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칼럼] 로벤섬 토끼와 벤처생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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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 근처 로벤섬은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이 18년가량 감옥살이를 한 곳이다. 네덜란드어로 물개라는 뜻의 로베(Robbe)에서 이름이 유래된 이 섬은 500년간 수용소와 병원, 군부대, 유배지로 사용됐다. 이 섬에서 흑인 인권운동가 넬슨 만델라는 26년여의 감옥 생활 중 18년을 갇혀 살았다. 길이 4.5㎞, 너비 1.5㎞로 여의도 3분의 1 크기의 작은 섬이다. 수용소가 없어진 뒤 아름다운 관광지로 변했다. 타조와 40∼50㎝ 크기의 아프리카 ‘재커스펭귄’의 서식지다. 유네스코는 1999년 섬 전체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이 섬이 10여 년 전부터 다시 화제가 됐다. 섬에 살던 교도관과 그 가족들이 기르던 고양이와 토끼가 야생화하면서 섬 안의 생태계를 파괴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고양이는 재커스펭귄과 검은머리물떼새, 가마우지 등 멸종 위기의 동물을 잡아먹었다. 토끼와 사슴은 섬 안의 풀을 뜯어먹으면서 희귀 식물 씨를 말렸다. 남아공 정부는 뒤늦게 섬을 한시적으로 폐쇄하고 수만마리에 이르는 토끼와 사슴, 들고양이 사냥에 나섰다.

 인간이 사는 세계에도 이와 유사한 행위가 있다. 절대 강자가 들어와 시장을 장악하고, 향후 자라날 모든 근원까지 막는 이른바 시장 생태계 파괴 현상이다. 정부는 이 같은 행위를 법으로 규제하지만, 특정기업 등이 의도적으로 시장을 파괴하거나 로벤섬의 토끼와 고양이처럼 부주의하게 시장이 노출되는 사례도 허다하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힘으로 제압하는 ‘갑을관계’ ‘왕따’가 그렇다.

 벤처 시장에서는 특정 표준을 정해서 다른 기술의 등장과 진화를 막고, 시장에서 독점적 영역을 구축하는 사례가 그렇다. 통신서비스 시장이, 컴퓨터 운용체계가, 정부출연금을 토대로 막강한 이미지와 마케팅 능력을 쌓아놓은 정부출연연구소가 중소기업연구소와 다투는 일이 그렇다. 막강한 비용으로 대학과 중소기업 특허를 싹쓸이해 무자비한 소송절차를 진행해 자라날 벤처 생태계를 파괴하는 특허 괴물도 대표적인 파괴 행위다.

 더 심한 벤처 생태계 파괴 행위가 있다. 실패한 기업가가 다시 재기하지 못하도록 하는 21세기형 ‘주홍글씨’가 그렇다. 한 번 낙인 찍히면 기업은 회생절차를 밟더라도, 기업가는 매장당한다. 자신의 이름으로 재도전을 하지 못하다 보니 각종 편법이 난무한다. 대한민국에서 벤처기업이 성공적으로 생존할 확률은 1% 남짓하다. 살아남으면 성공신화를 자축하겠지만, 99명은 낙오자가 된다.

 부도가 나면서 자신의 사재를 털어 월급을 주고 파산신청을 했던 한 기업가는 MB정부 들어 정부의 한 단체 기관장으로 임명됐다가, 파산한 기업가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표를 내고 떠났다. 1세대 벤처기업가 중 많은 사람이 첫 번째 도전에서 실패했다는 이유만으로 재기의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21세기 대한민국에 엄연히 존재하는 생태계 파괴 현상이다.

 99명의 기업가는 실패한 기업가가 아니다. 단 한 번 실패했을 뿐이다. 벤처정신이 다시 살아야 대한민국이 성장한다. 제2의 삼보컴퓨터, 팬택, NHN, 옥션, 휴맥스가 나오려면 이들의 성장을 막는 로벤섬의 고양이와 토끼를 잡아야 한다. 대한민국 벤처 생태계가 ‘유네스코’가 지정한 가장 아름다운 문화유산이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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