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나리오 작가 양제혁씨는 30장 분량의 이야기로 제1회 대한민국 스토리 공모대전에서 대상을 차지했다. 그는 수상 소식을 듣고 자기 귀를 의심했다. 스토리일반(영화) 부문에 출품했던 장면을 위주로 줄거리를 완성시킨 자신의 작품이 영화 시나리오나 14부작 이상의 미니시리즈로 완결지어진 다른 작품들을 제치고 대상으로 선정된 게 스스로도 의외였기 때문이다.
양씨는 “한국영화아카데미를 나오고 몇 편의 작품들로 공모전에서 당선된 적은 있지만 스토리 일반이 다른 부문보다 무게감이 떨어져 내심 가작 정도를 생각하고 있었다”며 “전화를 받고 대상이란 사실과 1억5000만원이란 상금에 솔직히 놀랐다”고 털어놨다.
대상작 ‘철수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를 쓰게 된 것은 생활 속에서 무심코 던진 작은 농담에 때문이었다. 재작년 경기도 양평에 있는 영화 촬영장에 갔다가 동시녹음을 맡고 있는 스텝들과 대화를 나눴다. 그는 “군사훈련 지역이라 전투기가 너무 많이 지나가면서 동시 녹음이 어려운 상황에서 전쟁이 났는데 우리만 모르고 영화를 찍고 있는 게 아니냐는 말을 사람들에게 하고 집에 돌아와 펜을 잡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날 경험은 6.25 전쟁 발발 3일전 정찰병으로 남파됐다가 낙오된 인민군인 주인공 철수를 탄생시켰고 전쟁 영화를 찍는 촬영팀들과 철수와 오해하고 서로 얽히게 된 이야기로 발전했다. 본선심사위원들은 기발한 상황 설정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따뜻한 인간애라는 주제에 따라 전쟁이란 무거운 상황을 보편적인 이야기 가볍게 풀어낸 구성력을 높이사 이 작품을 대상으로 선정했다고 총평을 통해 밝혔다.
그는 “시상식 행사장에서 몇몇 심사의원들과 대화를 나눠보니 참신한 소재에 희극적 요소를 가미한 것이 심사의원들의 구미에 잘 맞았던 거 같았다”고 자평했다.
상금의 사용처에 대해서는 소박한 꿈을 이루는 데 쓰겠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에서 아카데미 다니면서 10년 정도 월세를 전전하면서 방세를 못내는 바람에 주인집이 힘들어하는 환경에서 지내왔다“며 “얼마전 자리잡은 경기도 의왕이 맘에 들어 주변에 전세집을 알아볼 계획으로 이 기회에 살림살이가 좀 나아질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영화 감독이 되기 위한 준비중에 있으며 이번 공모전 당선작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시나리오 완성 지원하고 작품 제작 및 배급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지원하기 때문에 당분간 이 작품의 완성에 정성을 쏟을 계획이다.
양제혁씨는 “정부 차원의 공모전 확대는 작가 지망생이나 기성작가들이 다양한 콘텐츠를 생산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큰 공모전이 아니더라도 작은 지원이라도 꾸준히 제공해 준다면 다양한 콘텐츠를 생산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좋은 창작 환경이라는 것 역시 금전적인 부분이 매우 중요하다”며 “현재 국내에선 20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되는 영화 한편의 근간인 시나리오가 1억원 정도의 가치로 평가 받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이동인기자 di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