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법이 통과되면서 미디어의 산업적 측면에 대한 조망이 새롭게 이뤄지고 있다. 미디어는 그 정치적 영향력 이상으로 산업과 경제적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첫 단추가 잘 못 꿰어져 미디어법이 정치색 일색으로 포장돼 버렸지만 통신·방송 기술과 서비스의 융합이라는 세계적인 추세를 감안하면 어떤 형태로든 우리는 미디어산업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시점임에는 분명하다. 이해관계와 논의과정은 차치하고 이번 미디어법에는 방송과 통신, 방송과 신문의 경계를 허물어 세계에서 경쟁력을 갖춘 미디어산업을 키워보자는 의지가 녹아 있다. 미디어법 통과 이후 정치 공방을 넘어 ‘산업’ 측면에서 미디어와 그 산업적 의미를 5회에 걸쳐 조망해 본다.
미디어법 통과로 외국에서만 보던 미디어 간 빅뱅이 현실로 다가섰다. 신문이 방송을 소유하고 방송은 케이블TV를 가질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미디어 빅뱅은 국내 방송산업에도 많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이미 지상파방송사·케이블TV 등 방송사업자들이 ‘포스트 미디어법’ 준비에 본격 돌입했다. 신문과 대기업의 참여가 허용된 데 따른 생존 계산이다. 특히 자본을 막아내야 하는 지상파방송사도 그렇고 케이블TV·IPTV 등 자본과 함께 새로운 시대를 계획하고 있는 유료 매체도 두뇌 회전이 한창이다.
◇플랫폼 간 이해 관계 분주=KBS·MBC·SBS 지상파방송 3사 정책팀은 22일 오후 일제히 회의를 소집했다. 신문과 대기업의 참여가 허용된 뒤 지상파방송사의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잡아내기 위해서다.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해 대비하고 있었지만 이날 최악은 아니지만 차악에 가까운 시나리오가 현실이 된 뒤 더 분주해졌다.
2013년까지 겸영은 금지되지만 씁쓸한 표정이다. 지상파 프로그램이 콘텐츠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종합편성채널과 보도채널이 새롭게 생기면 지상파 의존도가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건 긍정적이다. 방송사 관계자는 “새로운 미디어를 띄우기 위해선 방송 드라마가 필수가 될 것”이라며 “지상파 콘텐츠 가격은 천정부지로 뛸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지상파를 플랫폼이라는 관점에서보면 약간의 구름이 낀다. 미디어 시장 영향력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방송 뿐만 아니라 신문과의 경쟁도 펼쳐야 하는 탓이다. 민간 미디어랩이 도입돼 자체 광고 영업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산업 자본과의 결합’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것도 현실이다.
◇케이블TV·IPTV, 난세가 영웅을 만든다=케이블TV업계는 미디어법 이후 최대 수혜주로 꼽히고 있다. 1990년대 말 지상파 난시청 지역에 파고들어 사세를 키운 케이블업계는 이번 통과를 ‘제2의 중흥기’로 판단하고 있다.
1500만명의 가입자가 말해주듯 현재 어떤 미디어 플랫폼에도 뒤지지 않을 규모를 이룬 케이블업계는 ‘미디어 혼동 시대‘ 1위 미디어로 나아가기 위한 준비를 이미 마쳤다. 방통위가 허가키로 한 종합편성채널엔 벌써 출사표를 던졌고 법 통과로 소유가 가능해진 지역 방송사도 눈여겨 보고 있다.
케이블TV업계 관계자는 “MSO를 이룬 태광·CJ헬로비전·현대백화점그룹 등의 움직임에 더욱 무게감이 실리게 됐다”며 “종편 채널도 SO의 도움 없인 성공이 힘든 만큼 우리가 적격자라는 판단”이라고 말했다. 특히 케이블의 움직임이 주목되는 또 다른 이유는 대부분 신문사들이 이미 케이블PP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중앙·동아일보 뿐만 아니라 매일경제와 한국경제도 이미 케이블TV방송을 하고 있어 케이블을 통한 ‘신방 겸영’은 보다 자연스럽다.
통신사업자인 IPTV 진영은 기존 통신 시장 빅뱅을 경험한 만큼 아직은 조심스럽다. 하지만 디지털과 함께 가는 미디어 빅뱅 시대엔 IPTV에 무게가 더 실릴 전망이다. 콘텐츠 확보를 위해 지상파방송사와의 협상 과정에서 적잖은 애로를 겪은 만큼 종합편성PP로 지상파 중심의 콘텐츠 구도를 타파하는 크로스 미디어 전략은 대기업인 이들의 몫이 될 가능성이 높다.
대기업이 종합편성PP 및 보도전문PP 지분 30%(방송법)에서 49%(IPTV법)를 확보할 수 있게 됨에 따라 IPTV로 방송 시장에 진입한 KT그룹과 SK그룹·LG그룹의 행보 또한 기존 행보와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 IPTV 제공사업자가 케이블TV사업자와 형평성을 거론하며 규제기관을 상대로 제기한 직접사용채널(이하 직사채널) 허용 요구가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규제기관이 종합편성PP의 IPTV 재송신 원칙을 공식화한 만큼 직사채널 필요성이 상당부문 희석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기존 케이블TV와 마찬가지로 직사채널은 재전송 범위가 제한적인 반면 종합편성PP는 재전송 범위를 IPTV 전체로 확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IPTV 제공사업자가 여유 있는 자본력을 바탕으로 종합편성PP 진입을 타진할 것으로 예상되는 또 다른 이유는 콘텐츠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한 최적의 수단으로 손꼽힌다는 점이다. IPTV 제공사업자가 콘텐츠 확보를 위해 지상파방송사 및 계열 채널사용사업자(PP)와의 협상 과정에서 적잖은 애로를 겪은 만큼 종합편성PP를 통해 지상파 중심의 콘텐츠 구도를 타파하고 콘텐츠 사업으로 영역을 확대하는 등 매체 경쟁력을 쉽게 높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종합편성PP 출범에 적지않은 자금이 필요로 하는 데다 투자 규모에 걸맞은 수익성 혹은 효용성을 검증할 수 없다는 점에서 IPTV 제공사업자 간 ‘눈치보기’와 ‘여론 탐색전’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정훈기자 existe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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