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가 점진적으로 회복될 것이라는 기대가 팽배하다. 유통업계도 마찬가지다. 경기 침체기 동안 얼어붙은 소비 심리 때문에 유통업계는 대폭적인 할인판매와 각종 프로모션을 단행했고 이는 수익성 악화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유통업체들은 경기 침체 이전과 같은 활황을 기대하지만 많은 연구조사기관들은 유통업체들이 2010년 전환기에 서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유통업계의 전환기를 이끌고 있는 것은 △전통적 유통업체의 인터넷 매출 비중 확대 △소셜 미디어 등 직접적인 고객 접점 확산 △모바일 쇼핑의 혁명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변화의 동인으로 ‘권력 이동’을 보고 있다. 제조업체로부터 유통업체로, 다시 유통업체에서 소비자에게로 쇼핑 경험을 통제하는 권력이 이동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가트너, 딜로이트 투시 토마츠, AMR리서치, IBM 등 해외 유명 리서치회사와 IT서비스 회사의 2010년 유통업계 전망을 종합 정리했다.
경기 침체기 동안 소비가 위축되면서 유통업계 역시 힘든 나날을 보냈다. 최근 발표된 딜로이트리서치의 ‘2010 유통업계 글로벌 파워(2010 Global Powers of Retailing)’ 보고서에 따르면, 2009년 6월까지 조사된 전 세계 250대 유통업체들의 수익성은 2007년 3.7%에서 2008년 2.4%로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통판매총액이 3.8조달러로 전년 대비 5.5% 상승한 것과 대조되는 현상이다.
판매액은 늘고 수익성이 떨어진 것은 많은 글로벌 유통업체들이 판매를 위해 막대한 프로모션을 수행하며 최소한의 마진만 담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서히 유통 경기도 되살아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딜로이트리서치의 아이라 칼리시 이사는 “글로벌 유통업계는 험난한 시기를 지나왔지만 이미 경기 회복의 징후가 나타나고 있으며 유통업체들도 수익성 개선의 길로 들어서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올해 유통업계의 시장 호조를 전망하는 것은 딜로이트리서치 뿐만은 아니다. 무디스이코노미닷컴 역시 유통업계의 경기 회복을 점치고 있다. 지난주 뉴욕에서 개최된 전미유통연합회(National Retail Federation) 연례 콘퍼런스에서 무디스이코노미닷컴은 홀리데이시즌을 기준으로 2010년 유통업체의 판매액이 3∼4%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해의 경우 전년 대비 1.7% 상승했다. 무디스이코노미닷컴의 최고 경제학자인 마크 잰디는 “소비자들의 지갑이 열리고 있어 판매증가에 대비해 유통업체들의 인력 충원도 잇따를 것”으로 전망했다.
유통업계가 다시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를 받지만 올해 유통업계가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만만치 않다. 그 과제는 아이러니하게도 e커머스다. 그리고 소셜 미디어, m커머스가 연속선상에 서 있다.
◇일반 유통업체의 온라인 매출은 단 6.6%=e커머스가 등장한 지 10년은 족히 넘었고 소매유통 시장에서 인터넷 쇼핑이 차지하는 비중은 전 세계적으로 매해 급증하고 있다. 그런데도 딜로이트리서치, 가트너, IBM까지 2010년 유통업체의 과제로 e커머스를 강조하고 있다.
이는 전통적 유통업체, 즉 태생이 온라인 쇼핑몰이 아닌 일반 유통업체들에게 인터넷 쇼핑은 여전히 메인 채널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장분석 기관들은 경기 회복이 시작되는 2010년, 유통업체들이 인터넷의 비중을 높이고 소셜 네트워킹 사이트를 이용하며, 모바일 쇼핑 시스템을 갖추지 않으면 위기를 맞을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많은 유통기업들이 다채널 전략의 일환으로 e커머스 기능을 개발하고 있으며 다채널 유통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일반 유통업체에게 인터넷의 비중은 낮다. 딜로이트 리서치의 조사에 의하면, 세계 100대 유통업체들의 총 판매액에서 온라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평균 6.6%에 불과하다. 이런 현상은 일용소비재(FMCG) 유통업체에서 더욱 두드러져 FMCG 업체들은 e커머스를 구현했다고 하기 어렵다. FMCG 유통업체들의 판매에서 온라인 비중은 1%도 안 된다. 딜로이트리서치에 따르면 단 0.9%다.
