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저작권 기부로 고품격 문화콘텐츠 키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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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정부는 재산이 많은 사람에게는 상속세를 받으면서, 좋은 머리를 갖고 태어난 사람에게는 상속세를 받지 않는지 모르겠다.” 노벨 경제상을 받은 밀턴 프리드먼이 한 말이다. 요즘 들어 의미심장한 말로 여겨진다. 아주 예전부터 하드웨어적인 재산에 대해서는 국가가 사유재산권을 정의하고 또 보호해 주었다. 그러나 우리 머릿속에 들어 있는 소프트웨어적인 재산에 대하여 국가가 사유재산권을 정의하고 보호해 주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KIST에서 소프트웨어개발실장을 맡고 있던 시절의 일이다. 우리나라에 원격탐사 기술을 도입하기 위해 이 분야 미·일 최고 학자를 초빙한 적이 있다. 미국 학자는 오기 전에 한국에 체류하면서 자기가 할 일이나 교통비, 체재비, 수당 등에 대해 아주 자세히 묻고 이것이 해결된 후에야 방한했다. 우리나라에 체류하면서도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5시면 ‘칼 퇴근’을 했다.

 일본 학자는 우리가 초청하자 흔쾌히 방한에 동의하였다. 자신이 받을 보수나 처우에 대해서는 묻지도 않았다. 일을 마친 후 회식 자리에서 미국 학자 얘기를 하면서 왜 자신의 ‘처우’에 대해서는 궁금해 하지 않는지 물었다.

 그러자 그는 “나는 다행히 다른 사람보다 좋은 머리를 타고 나서 도쿄대학 교수도 하고 있다. 그래서 자신은 자기 머릿속에 있는 지식을 다른 사람에게 무료로 나눠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미국엔 구텐베르크라는 사이트(www.gutenberg.org/wiki/Main_Page)가 있다. 여기에는 3만건 이상의 전자책을 무료로 내려받을 수 있다. 기본적으로 미국 내에서 저작권이 만료된 책을 중심으로 자원봉사자의 도움으로 입력을 하고 번역을 해서 이 사이트에 올린 것이다.

 우리에게도 참으로 좋은 고전이 많다. 이들 고전 가운데는 저작권 소멸시효가 완성된 것도 많을 것이다. 우선 이들 저작권부터라도 입력을 해서 국민들에게 무료로 제공했으면 한다. 입력은 자원봉사자를 모집해서 하고, 국민들에게 기부금을 모아서 경비의 일부를 충당할 수도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저작권 시효가 남아있는 좋은 저작물에 대해서는 저작권자로부터 적극적으로 저작권 기부를 받아서 이들 저작물을 입력해 국민에게 보급하면 좋을 것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도 기부문화가 정착되고 있음을 본다. 많은 분들이 평생 모은 재산을 교육기관에 기부하기도 한다. 지금까지는 대부분의 기부재산이 ‘하드웨어적’인 재산이다. 이제는 ‘소프트웨어적’인 재산 기부에도 눈을 돌려야 한다. 소프트웨어적인 재산도 저작권자로부터 기부받아서 지식정보화 사회가 필요로 하는 품격 높은 콘텐츠의 원천 소스로 삼아야 한다는 의미다.

 얼마 전, 어느 대학교수가 자신의 연구업적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기사가 실린 것을 본 적이 있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많은 분들이 이 저작권 기부운동에 참여할 가능성으로 보여진다. 그것이 우리나라 지식인이 가졌던 고유문화기 때문이다.

 전자신문이나 한국정보처리학회 같은 학회에서 봉사차원에서 이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를 만든 나라답게, 우리나라에도 미국의 구텐베르크 사이트 보다 나은 품격 높은 무료 e북 사이트가 등장하기를 바란다. 그것이 품격 높은 문화 콘텐츠를 키우는 첩경이다.

 안문석 저작권상생협의체 의장, 고려대 명예교수 ahnms@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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