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영상기술은 상상력을 잠식할까.
영화 한 편이 극장가를 뒤흔들고 있다. ‘트랜스포머:패자의 역습’ 기세가 무섭다. 이미 한국에서 외화흥행 신기록을 세웠던 1편에 이어 이 두 번째 작품은 현재 국내 모든 영화스크린의 절반을 차지한 채 독주하고 있다.
이 영화가 흥행하는 이유는 한마디로 ‘장대한 가상 영상’이다.
현실에서는 접할 수 없는 상상의 존재들이 우리에게 익숙한 일상 공간에서 활극을 펼친다. 게다가 세밀한 부분까지 충실하게 묘사해서 현실감이 매우 뛰어나기 때문에 관객들이 체감하는 리얼리티가 무척 높다.
물론 이런 영상이 가능한 것은 컴퓨터그래픽 기술의 발달 덕분. 1991년에 개봉된 ‘터미네이터 2’는 ‘액체금속 로봇’의 마술 같은 변신술로 디지털 영상시대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린 기념비적 작품이었다.
1993년에 나온 ‘쥐라기 공원’은 현실 세계를 활보하는 공룡들의 모습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려 다시금 화제가 됐다.
이어 1994년에 발표된 ‘포레스트 검프’에 이르자 디지털 영상기술은 사실상 완성을 선언했다. 이 영화는 SF나 판타지가 아니라 역사상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들의 기록을 교묘하게 조작해 가공의 영상으로 만들어냈다.
주인공 검프가 케네디 대통령과 악수를 하고, 존 레논과 TV쇼에 나와 얘기를 나눈다. 먼 미래까지 갈 것도 없이 아마 20∼30년 뒤에 학생들에게 이 영화를 보여주면서 포레스트 검프를 실존했던 인물이라고 말하면 대부분 의심 없이 받아들일 것이다.
이제 머릿속으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비주얼은 그 어떤 것이라도 영상으로 구현할 수 있는 세상인 것이다.
그런데 이런 영상기술이 반드시 상상력 확장에 긍정적인 기능만 하는 것은 아니다. 영상이 화려하고 디테일할수록 그것을 수용하는 사람의 상상 영역은 줄어든다.
반면에 활자매체, 즉 문자로 쓰인 글은 우리에게 최소한의 정보만 전달해 나머지 부분은 각자의 상상력으로 채우도록 자극한다.
똑같은 책을 열 사람이 보면 각자 다른 상상을 하지만 그 내용을 각색해서 영상으로 옮겼을 경우 상상의 여지는 사라지고 하나의 결정된 이미지만 고정돼 남게 된다.
이렇게 보면 영상매체는 인간의 창조적 상상력을 제한하기도 하는 것이다.
미국의 작가 레이 브래드버리는 1953년에 ‘화씨451’이라는 통렬한 문명비판 소설을 발표한 바 있다.
종이가 불타기 시작하는 온도를 제목으로 내건 이 작품은 책이란 책은 모조리 불태워버리고 오로지 그림과 영상매체만 허용하는 미래사회를 그리고 있다. 다시 말해서 사람들의 상상력을 억압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 소설의 극단적인 미래상은 하나의 상징적 경고지만 그 메시지는 유념할 필요가 있다. 즉 디지털 영상기술은 더 창의적인 상상을 이끌어내는 자극이 될 수도 있는 반면에 상상의 폭을 제한할 수도 있는 양날의 검인 셈이다.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 cosmo@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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