딜로이트리서치의 칼리시 이사는 “인터넷이 향후 10년 동안 유통업체에 가장 큰 위협이자 기회가 될 것”이라고 전제하며 “유통업체들은 웹에 능숙한 소비자들을 사로잡을 수 있도록 다채널 전략을 강화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IBM도 지난주 초 뉴욕에서 개최된 NRF 연례 행사에서 6개국 3만2000여 소비자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보고서를 발표했는데, IBM 보고서에 따르면 기술을 사용한(tech-savvy) 쇼핑은 더 이상 일부 젊은층의 전유물이 아니다. 모든 시장에서 모든 연령대의 소비자 그룹이, 식료품부터 생활용품, 특수복에 이르는 전 유통 부문에서 기술을 사용해 현명한 쇼핑을 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IBM 글로벌 유통 산업 리더인 질 풀러리는 전했다.
e커머스의 재부상은 흥미로운 현상을 유발한다. 유통업체가 제조업체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유통업체에서 진행하는 프로모션 혹은 매장 위치, 또는 고객 서비스는 제조업체의 판매를 좌우한다. 온라인에서건 오프라인에서건 브랜드 소유자인 제조업체로부터 소비자를 접하는 유통업체로 권력이 이동해 왔다. 하지만 이 권력의 궁극적인 목적지는 소비자다.
e커머스는 소비자들이 약간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 브랜드와 가격을 기준으로 여러 선택을 비교해보고 고를 수 있도록 한다. 여러 가지 경쟁 상품들을 보다 쉽게 선택하고 쇼핑할 수 있는 환경에서 소비자들은 구매 파워를 갖게 됐다.
AMR리서치의 로라 세시어는 1월 초 발표한 ‘2010 유통 및 생활소비재 전망’ 보고서에서 “닷컴 붐이 타오르다 꺼진 재로부터 다시 e커머스가 피어오르고 있다”며 “e커머스는 궁극적으로 소비자들에게 권력을 주고 있다”고 설명한다.
◇웹 2.0 기술로 고객 접점 확산=권력이 소비자에게로 이동하면서 유통업체는 다채널 전략을 고수하면서도 유통 모델과 철학을 변화시켜야 할 때가 됐다. 소비자들이 요구하는 기대치에 부응하기 위해서 유통업계는 더욱 개인화된 프로모션과 상품을 제공해야 한다.
가트너는 현재와 같은 채널 중심, 제품 중심의 유통 모델로는 소비자들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소비자들은 유통업체와의 양방향 교류를 중시 여기고 유통업체가 개인화된 맞춤 쇼핑 채널을 제공하길 바라며 개인의 특정 요구 사항을 수용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유통의 소비화(consumerization)’는 웹 2.0 기술 개발로 더욱 촉진되고 있다. 소셜 네트워킹, 포드캐스트, 비디오 캐스트 그리고 RSS, 블로그와 위키, 폭소노미(folksonomies. 대중분류법)와 콘텐츠 순위 등은 소비자가 쇼핑 경험을 맞춤화하고 통제할 수 있도록 해준다.
온라인 쇼핑과 소셜 네트워킹은 유통 구조에 따른 판매수익을 소비자들에게 투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덕분에 소비자들은 유통업체와 제품, 가격 전반에 걸쳐 더욱 밀접한 정보 액세스를 얻게 되며, 가장 낮은 가격에 판매하는 업체를 찾아 더욱 낮은 가격으로 제품을 판매하도록 유도해 유통업체의 수익을 떨어뜨릴 수 있다. 하지만 인터넷 쇼핑과 소셜 미디어에는 엄청난 기회도 분명히 존재한다. 유통업체들이 고객과 직접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새로운 고객 접점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딜로이트리서치는 유통업체들이 소셜 미디어를 포함한 온라인 타깃 마케팅 캠페인을 실시해 e커머스의 비중을 늘릴 때라고 지적하고 있다. 우선 유통업체들은 웹사이트나 소셜 네트워킹 사이트에서 온라인만의 특별한 판매, 할인 프로모션을 하루빨리 실행할 필요가 있다.
IBM에 따르면 경기 상황과 기술 발전이 맞물리면서 소비자들은 제품 구매에 인터넷, 휴대폰, 그 외 기술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미국, 캐나다, 영국 등 성숙한 시장보다 신흥 지역에서 더 강한 경향을 보였다. 제품 구매를 위해 두 가지 이상의 기술을 사용한다고 답변한 인도나 중국, 브라질 등의 응답자들이 훨씬 많았다는 것이다. 소비자들이 제품 구매에 사용하는 기술로는 휴대폰과 인터넷이 가장 많았고 매장 내 키오스크, 양방향 TV쇼핑 등은 그 뒤를 이었다.
IBM이 조사한 3만2000여 사용자들 중 79%가 쿠폰을 얻기 위해 웹사이트에 접속하길 원하며, 75%가 휴대폰으로 가장 가까이 있는 매장 위치를 검색하길 바란다고 답했다. 또 66%가 상점을 방문하기 전에 원하는 제품의 재고가 있는지 미리 확인할 수 있기를 원했다.
