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의 격렬한 대치 끝에 방송법, IPTV법, 신문법 등 미디어법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막판 정치적 절충 등 여러 요인으로 본래의 취지도 퇴색되고, 부작용 방지 효과도 없어진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1999년 개정된 통합 방송법의 ‘누더기’ 법 논란이 또다시 되풀이되는 셈이다. 실제 이번 미디어법은 종합편성 채널 지분 한도를 방송법과 IPTV법이 서로 다르게 정해 놓았는가 하면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방송사 지분한도 역시 별다른 이유없이 40%로 정해지는 등 개별법 간의 입법 논리가 서로 맞지 않는 경우가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이도 저도’ 아닌 ‘짜깁기 법’이 제대로 시행되기 위해서는 또 한차례 미디어 관련법 개정 논의가 불거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엇박자’ 종편채널 지분=개정 방송법은 신문과 대기업이 종합편성 및 보도채널 지분을 30% 이내에서 갖도록 한 반면 함께 통과된 IPTV법은 그 기준을 49%로 규정해놓았다. 케이블TV와 IPTV 모두에 뉴스를 제공하는 보도PP의 경우 대기업·신문사가 각각 방송법이나 IPTV법에 따라 30%를 소유할 수도, 49%를 소유할 수도 있는 애매한 경우가 발생하는 셈이다. 방송법이 정치적 타협에 의해 수정에 수정을 거쳤지만 IPTV법은 원안 그대로 직권상정되면서 두 법률 개정안에 대한 정밀한 검토가 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방통위 관계자는 이에 대해 “법령이 정한 내용과 절차대로 적용할 수 밖에 없다”며 “종편 및 보도 채널 사업자가 지분을 49%까지 늘리려면 케이블TV 사업은 포기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상파 지분한도 10%=신문·방송 겸영의 길이 뚫렸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지만, 지상파 지분한도를 10% 허용한 것도 정치적 타협에 의한 무원칙의 사례로 방송사업의 현실을 무시한 것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10% 지분 제한에 따라 최소 3개 이상의 대주주가 컨소시엄을 형성해야 지상파방송에 대해 책임경영을 할 수 있을 정도가 된다. 이마저 2012년말 이후로 경영권 행사가 유예된 상태다. 보수 진영의 한 언론단체는 “방송사업에서 책임경영 주체가 없고 경영 안정성이 보장되지 않아 실패한 사례가 적지않다”며 “군소주주 난립으로 증자에 실패해 재허가를 받지 못한 경인방송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지적했다.
반면 진보 진영에서는 “주요주주로 이사 선출이 가능한 5% 지분만으로도 충분히 경영 개입이 가능하다”며 “보수신문의 방송진출 길을 열어둬 여론 독과점이 심각해질 것”이라고 신문·방송 겸영 허용 자체를 비판하고 있다. 방송법 개정안에서는 특히 경영권 행사 유예 부분을 “2012년까지 지상파방송사의 최다액 출자자, 또는 경영권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자가 될 수 없다”는 표현으로 자의적 해석의 여지를 남겼다. 한 방송전문가는 “안 하느니만 못한 진입규제”라며 “이런 지분율로는 들어가려는 사업자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지상파방송이나 종편채널은 제작비, 운영비 등으로 한해 수천억원이 소요되기 때문에 곧 자본금이 소진될 수밖에 없고 이는 대주주에 대한 증자 요구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 경우 또다시 방송법 개정을 통해 지상파나 종편채널의 지분 한도를 더 높여야 하는 상황으로 전개될 가능성도 있다.
◇1인지분 한도 40%=개인이 보유할 수 있는 방송 지분 한도를 40%까지 설정한 것도 의미가 없다. 물론 외국에서도 정치적 선택에 따라, 당시 시장 상황에 따라 30%, 33%, 49%, 51% 외의 지분제한율이 채택되기도 하지만 이번 방송법상의 40% 수치는 유례가 없다. 당초 대주주 간의 상호견제의 의미를 담고 있는 30%와 49%를 놓고 정치적 절충을 벌인 끝에 40%라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중간 수치가 나온 것으로 방송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심지어 이 조항으로 수혜를 입을 것으로 전해진 방송사마저 “의미없는 수치”라며 “이미 경영권이 충분히 안정돼 있는데 지분을 40%까지 늘릴 필요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한 언론학자는 “이런 수치가 나오려면 이 같은 지분 가치에 대한 자료적 뒷받침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게 없었다”며 “개정 방송법이 얼마나 정치적으로 이뤄졌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한 사례”라고 꼬집었다.
◇의미없는 규제 더 늘려=개정 방송법은 신문 구독률 및 시청점유율 제한, 매체 합산 시청점유율 규제 등 복합 규제를 신설했다. 여론 독과점 방지를 위한 조치라지만 당초 방송시장 규제를 완화해 경쟁을 촉진하고 시장 활성화를 꾀한다는 법률 취지는 고스란히 사라지고 말았다. 협상의 산물로 ‘눈 가리고 아웅’식 규제가 양산된 것이다. 더욱이 이런 신설된 규제들이 국내 매체 현실에서는 실질적인 규제로 작용치 않는다는 점이다. 신문 구독률 20% 이상 신문사의 방송 진입을 제한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구독률 20%를 넘는 신문사는 한 곳도 없다. 최대 신문인 조선일보가 11.9%일 뿐이다.
또 사후규제 방안으로 시청점유율이 30%가 넘는 방송사에 대해 방송사업 소유제한, 방송광고시간 제한, 방송시간 양도 등 제재를 가할 수 있도록 했지만, 이 또한 별다른 의미가 없다. 국내에 시청점유율 30%에 근접한 방송사는 없다. 2008년 전체 지상파 방송의 시청점유율은 69%, 케이블TV가 32.7%이며 지상파 방송의 점유율은 계속 떨어지는 추세다. 시청점유율 30% 제한은 압도적인 경쟁력을 가진 거대 미디어기업이 등장하는 미래에서나 효과를 볼 수 있다.
◇신설규제 기준 불일치=개정 방송법이 채택한 신문 구독률과 시청점유율은 논리적 일관성이 없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신문 구독률은 전체 가구 중 특정신문을 보는 비율이고 시청점유율은 전체 가구가 아닌 특정시간대 TV시청 가구 중 특정프로그램을 보는 비율이다. 신문 구독률과 시청률(TV 보유 가구 중 특정 프로그램 시청 비율)을, 구독신문 점유율(신문 구독가구 중 특정신문을 구독하는 비율)과 시청점유율을 비교해야 서로 아귀가 맞는다. 이렇게 잣대가 일치하지 않은 두 기준을 시청점유율로 환산해 합산토록 했으니 이 과정이 얼마나 어려울지는 눈에 훤하다.
심지어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도 “엄청난 고등수학”이라며 “이를 산출해내면 세계 언론사에도 새로운 장을 만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가중치 적용의 문제 등 때문에 매체 합산 점유율을 계산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보고 있다.
한때 미국에서도 DI(Diversity Index)를 개발, 매체 통합 점유율을 산출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보고 FCC(연방통신위원회)가 이를 폐기하기도 했다. 독일의 사례가 있긴 하지만 이것도 법령이 아닌 법원 판례로 이뤄진 것이어서 매체환경이 상이한 한국이 이를 그대로 채용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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