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 이후 일본 기업인들은 한국·중국의 위상을 인정하는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본인의 이런 말들은 속내를 그대로 드러낸 표현이 아닌 게 사실이었다. ‘립서비스’를 통해 경쟁 기업에는 자만심을 키우고, 자신들에게는 경각심을 일깨우는 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달라졌다. 일본 기업인들이 진심으로 한국·중국 기업들의 추격을 염려하고 있다.
한국은 삼성·LG를 앞세워 일본 세트 업체를 이미 완전히 따돌렸으며, 최근에는 일부 부품 시장에서 위협하고 있다. 적층세라믹콘덴서(MLCC) 시장의 강자로 오랫동안 군림해온 무라타는 올 상반기 적자를 기록했다. 후발주자인 삼성전기와 기술 격차가 상당 부분 축소됐고, 가격 경쟁력도 열위에 있기 때문이다. TDK·다이요유덴 등 일본 기업은 오래전에 뒤로 밀렸다. 일등인 무라타조차 삼성전기와 경쟁을 피하기 위해 자동차 등 대용량 MLCC 분야에 집중하고 있다. 이제는 소재만이 ‘최후의 보루’라며 한국 기업을 경계하는 일본 기업이 많아졌다. 후지카와 주니치 도레이 부사장은 “삼성은 제일모직, LG는 LG화학을 통해 소재 산업 육성에 힘을 쏟고 있다”면서 “한국 기업들이 조만간 같은 무대에서 일본 기업과 경쟁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보다 중국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많다. 중국 부품소재 산업은 아직 기술적으로 뒤처지지만 앞으로는 무서운 강자로 부각될 것이란 시각이 적지 않다. 중국은 정부 차원에서 오랫동안 기초과학 기술을 육성해 왔기 때문에 원천 소재 기술에 대한 잠재력이 엄청나다는 설명이다. 히라노 하리 도요타 소재 전문 연구원은 “중국의 소재 산업은 마치 ‘인화 물질’처럼 불을 붙이면 금방 타오를 수 있다”면서 “우주선을 자체 기술로 쏠 수 있을 정도로 기초과학 분야가 탄탄해 원천 기술을 확보하려고 마음만 먹는다면 무서운 경쟁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형수기자 goldlion2@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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