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16일 구글은 3분기 매출 7조300억원(59억4000만달러), 영업이익 1조 9400억(16억4000만달러)의 실적을 발표했다. 매출은 전년도 동기 대비 7%, 영업이익은 전년도 동기 대비 27%나 증가했다.
구글 실적이 예상보다 좋게 나오자 언론과 전문가들은 실적 호조로 구글의 주가가 3% 뛴 것 이상의 의미를 부여했다. 검색광고가 수익 90% 이상을 차지하는 구글은 기업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과 인터넷 비즈니스 현황을 측정할 수 있는 바로미터이기 때문이다.
1998년 차고에서 시작된 구글의 초기 비즈니스 모델이 검색엔진 라이선스 판매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실험적인 수준에서 2000년 검색광고를 도입했지만 2002년 뉴욕타임스는 “구글은 아직도 수익원이 없다”며 검색광고의 가능성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구글은 이제 2조2000억원을 들여 유튜브를 인수하고, 모바일 운용체계(OS)인 안드로이드에 삼성·LG와 같은 글로벌 파트너를 참여시킬 정도로 자본력과 힘을 갖춘 공룡으로 성장했다. IT 대항해 시대를 항해하는 가장 강력한 범선인 셈이다.
구글 뿐만이 아니다. 작은 아이디어에서 시작해서 혹은 기존의 사업을 끊임없이 발전시켜 나가며 글로벌이란 대양을 거침없이 헤쳐나가는 기업들이 주목받고 있다.
이들 기업의 경영 방침에선 세 가지 공통된 키워드를 발견할 수 있다. ‘변화’ ‘몰입’ ‘통섭’이 그것이다.
◇변화는 생존이다=구글의 무서운 성장과 가장 대비되는 것은 미국 제조업의 상징인 제너럴모터스(GM)의 몰락이다. GM 몰락의 원인은 고비용 구조의 고착화, 장기적 성장동력의 상실, 구조조정을 회피한 금융권과 미국 정부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있다. 그러나 GM이 현실에 안주해 끊임없는 자기 혁신의 노력을 게을리한 것을 근본적인 원인으로 꼽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글로벌 경쟁시대에 변화는 기업에 있어서 선택이 아닌 필수다. 변화의 흐름이 빠른 IT기업에서는 더욱 그렇다. 조직과 구조를 바꾸는 것은 물론이고 필요에 따라서는 비즈니스 모델을 통째로 바꾸는 모험도 감수해야 한다.
IBM은 변화로 위기를 탈피하고, 새 성장 돌파구를 찾은 대표적인 예다. 한 때 최고의 컴퓨터 기업이던 IBM은 80년대 중반 이후부터 급격히 쇠락하기 시작했다. 비대한 조직과 변화를 거부하는 나태함은 컴팩·HP·델과 같은 후발주자에 자리를 내줬고, 루이스 거스너 CEO가 취임하기 직전인 92년에는 6조원(49억7000만달러)에 가까운 손실을 낼 정도로 경영난에 시달렸다.
제과업체의 CEO 출신인 루이스 거스너는 구조조정과 부문 통합으로 조직의 몸집을 줄이고, 의사결정이 빠른 구조로 조직 자체의 변화를 꾀했다. 나아가 주력 사업을 제품 생산업을 서비스업으로 전환했다. 대규모 인원 감축과 주력사업 변화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노트북 부문을 매각이란 뼈를 깎는 노력 끝에 IBM은 IT서비스 업체로 완전한 변신을 했다. 지난 3분기 IBM의 매출은 236억달러고, 순익은 32억달러를 기록했다.
◇몰입은 창조의 원천=기업의 변화는 경영자의 의지만으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기업 구성원 개개인이 창조와 변화에 대한 확신을 가질 때 기업은 시대 상황에 맞게 변할 수 있고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클레어몬트대 교수는 “위험을 감수하고 새로운 아이디어와 시도를 촉발하는 원천”으로 ‘몰입’을 꼽았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최근 발간한 경영노트 ‘창조의 인큐베이터:몰입’에서 조직 창조성이 발휘되는 출발점을 개인이 조직의 목표하에서 몰입에 빠져드는 순간이라고 설명했다.
몰입이 창조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배려와 압박이란 모순된 항목이 적절히 균형을 이뤄야 한다.
최근 미국 포천지가 2009년 선정한 가장 일하기 좋은 기업으로 꼽힌 넷앱은 임직원을 위한 배려를 무엇보다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 이 회사는 분기별로 경영진과 직원이 경영성과를 공유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토론하는 문화가 정착돼 있다. 탄력근무제 운영을 통한 자유로운 출퇴근 시간과 복지도 최고수준이다. 이 같은 배려는 속에서 넷앱의 3분기 매출은 9억1000만달러를 기록했고, 수익은 9570만달러로 전년 동기 4300만달러 대비 두 배 가량 성장했다.
자유롭고 창조적인 분위기의 디자인 기업 이데오(Ideo)는 마감시간을 철저히 지키도록 요구한다. ‘시간이 많다고 좋은 프로젝트가 완수되는 것은 아니다’는 철학이 바탕이다. 이 같은 압박을 적절히 운영해 이데오는 3개월마다 새로운 디자인을 창조해내고 있다.
구글은 배려와 압박을 적절히 운용해 임직원들이 자신의 일에 몰입해 끊임없이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내도록 독려하고 있다.
직원들에게 세끼 식사를 무료로 제공하고, 회사에 마사지실 지원을 하는 등 임직원을 위한 복지는 최상의 배려다. 그와 동시에 1년에 두 번 동료 5명으로부터 평가와 피드백을 받는 동료평가제를 통해 자신의 성과에 대한 압박을 적절히 운용한다.
◇통섭, 윈윈의 조건=융합과 변화의 시대에 기업은 때론 홀로 살아남기가 힘들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통섭의 미학이다. 흔히 통섭은 학문간 소통과 융합을 통한 새로운 대학문의 창조로 이해된다. 하지만 기업에서 통섭은 기술과 제품에 대한 고정관념을 깬 새로운 개념의 제품으로 시장을 창출하는 실용적인 시도다.
노키아가 선보인 미래형 휴대전화 모프(Morph)는 생물학의 기본원리를 IT에 접목했다. 모프는 상황에 따라 모양과 색깔이 바뀐다. 펼치면 자판으로 사용할 수도 있고, 둘둘 말아 팔찌처럼 찰 수도 있는 이 휴대폰은 카멜레온의 보호색 기능,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거미줄의 원리를 응용해서 완성됐다.
기업에서 통섭은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전혀 놀라운 것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상식과 고정관념의 벽을 허물 때 세상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시장을 열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우리 기업도 이미 통섭에 대한 고민과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삼성그룹이 운영하는 미래기술연구회가 대표적인 예다. 물리학·행정학·경영학·화학·기계공학·애니메이션 등 아무런 연관이 없을 것 같은 이질적인 분야의 학자와 삼성 임원들이 매달 한 차례씩 모여 토론하는 자리다. 자칫하면 틀에 갇혀 자유로운 상상을 제한하는 구조를 벗어나겠다는 시도다.
이수운기자 pero@etnews.co.kr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 구글·IBM 매출 추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