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 잃은 DJ 동교동 사저

‘서울 마포구 동교동 178의1’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서거로 주인을 잃은 채 덩그머니 서 있는 동교동 사저는 DJ의 정치적 고난과 영광을 지켜봤고, ’안방정치’의 대표적 장소들 중 하나였던 한국 현대정치사에서는 빼놓수 없는 곳이다.

DJ는 반세기 정치인생 가운데 대부분을 자신과 이희호 여사의 명패가 나란히 내걸린 이곳에서 보냈다. 5.16 쿠데타가 일어난 해인 지난 61년 동교동 자택에 입주한 뒤 미국 망명, 영국 유학 기간을 빼고는 지난 95년까지 줄곧 이곳을 떠나지 않았다.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상도동계와 함께 한국 야당 정치사의 양대 ‘산실’로 불렸던 ‘동교동계’란 말도 여기서 나온 것이다. 수많은 정치인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드나들었고 이곳에서 수많은 ‘역사’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군사독재 시절 55차례나 연금을 당했던 DJ에게 ‘창살없는 감옥’이기도 했다. 집 주변에 항상 정보과 형사가 떠나지 않을 정도로 감시대상 ‘1호’였기 때문.

동교동계 인사들이 자택을 ‘동교교도소’로 불렀을 정도이다. DJ가 도청을 피하기 위해 이 여사와 필담을 나눴던 사연은 유명하다. 5공 시절인 87년 DJ가 78일간 가택연금 상태에 놓였을 때 김옥두 전 의원 등이 자택 지붕에 올라가 ‘불법감금 해제’ 플래카드를 내걸고 ‘고공시위’를 벌인 일화도 두고두고 회자된다. DJ는 95년 12월 동교동 자택을 장남인 김홍일 전 의원에게 넘겨주고 일산으로 이사, ‘동교동 시대’를 마감하는 듯했지만 개축공사를 거쳐 2003년 2월 대통령 임기를 마치고 이 곳으로 다시 돌아와 퇴임 생활을 시작했다. 박지원 의원은 “한나라당의 공세로 화분 몇 개 있는 사저 안 작은 공간이 ‘초호화 정원’으로 둔갑하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2003년 11월 개관해 사저 바로 뒤편에 자리잡은 김대중 도서관은 DJ가 퇴임 후 남북관계 등 한반도 평화와 인권 문제에 대한 구상을 이어간 공간이었다.

앞서 2002년 1월 아태재단측은 동교동 아태재단 건물과 DJ가 소장한 1만6천여종의 장서, 각종 사료를 연세대에 기증했으며 연세대측은 김대중도서관을 설립했다.

올해 상반기부터는 교육 프로그램인 ‘김대중 평화아카데미’ 과정도 신설했다.

DJ는 입원하기 2주전까지도 “한반도 평화는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며 “도서관 일을 열심히 해 보자”며 열성을 보였다고 한다. 도서관의 연구와 교육작업 등은 이제 DJ 사후 계속 이어갈 유훈이 됐다.

한편 DJ측은 19일 장례 공식 홈페이지를 개설, 추모 게시판 등을 운영하고 있으며 도서관 1층에 분향소도 설치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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