책제도’를 최근 확대키로 한 것은 바람직한 조치다.

김형오 국회의장이 지난 13일 기자들과 만나 부처별로 흩어진 정보통신과 콘텐츠 등 미래산업 정책을 총괄할 부처를 만들자고 제언했다. 그는 현 정권 출범 전 인수위원회 부위원장이었다.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한 셈이다. 물론 정부 조직 개편이 그의 작품이 아니다. 실무에 개입하지 않았다. 그럴지라도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공과 평가에서 그는 자유롭지 않다. 당시 정보통신인들은 정통부 해체를 주도한 이보다 김 의장에 더 섭섭함을 느꼈다.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위원장까지 지낸, 국회 내 내로라하는 IT 전문가가 등을 돌린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실제론 아니었다. 정통부가 아닐지라도 미래산업 부처가 있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다만, 작은 정부와 IT융합을 지향하는 대통령의 국정 철학에 그의 생각을 녹여넣을 공간이 없었다. “정부조직개편에 있어 공과 사를 분명히 구별하겠다”라는 당시 발언에서 그의 안타까움을 읽을 수 있다.

김 의장이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면서까지 기자간담회를 연 이유는 뭘까. 아이폰 충격이 결정적이었다. 세계가 부러워하는 우리나라 IT가 아이폰 하나에 휘청거리는 것을 보며 더 이상 공론화를 늦출 수 없다는 절박함이 그를 간담회장으로 내몰았다. 직접 손을 대지 않았더라도 정부조직 개편의 후유증에 대한 책임감도 작용했다. ‘결자해지’의 심정이라고 할까. 사실 김 의장의 표현대로 현 정권 임기 내 조직 개편은 개헌보다 더 어렵다. 청와대에 일부 인식 변화가 감지되나 대통령의 뜻은 아직 아니다. 현재로선 다음 정권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높다. 새 통합 부처가 제 구실을 할지도 미지수다. 확실한 것은 김 의장을 통해 희망의 빛을 봤다는 점이다. 과오를 인정하는 참 용기다. 이런 용기가 각 부처에 확산된다면 IT통합 부처는 안 나와도 좋다.

신화수 취재담당 부국장 hsshi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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