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달 뒤 남해의 한 섬에서 거대한 로켓이 우주로 날아오른다. 우리나라 기술로 만든 위성체가 실린 나로호는 우리 손으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영토에서 최초로 날아오르는, 그래서 외국에 가거나 TV카메라를 거치지 않고도 우리 눈으로 발사 장면을 목격할 수 있는 첫 번째 로켓. 이로써 우리나라는 자국 위성을 자국 발사체로 쏘아 올리는 우주 클럽의 일원이 된다.
우주 클럽의 일원이 되는 것은 단순히 ‘꿈과 낭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우주로 향할 만한 자격’을 갖고 언젠가 우주에서 얻을 이익을 나눌 수 있는 자격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영화 ‘스타트렉’의 마지막 장면에서 나왔듯 ‘우주는 인류의 마지막 신천지(The final frontier)’이자 미래의 가능성을 가진 세계기도 하다. 영화 ‘노잉’에서처럼 지구가 멸망하지 않더라도 언젠가 인류는 우주로 떠나서 무언가를 얻게 될 것이다.
그것이 영토건 자원이건, 또는 다른 무엇이건 그것은 결코 모두에게 공평하게 나누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주는 넓은만큼 자리는 충분히 많을지도 모르지만, 초기에는 몇몇 나라만 우주의 가능성을 독점하고 다른 나라엔 부스러기만 떨어질지도 모른다.
우주 개발을 소재로 한 여러 SF 만화 작품에서는 이 같은 가능성을 다양하게 보여준다. ‘문라이트 마일’에서 핵융합 발전의 미래를 이끌어갈 달세계의 헬륨3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우주 전쟁이 벌어지고 ‘프라네테스’에선 우주개발의 가능성에서 격리된 사람들이 우주 진출 자체를 악으로 돌리고 이를 망치려는 테러를 저지른다.
인류는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국경 없는 신천지 우주로 떠나지만, 지상에 남은 이들은 국경으로 인해 수많은 갈등과 고통을 겪는다. 어렵게 우주복을 만들어 시험을 통과하는가 했더니 전쟁으로 고국이 사라져 돌아갈 곳을 잃어버리는가 하면, 아랍인이라는 이유로 알몸이 된 채 신체검사를 받기도 한다.
우주 시대라 해도 갈등은 사라지지 않음을, 우주 시대에도 수많은 슬픔이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꿈과 모험, 그리고 밝은 미래를 담은 ‘스타트렉’에도 전쟁의 슬픔은 존재하며, 심지어는 ‘배틀스타 갤럭티카’처럼 위험에 쫓기며 영원히 헤매는 운명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우주 시대가 계속돼 국경이 사라진다고 해도 시간이 흐르면 ‘기동전사 건담’에서처럼 우주를 고향으로 삼아 살아가는 이들과 지구를 고향으로 삼은 이들 간의 경쟁과 갈등이 대두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인간이 있는 한 우주에서도 갈등과 대립은 계속될까. NHK에서 애니메이션으로 소개되기도 했던 ‘트윈 스피카’에서는 어른들의 관료주의나 음모와는 관계없이 ‘우주선 조종사’라는 꿈을 꾸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로켓 추락 사건으로 가족을 잃었지만 당시 죽은 조종사의 유령인 라이온의 격려 속에 역경을 딛고 우주로 나가려는 소녀와 중한 병을 무릅쓰고 노력하는 소녀. 국가의 갈등과 테러 사건으로 물든 ‘프라네테스’에도 언젠가 자신의 로켓을 우주로 띄우고자 노력하는 소년이 있다. 이 꿈은 아이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우라사와 나오키의 단편 ‘나사’에서는 퇴직금으로 로켓을 만들어 우주로 가고자 노력하는 전직 샐러리맨 중년 아저씨가 등장하기도 한다.
이렇듯 저 멀리 우주를 바라보며 꿈을 꾸는 어린이, 그리고 이들을 지키고 격려하며 그 자신도 꿈을 향해 달려가는 어른들이 있는 한 우주는 진정한 우리들의 ‘신천지’로 다가오리라 생각한다.
그 어떤 슬픔과 갈등을 그린 SF 속에서도 우주라는 꿈과 낭만은 영원히 계속되듯이….
전홍식 SF&판타지 도서관장 sflib2008@gmail.com