특히 78% 사용자들이 제품 디자인과 선택, 매장 배치에 대한 피드백을 제공함으로써 유통업체와 협업할 의향이 갖고 있었다. 유통업체들은 소셜 네트워킹 툴을 제공하거나 소셜 네트워킹 사이트를 모니터링해서 신제품의 시장 성공률을 높일 수 있다. 한 예로, 의류 및 가방 제조유통업체인 LL 빈(LL Bean)은 자사의 웹사이트를 통해 소비자의 피드백을 모으고, 새로운 제품라인을 만들기 전에 제품 디자이너가 소비자들의 제안을 분석하도록 하고 있다.
e메일 설문조사, 블로그나 페이스북, 트위터와 같인 소셜 네트워킹 사이트의 소비자 코멘트 등 다양한 소비자 의견 중에서 인텔리전스를 뽑아내기 위해 유통업체들과 제조업체들은 고객의견 분석 기능을 확대하고 있다. 유통업에 특화된 BI 애플리케이션들은 문서, 설문조사 혹은 웹 기반 코멘트들을 신속하게 조사해 특정 브랜드, 제품 혹은 서비스와 연관되는 부정적인 단어 혹은 긍정적인 단어에서 고객 성향을 분석해낸다.
◇e커머스를 뛰어넘는 m커머스 혁명=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발전 및 보급 확산으로 기업의 모바일 오피스, 은행 업무의 모바일 뱅킹 등 여러 곳에서 많은 변화들이 급진전하고 있다. 유통과 쇼핑에서도 마찬가지다. e커머스와 만난 스마트폰은 m커머스 논의를 부활시켰다. 수 년 전 m커머스는 휴대폰 소액결제를 뜻했지만, 지금은 휴대폰을 이용한 인터넷 쇼핑 그 자체를 즐길 수 있게 됐으며 결제금액도 소액이 아니다.
지난 세밑 이베이는 홀리데이 시즌에 이베이 모바일 사이트 혹은 자사의 아이폰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150만개 항목에서 제품이 판매됐다고 밝혔다. 게다가 이 기간 동안 모바일 쇼핑을 통해 판매된 제품으로는 7만5000달러짜리(한화 약 8400만원) 1966년식 시보레 코르벳 스포츠카, 1만9000달러(한화 약 2100만원)의 보트, 1만달러(한화 1100만원) 스타인웨이 그랜드 피아노 등이 있다.
이베이는 2009년 자사 모바일 사이트의 판매 금액이 5억달러 이상이라고 밝혔으며, 이베이의 모바일 사이트는 매일 7만5000명의 순방문자가 접속하고 있다. 또 이베이의 아이폰 애플리케이션 다운로드 횟수는 600만건에 이른다. 이베이는 2009년 이베이 모바일 웹사이트와 아이폰 애플리케이션을 이베이 온라인 지불결제 서비스인 페이팔(PayPal)과 통합시켰다.
모바일 쇼핑은 인터넷 쇼핑을 뛰어넘는 편의성과 신속성을 제공한다. 스마트폰을 이용한 쇼핑은 걸어서 상점가를 돌아보는 것보다, 심지어 노트북을 부팅해 인터넷 쇼핑을 하는 것보다 훨씬 쉽고 빠르다. 로리 노링턴 이베이 마켓플레이스 사장은 “모바일은 사람들이 쇼핑하는 방식을 바꾸고 있다”며 “이베이의 제품 판매자와 구매자들은 m커머스를 급속히 수용하고 있어 2010년 홀리데이 시즌에는 m커머스가 정점에 이를 것”으로 기대했다.
가트너는 2012년 경이면 대형 유통업체 40% 이상이 m커머스를 추구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이 중 성공을 거두는 유통기업은 20%에 불과할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단지 구색맞추기의 ‘미투’ 전략이 나머지 20%를 떨어뜨릴 것으로 보고 있다. 유통업체의 m커머스 성패는 기존 유통 채널들 간 교차쇼핑이 가능하도록 모바일 이니셔티브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통합하느냐에 달렸다.
가트너는 지난 몇 년간 e커머스가 일으킨 상거래의 혁명이 m커머스에서 재현될 것으로 보고 있다. 더 나아가 e커머스보다 더 혁신적이고 급진전할 가능성도 높다고 전한다. 하지만 유통업체들이 B2C m커머스 전략을 수립할 때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있다. 고객의 쇼핑 채널간 교차쇼핑 프로세스를 지원하는 것과, m커머스 매출을 확대하는 것을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매출 확대에만 초점을 맞출 경우 소비자의 쇼핑 프로세스 중에 휴대폰을 이용해 구매하고자 하는 것을 제공하지 못할 수 있다. 가트너에 따르면 여러 쇼핑 채널 중 모바일을 주로 이용하는 소비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정보 검색이다. 제품 가격 혹은 가장 가까운 매장 위치 등을 바로 확인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최근까지 m커머스의 성장을 방해하는 기술 요소는 휴대폰이 제공하는 기능 수준, 브로드밴드 인터넷의 한계와 모바일 표준 부족 등 여럿 있었다. 이러한 걸림돌들이 해결되면서 유통업체들이 새롭게 등장하는 m커머스에 대응 준비를 갖출 이유는 충분해졌다.
박현선기자 hspark@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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