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게차가 장정 대여섯은 들어갈 만한 포대를 내려놓자 부서진 가전제품이 쏟아져 나왔다. 선풍기나 전화기에서부터 스피커·체중계·시계·청소기·프린터·라디오까지 없는 게 없었다. 곧바로 마스크를 쓴 예닐곱 명의 사람들이 달려들어 뒤섞인 폐가전을 종류별로 분류해 각기 다른 포대에 나눠담았다. 30종이 넘는 폐가전은 일일이 ‘바를 정(正)’자로 장부에 기록됐다. 무게가 아니라 갯수를 기준으로 고물 가격이 매겨지기 때문이다.
◇하루에 폐가전 10톤 처리=2일 서울 성동구 송정동에 위치한 서울자원센터에서는 버려진 가전제품에서 광물을 뽑아내는 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건물 밖에서 분류된 폐가전은 ‘도시광산’인 센터 건물 안으로 옮겨졌다.
이번에는 ‘도시광부’들이 선반 위에 놓인 가전제품을 에어 드라이버와 망치 등을 이용해 완전 분해하기 시작했다. 공장 안이 온통 윙윙, 쿵쾅쿵쾅 거리는 소리로 가득 찼다. 첨단 집진기가 설치된 공장 안은 먼지 하나 없이 쾌적했다.
한 사람이 하루에 분해할 수 있는 분량은 70여대 정도. 그러나 어떤 제품이냐에 따라 이는 달라진다.
이형출 SR센터 기획실장은 “프린터는 뜯기가 어려워 하루에 보통 50대 정도밖에 해체하지 못한다”면서 “가격도 더 비싸고 해체하기도 쉬운 전자렌지·밥솥·다리미 등이 인기 품목”이라고 말했다.
순식간에 해체된 가전제품은 고철·비철·구리·플라스틱·기판 등으로 분류돼 각각 다른 장소에 모아졌다. 공장 한켠에서는 커다란 집게손이 모아진 부품들을 어디론가 옮기고 있었다. 이 부품들은 LS니꼬동 제련·고려아연 등 금속 추출 기술을 가진 전문 업체에 보내져 금이나 은·희소금속 등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60여명의 직원이 이렇게 해서 하루 해체할 수 있는 물량은 10톤 정도. SR센터는 이를 하루 15톤 정도로 늘릴 계획이다.
◇자발적 협조 절실=SR센터는 서울시가 한국전자산업환경협회·SK가스 등과 5억원을 투자해 지상 1층, 810㎡ 규모로 지난해 11월 완공했다. 지자체로서는 국내에서 처음이다.
2005년부터 이와 유사한 도시광산 시범사업을 진행한 결과 저소득층 일자리 창출 효과가 큰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도시광산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진 것도 한 몫 했다. 그러나 이 같은 관심이 센터 운영에 반드시 도움이 되는 것만은 아니다. 모든 가전제품에 ‘금이 들어있다’는 잘못된 생각을 심어줄 수 있어서다. 이 때문에 서울시에서 한 달간 배출되는 1200톤의 폐가전 가운데 300톤 정도만이 센터로 수거되고 있다. 나머지는 모두 고철상으로 넘겨져 중국으로 수출되거나 폐기처분 된다. 자원유출은 물론 환경오염까지 우려된다는 게 센터 측 설명이다.
이 실장은 “중국에서는 몇 가지 금속만 추출하고 소각해버리기 때문에 이 연기가 황사로 고스란히 우리에게 날아온다”면서 “폐가전 수거를 늘리기 위한 시민들의 자발적 협조가 절실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용주기자 kyj@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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