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서히 돈을 굴려야 할 텐데∼.’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직후 적지 않은 손해를 보고, 대거 안정 자산으로 갈아탔던 김 과장(38). 다시는 투기성 상품에 가입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던 그가 최근 주변에서 새로운 금융상품에 가입해 재미를 봤다는 얘기에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만 돈을 못 굴려 손해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조바심이 들기 시작한 것. 그는 다시 새로운 금융상품 가입을 결심하고 ‘이번에는 단순히 컨설턴트 조언이 아닌 내가 직접 보고 결정하겠다’고 다짐했다.
연초부터 금융권의 고객잡기 경쟁이 뜨겁다. 금융위기와 함께 대거 안정자산으로 쏠렸던 자금이 다시 고수익 추구 상품으로 돌아서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권을 둘러싼 환경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올해 굴직한 정책과 제도의 변화가 잇따르고 있다. 이는 금융사에는 위기이자 동시에 기회로 다가온다.
이를 반영, 올해 주요 금융사 대표들의 신년사에는 비장한 결의가 묻어 있다. 강정원 국민은행장은 올해 경영전략 방향을 ‘변화와 혁신을 통한 리딩뱅크 위상 강화’로 제시했다. 윤용로 기업은행장은 “지난해 어둠 속을 거침없이 걸어갔다면, 이제는 ‘기회의 강’을 건너야 할 차례”라며 “개인 및 기업금융의 적절한 조화를 통한 성장과 고객 만족을 넘어선 고객 행복을 이뤄내자”고 강조했다.
증권사 대표들도 수익 추구 의지를 강하게 밝혔다. 임기영 대우증권 사장은 “올해는 수익성 향상을 위한 리테일부문 체질 개선과 상품 경쟁력 강화, 해외사업 수익성 증대, 산은금융그룹과의 시너지 제고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으며, 유준열 동양종금증권 사장은 “올해는 새로운 발전과 도약을 위해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혁신을 통해 경쟁자들보다 한발 앞서 나가야 하며, 수익창출 능력을 더 키워나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같은 금융권 대표들의 비장한 결의는 그대로 상품 경쟁으로 나타난다. 최근 새로운 주택담보대출 금리체계인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 기준금리가 공개되자 은행들이 기존 대출보다 싼 금리로 코픽스 연동 주택담보대출 상품을 잇달아 선보였다. 코픽스는 현 CD 금리에 연동한 주택담보대출 금리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도입된 새 기준금리다.
IBK기업은행과 SC제일은행이 18일 코픽스를 적용한 ‘IBK 코픽스 주택담보대출’과 ‘뉴퍼스트홈론’을 출시했다. 16일 코픽스가 발표된 이틀만이다. 이들에 이어 외환은행, 농협, 국민은행과 우리은행, 하나은행, 한국씨티은행 등 시중은행들이 출시했거나, 늦어도 내달 초까지 코픽스 연동 주택담보대출 상품을 내놓는다.
증권업계도 ‘펀드판매사 이동제’ 도입과 함께, 고객자산을 유치하기 자산관리 경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고객의 재무상태, 출산·은퇴 등 라이프사이클, 투자성향에 따라 맞춤형으로 투자포트폴리오를 제시하면서 고정 고객으로 확보하겠다는 전략을 내놓고 있다. 투자상품에서도 펀드 판매에 주력했던 관행에서 벗어나 직접투자와 펀드, 부동산, 예금, 보험 등 자산시장 전반을 아우르는 전략을 내세우고 있다.
이들은 특히 강남권 공략에 적극 나서고 있다. 강남의 큰 손이 대거 몰려 있는 만큼 이 시장을 어떻게 공략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린다는 판단이다.
대우증권은 작년 말 삼성동, 지난달 역삼동에 자산관리센터(WM 클래스)를 신설했다. 삼성증권도 지난달 초 소형점포인 브랜치 11개를 모두 지점으로 승격시켰으며 이 가운데는 도곡렉슬, 공항터미널, 올림픽 등 강남지역 브랜치 6개가 포함됐다. 대신증권도 광고모델인 가수 이문세씨를 거액 자산고객이 많은 서초구 강남지점 명예지점장으로 위촉하고 강남권 공략에 나선다.
카드사들은 올해를 다른 업종과 결합하는 컨버전스 시대가 본격 도래하는 해로 보고 이를 통해 이동할 고개들을 잡기 위한 경쟁에 적극 나서고 있다. 올해는 특히 통신과의 융합이 기대된다. 통신사들이 막대한 자본과 고객정보를 보유하고 있는데다가 카드가 통신서비스와 결합하면 상당한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말 지분제휴를 한 SK텔레콤과 하나카드는 상반기 중 모바일 신용카드를 선보일 것으로 보이며, KT도 신한카드의 비씨카드 지분 인수를 통해 본격적인 금융사업 진출을 예고하고 있다. 다른 카드사들도 통신, 유통, 은행 등의 업종과 결합한 컨버전스 상품을 준비하고 있다.
최도석 삼성카드 부회장은 “시장이 포화되고 경쟁이 더욱 치열할수록 5년, 10년 뒤를 위한 새로운 시장, 새로운 성장 동력 발굴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라며 “다른 업종과도 한 차원 높은 결속은 물론 새롭게 부상하는 금융·통신·유통 등의 융복합화 시장에서도 위상을 더욱 확고히 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융사간 경쟁은 고객들에게는 기회다. 이들의 경쟁이 심화할수록 대출 이자는 낮아지고 금리는 높아지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는 융복합을 포함 다양한 새로운 상품이 출시되고 있어 고객은 어떤 상품에 가입해야 할지 ‘행복한 고민’을 하게 만든다.
김준배기자 joo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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