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우천월(吳牛喘月)이라는 말이 있다. 더위에 지친 오나라의 소가 달만 봐도 태양으로 착각하고 숨을 헐떡인다는 얘기로, 어떤 일에 한번 혼이 나면 비슷한 것만 보아도 미리 겁을 집어먹는다는 의미다. 한마디로 쓸데없이 걱정하는 것을 말한다.
지난주 방송통신위원회는 100회째 전체회의를 가졌다. 이에 앞서, 방통위는 지난해 3월 출범 이후 1기 위원회 전반기 활동 소회를 약식으로 피력하는 자리도 가졌다. 모두 긍정적인 평가가 주류를 이뤘다.
방통위는 출범 이후 통방융합 분야 65건, 방송 297건, 전파·통신 182건 등 모두 544건의 크고 작은 정책을 결정했다. 사안별로도 법령·규칙 재개정(128건), 인허가 등록 승인(197건), 행정 처분(73건), 재정·조정(17건) 등 다양하다.
우려됐던 합의제 위원회 치고는 꽤 많은 안건을 처리한 상황이다. 결과론적으로 오우천월이란 말이 이런 상황을 두고 하는 셈이 됐다.
하지만 1기 방통위의 임기 절반을 마치고 한 상임위원이 토로한 소회가 걸린다. 합의제 방통위의 의사결정 구조 때문에 핵심 업무가 지연됐으며, 특히 통신 관련 업무를 처리하는 데 한계가 노출됐다는 것이다.
합의를 토대로 한 위원회 제도가 규제에는 적합하지만 진흥업무를 추진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의 지적대로 통신진흥업무가 미래발전과 국제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고도의 전문성, 미래사회의 기술발전에 대한 통찰력, 경쟁상황에 부합하는 전략적 추진력과 적시결정이 필요하다.
그런데도 일각에선 합의제 방통위가 비교적 ‘원만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위원들의 성향에 힘입은 바 클 것이다. MB정부 실세로 꼽히는 최시중 위원장의 중량감에 전문성을 갖춘 위원들이 포진한 데 기인한다는 것이다.
이경자 부위원장은 소비자지향성, 이병기 위원은 통신 전문성, 송도균 위원은 방송 전문성, 형태근 위원은 정책 전문성에서 인적 구성의 조화를 이뤘다. 특히 이 부위원장이나 이 위원은 산업에 조예가 깊다. 야당의 추천으로 위원직을 맡고는 있지만 상대적으로 정치적 색채가 옅다. 오죽하면 야당 내에서조차 사퇴 운운했겠는가.
정말 쓸데없는 걱정이었을까. 우려의 근원은 여기서 시작된다. 내년 지자체 단체장 선거가 끝나면 정치권은 당장 대선정국으로 들어선다. 선명성을 기치로 하는 야당의 출범이 가시화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때쯤이면 2기 위원회가 출범할 시점이다. 야당은 선명성을 대변할 위원을 추천할 것이 분명하고 여당 또한 보수성이 더욱 강한 위원을 지명할 가능성이 높다. 합의제 방통위의 산업진흥 역할에 상당한 어려움이 예상된다. 더구나 부처 간 갈등도 재연될 수 있다. 이래저래 2기 방통위가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독임제 요소가 하루빨리 도입돼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무총장제를 도입해 빠른 판단이 필요한 산업적 사안들만이라도 정쟁에 휘둘리지 않고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
복차지계(覆車之戒)라고나 할까. 다행히 여야도 사무총장의 필요성을 인정했다. 법안도 올라가 있다. 아직 차관급이냐, 1급이냐의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공감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지금 아니면 늦다. 정략적인 부분이 끼어들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결정은 빠를수록 좋다.
박승정부장 sjpark@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